강남동아리 ┃ 제1회 강남구 여성상 받은 ''사랑衣 달빛천사''

기댈 데 없는 노인들에게 맞춤옷 선물 10년

지역내일 2011-08-03

"시장에서 사다주고 말지 누가 이렇게 만들어 주겠어요, 내 자식도 못할 거예요. 천 년 만 년 복 받으세요." 노인들에게 옷을 전달할 때면 회원들은 이런 덕담을 듣는다. 고맙다며 춤을 추고 노래도 불러준다. 가다가 음료수 사 먹으라고 쌈짓돈을 내놓는 노인도 있다. 지난 10년 동안 무의탁 독거노인들에게 맞춤옷을 선물해온 봉사단체 ''사랑衣 달빛천사''가 강남구청이 주는 제 1회 강남구 여성상을 받았다. 바느질도 마음씀씀이도 일품인 달빛천사들을 만나봤다.


''옷 만들기반'' 강사와 수강생 2명으로 시작
''사랑衣 달빛천사''(이하 달빛천사)는 강남구 여성능력개발센터의 ''양재리폼반''에서 운영하는 자원봉사 동아리다. 2002년 센터의 ''옷 만들기반'' 강사였던 문경희 패션디자이너가 수강생 2명과 함께 처음 옷 만들기 봉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몇 년 전부터 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양재리폼반 최수경(46)강사를 센터에서 만나 당시 얘기를 들어봤다. 
"어느 날 수업시간에 문 선생님이 ''양재기술로 좋은 일 할 사람''을 찾으시더라고요. ''이 기회에 옷 만드는 솜씨 좀 길러볼까''하는 마음으로 동참을 했죠."
하지만 최 강사는 이내 후회를 했단다.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세 명이 옷 60벌을 만들었어요. 집에서 애들 밥도 못 챙겨주고 밤새워 재봉질을 했죠. 그렇게 몇 달 옷을 만드니 식구들이 짜증을 내고 눈치를 줘서 ''이렇게 혼나가며 이걸 뭐 하려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마음이 바뀐 건 사당동 이수사회복지관에 가서였다. 옷을 받아든 할머니들이 너무도 좋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지금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감동의 힘이었다고 그녀는 말한다.
서너 사람의 봉사가 동아리 활동으로 확대된 건 2006년이다. 당시 센터의 관장이 "좋은 일 하는 건 널리 알려야 한다. 모임을 만들자" 면서 학습동아리를 적극적으로 활성화시킨 게 계기가 됐다. 바깥에 알려지는 것을 탐탁찮게 여기던 문경희 디자이너를 설득해 자원봉사센터에 신고를 하고 정식으로 발족했다.


시각장애 노인들도 ''꽃무늬로 해 달라'' 부탁
달빛천사는 5월에는 ''효도빔'' 12월에는 ''사랑빔''이라는 이름으로 옷을 만들어 무의탁 어른들에게 전달한다. 지난 5월 8일에는 나들이옷 20벌을 구룡마을 여성 노인들에게 전했다. 여성노인에게만 선물을 하는 이유가 뭔지 물어봤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처음 시작하신 문 선생님 전공이 여성복입니다. 회원들이 만드는 옷도 주로 여성복이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렇게 된 거지요." 모임의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희(61)회원의 답이다.
맞춤복을 짓는 첫 순서는 옷 주인을 정하는 일이다. 70대 이상의 무의탁 여성노인이 대상이
된다. 회원들이 추천하거나 센터 사무국에서 소개를 받는다. 대상자가 정해지면 치수를 재러 간다. 어깨와 허리를 재면서 허리가 굽었나 펴졌나, 피부색이 밝은가 어두운가, 입고 있는 옷이 화려한가 소박한가 등을 꼼꼼히 본다. 원하는 색깔이 있는가도 물어본다.
노인들은 얼굴에 검버섯이나 잡티가 늘어나는 탓에 밝고 화사한 옷을 입고 싶어 한다. 시각장애 어르신들도 ''예쁜 색깔로 해 달라, 꽃무늬로 해 달라''고 말해서 깜짝 놀란단다. 이경휘(53)회원은 "여자는 나이가 많으나 젊으나 눈앞이 보이나 안보이나 예쁘게 보이려는 건 똑같다. 그건 여자의 본능"이라고 말한다. 간혹 검정색을 원하는 노인들이 있다. 세탁을 자주 할 형편이 못돼 때가 타지 않는 색깔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치수를 재러 갔는데 할머니들이 거절을 해서 난감한 적도 있었다. 방 한 칸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방문했을 때였다. 치수를 재려는데 "아이 뭘 그런 걸 해, 난 안해도 상관없어"라면서 회원들을 밀어냈다. 함께 갔던 강서구청 사회복지사가 설득을 해서 치수를 쟀다. "00일까지 만들어다 드릴 게요" 하니 "해 오려면 해 오고 안 해와도 상관없어"라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최 강사는 할머니들이 정말로 옷을 싫어하는 줄 알았단다. 할머니들이 나중에 사회복지사한테 전화를 걸어 "옷 언제 오냐"고 물어봤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서야 그런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상처받은 경험이 너무 커서 우리를 경계했던 것 같아요. 도움 받는 것도 어색했고요." 회원들은 작업을 서둘러 더 일찍 갖다 드렸다고 한다.


원단 기증해 준다면 큰 힘 될 터
옷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원단은 회원들이 내는 회비로 마련한다. 기증을 받을 때도 있다. 원단 수입상이나 원단 샘플 작업해서 쌓아두는 사람들이 재고를 보내주는 경우다. 그런 물건을 얻으면 회원들에게 싼 값에 팔아서 회비를 마련해 노인들의 옷을 만들 원단을 산다. 회원들은 "원단 기증할 분을 기다린다는 이야기를 꼭 넣어 달라"면서 "주시면 좋은 일에 쓰겠다"고 덧붙였다. 조혜경(42)총무는 센터에서 하는 바자회에 나가 회비를 마련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앞치마나 스카프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남대문 시장에서 우산을 떼어다 팔기도 해요."
작업은 금요일 양재수업이 끝난 뒤 강의실에 남아서 공동으로 한다. 석 달이 지나면 회원 20명이 20벌의 양장을 완성한다. 옷을 다림질하고 비닐포장해서 가지고 가면 노인들이 놀란다. ''다들 비슷비슷한 옷들을 가져오겠지''라고 짐작을 했는데 전부 다르게 만든 것이어서 그렇다. 옷을 받아든 노인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그 자리에서 입고 가는 노인도 있고 싸가지고 가서 옷장에 넣어두고 나들이 때나 입는 노인도 있다. 옷을 전달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노인이 그 사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삼재가노인복지관, 능인사회복지관, 수선화의 집(장애여성의 집), 홍파사회복지관(시각장애 여성의 집)등 강남인근의 복지관과 구룡마을 등 어려운 지역의 무의탁노인들을 방문했다. 최 강사는 초창기에 찾아갔던 강원도 철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말한다. 어려운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얘기를 듣고 갔는데 사정은 생각보다 더 애처로웠다. 할머니들 옷만 만들자니 마음에 걸려 할아버지 옷도 만들었다. 부모 없이 혼자 사는 일곱 살 소년도 있어서 바지와 남방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서울로 돌아온 뒤에도 아이가 마음에 걸리더라고요. 문 선생님도 같은 마음이셨나 봐요. 아이에게 옷을 모아다 주자고 하시데요. 그래서 갖가지 옷을 모은 적이 있어요." 지금 고등학생쯤 되었을 텐데 잘 컸는지 모르겠다며 최 강사는 눈시울을 붉혔다.


나눠야 사는 시대, 봉사 계속 할 생각
"놀면 뭐 하냐, 수업도 하고 좋은 일도 해라." 몇 년 전 문경희 디자이너는 양재강좌와 동아리활동을 최 강사에게 맡기면서 그렇게 당부를 했다. 그녀는 선생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제자가 받아서 하더니 역시 그렇지 뭐'' 하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단다. 그녀의 바람은 동아리 활동이 적어도 지금만큼은 유지가 됐으면 하는 것이다. 회원이 줄어들면 어쩌나 걱정도 된다. 만드는 옷이 적더라도 ''사랑의 달빛천사''라는 이름으로 이 작업을 계속하고 싶다.
"좋은 일 할 기회가 별로 없는데 이거라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는 이경휘 회원과 "지금은 나눠야 사는 시대다. 내가 나누는 방법은 이것" 이라는 김영희 회장을 보니 회원이 줄어들 염려는 안 해도 될 듯하다.
봉사활동을 하는 동안 최 강사의 양재기술은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했다. "내 것도 못 만들면서 매달리느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는데 어느 날 보니 기술이 확 늘었지 뭐예요. 게다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까지 얻었으니 10년 세월이 헛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원단을 기증할 사람은 강남구 여성능력개발센터(02-544-8440)로 연락하면 된다.


사진 김태헌 작가(스튜디오 세가)
신운영 리포터 suns16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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