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장마와 폭우 속에서 기분마저 우울함에 젖어든 것 같아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줄 영화를 찾던 중 스펙터클 영화 ''고지전''이 눈에 들어왔다. 연예인, 청소년들의 자살이 더 이상 빅뉴스로 다가오지 않는 상황에서 군대 내의 젊은 청춘들이 어떤 식으로든 생명을 저버리는 사건들까지. 어쩌면 우리 사회에는 생명경시풍조가 만연해 있는지도 모른다. 영화 ''고지전''은 생명경시풍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생명의 절실함을 깨닫게 해준다.
전쟁의 시작이 아닌 전쟁의 끝을 다룬 영화
영화 ''고지전''은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일반적 상식을 바꾸며 전쟁을 더욱 가슴 아픈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고지전''은 6월 25일 새벽으로 시작되는 기존의 전쟁영화와는 달리 우리가 몰랐던 전쟁의 마지막을 조명한다.
1951년 6월 전선 교착상태 이후 후방 협상이 진행되면서 38선 부근 중부전선의 남북한 고지쟁탈전에 전 군사력이 집중된다. 그로부터 25개월간 서로 싸우는 이유조차 잊은 채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싸우다 죽어간 고지 위의 병사들이 300만 명. 한국전쟁 총 400만 명의 사상자 중 3/4의 사상자가 기나긴 휴전협상 중의 고지전 속에서 희생된 것이다. 고지 점령은 휴전 후 영토를 확정하는 기준이 되고,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는 것은 인근 30~40km의 지역을 점령하는 것과 같은 의미였으니 실제 백마고지 전투는 하루에도 3~4회 주인이 바뀌는 치열한 접전으로 기록돼 있다. 영화 ''고지전''은 휴전을 목전에 두고 지도상의 영토 1cm를 위해 주인이 수십 차례 뒤바뀌는 공방전을 마지막까지 치러야 했던 젊은이들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황량한 전장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애
영화 ''고지전''을 보다보면 처음 보는 영화임에도 어디서 본 것 같은, 영화 속의 등장인물도 어디서 만난 것 같은 기시감을 경험하게 된다. 2000년에 한국 영화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공동경비구역 JSA''가 그것. 알고 보니 ''고지전''의 작가가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소설 ''DMZ''를 썼던 박상연 작가.
''공동경비구역 JSA''에 비해 ''고지전''은 스케일이 웅장하고 전시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삼엄한 긴장의 공간 속에 인간애가 피어나는 남북한 병사 공동의 아지트가 존재하고 그 아지트가 사건의 발단이 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더구나 두 영화 속에는 유사인물이 존재한다. 두 영화의 주인공 ''공동경비구역 JSA''의 이수혁(이병헌)과 ''고지전''의 김수혁(고수)이 그렇고, 어리버리한 남성식(김태우, 이다윗)도 모두 존재한다. 총기 사건 조사를 위해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중립국 책임수사관으로 소피(이영애) 소령이 파견됐다면, ''고지전''에서는 방첩대 강은표(신하균)가 조사를 위해 파견된다.
이처럼 비슷한 설정임에도 불구하고 두 영화가 너무나도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 ''고지전''이 전장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치열한 접전 끝에 황량하게 변해버린 곳에서 쉴 새 없이 치러지는 대규모 전투장면은 영화를 보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든다.
지옥 속에서도 살아남기를 갈망하는 청춘들
목숨을 건 치열한 전쟁은 겁 많고 유약했던 김수혁이란 인물을 180도 바꿔 버리고, 꽃다운 젊은 여인 차태경(김옥빈)을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저격수로 바꿔 놓는다. 하지만 이들의 냉정함 속에도 인정과 삶에 대한 갈망이 넘쳐흐른다.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는 고지전과 같은 무모한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그 속에서 희생되는 무수한 청춘들이 있을 것이다. 싸워야하는 이유나 전쟁의 정당성은 차치하고 단지 살아남기 위해 하루하루를 지옥 속에서 버텨내야 했던 청춘들의 안타까운 삶을 다룬 영화 ''고지전''을 통해 우리의 청춘들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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