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자는 그 사람인데 왜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하나?

지역내일 2011-07-15

  알코올중독자의 자녀들에게 더 힘든 사람은 알코올중독인 사람(대부분의 경우 아버지)보다는 중독이 아닌 부모(어머니)인 수가 흔하다. 이런 말을 들으면 매우 억울해 하며 이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아니 알코올중독은 남편인데, 문제는 언제나 그가 일으켰는데...”  “나는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내가 왜 더 힘들게 한다는 거지?” 그러나 이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정신적 통증은 불안으로 표현된다. 사람들이 미래가 불안한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예측이 안 될 때 사람들은 불안하다. 그래서 신이 필요했고 점쟁이가 필요했을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 큰 병을 앓는 사람에게 예후를 판정하는 의사가 신처럼 권위자로 보이는 것이다.
알코올중독인 부모 밑에서 사는 것이 힘든 이유는 일상이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술을 마셨을 때와 술이 깼을 때의 행동이 전혀 다르다. 제대로 파악하여 반응하지 못하므로 혼이 나기 일쑤다.
그러나 그의 행동 양식에도 길들여지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빤해진다. 세월이 갈수록 늘 취해 있는데다가, 이제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늘 건주정 상태이므로 예측이 별로 어렵지 않다. 어떻게 하면 용돈을 쉽게 듬뿍 받아 낼 수 있는지, 두려워서 완전히 복종하는 듯이 처신해야 하는지, 이런 것이 일상사가 되어 아무렇지 않게 된다.
끝까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은 오히려 술을 마시지 않는 알코올중독자의 배우자인 부모다. 이혼하겠다고, 죽어버리겠다고 소동을 벌이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그가 벌인 각종 사고나 후유증을 해결하는 데에 너무나 지성이다. 어지럽힌 집안을 정리하고, 속풀이 해장국을 끓이고, 직장에다는 아파서 출근하지 못한다고 거짓말까지 해준다. 번번이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또다시 그를 구조한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자녀들은 혼란스럽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똑같이 자녀들에게도 적용된다. 진이 빠지면 아무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은 자녀들에게 화풀이를 해대다가, 어느 순간 자녀들이 불쌍하다고 여기면 이유 없이 지나친 보상을 하기도 하고, 마땅히 훈육해야 할 시점에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복받치는 감정에 쌓여 자녀들 앞에서 통곡을 하기도 하고, 끝까지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기도 한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알코올중독인 사람만이 아니다. 가족이 모두 도움을 받아야 제대로 회복할 수 있다. 특히 배우자의 치료가 필수적이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alja.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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