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날인] 보성고 3학년 양현
‘세상을 읽는 창(窓)’ 저널리스트를 꿈꾸다
기말고사를 방금 막 끝내고 온 양현 군과 마주 앉았다. 힘겨운 고3 터널의 한 가운데를 지나느라 다소 지쳐 보이는 그에게 10년 뒤 모습을 그려보라는 질문을 던졌다. “제 나이 스물아홉이네요. 아마 신문기자가 되어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니고 끙끙거리며 기사 쓰고 있을 거예요.” 양 군의 입에서는 즉답이 나왔다.
멋진 동문 만나며 인생 설계하다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형들이 펴낸 교지 <인경>을 처음 받아보았을 때 ‘나도 꼭 만들어 보고 싶다’는 동경심을 키웠다고 털어놓는다. 그 뒤 보성고에 입학하자마자 교지 만드는 동아리에 들었다. “제가 <인경>의 43기 멤버예요. 4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동아리죠. 제 고교 시절은 곧 인경과 함께 한 시간이에요.”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난다.
30페이지 분량의 계간지 한권을 완성하기까지 18명의 학생기자들은 상당히 많은 공을 들인다. 각자가 생각한 기사 아이템을 치열한 격론 끝에 확정한 후 온갖 인맥을 동원해 섭외 후 기사 쓰고, 몇 번의 퇴고 끝에 데스크로부터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면 편집과 인쇄를 거쳐 완성본을 손에 쥐기까지 매 번 학생기자들은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쏟아낸다. 물론 한 권씩 완성될 때마다 취재 노하우와 필력, 아이템을 골라내는 안목도 함께 쌓여갔다.
개교한 지 100년이 넘는 보성고는 각계각층에 퍼져있는 동문 인맥이 탄탄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를 목표로 달려가는 선배들을 인터뷰할 때 마다 양군은 가슴이 뛴다고 말한다. “황성연 다큐멘터리 PD를 취재할 때가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고교시절 독어 선생님께서 영상 분야에 재주가 많다며 그쪽으로 진로를 권유했는데 그 말씀을 흘려듣지 않으셨지요. 황PD님이 제작한 유기농 사과농법을 개척한 일본인 농부 다큐를 보았는데 무척 감동적이었어요.” 다큐 PD라는 어려운 길을 택했지만 흔들림 없이 작품마다 내공의 깊이를 더해가는 대선배의 모습에서 큰 울림을 얻었다고 양군은 말한다.
다독(多讀)은 힘이 세다
그의 좌우명은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보성고 김병수 선생님을 취재하던 중 가슴에 새기게 된 글귀라고 털어놓는다. “김쌤은 직장 다니다 어린 시절 꿈을 이루기 위해 뒤늦게 교사가 되신 분이에요. 초임 교사시절에 문제아 제자 한명을 끝까지 보듬지 못하고 놓친 것이 한이 된다며 진인사대천명을 실천하지 못한 자신을 지금까지 자책 하시고 계셔요. 그때 제 가슴에 꽂힌 말이에요. 슬럼프에 빠질 때마다 그 말을 되뇌어요.”
양군은 중3 때 우연히 미국 언론인 퓰리처 전기를 읽은 뒤 언론인을 꿈꾸게 되었다. 사실 독서는 어린 시절부터 양현군의 취미이자 특기였다. “제가 다닌 둔촌초등학교는 도서관 시설이 최고 수준이었어요. 산뜻하게 리모델링된 도서관에는 책도 무척 많았지요. 틈만 나면 달려가서 읽고 또 읽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읽고 난 뒤 느낀 점이나 마음에 두는 문구는 꼬박꼬박 기록해 두었다.
“소설가 신경숙은 21세기를 사는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20세기의 정서를 보여주기에 무척 좋아해요.” 양 군은 국내외 유명작가별로 예리한 인물평을 쏟아낸다. 그가 보여주는 독서기록장에는 <로마제국 쇠망사> <오류를 알면 논리가 보인다> <화폐 전쟁> <니코마스 윤리학> 등 세계사, 철학, 심리학 등 다방면의 책에 관한 소감문이 빼곡하다. “고등학교 들어와서 독서 덕을 많이 봤어요. 모의고사 보면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나 비문학 작품들이 종종 지문으로 나와요. 무척 반갑지요. 남들보다 독해력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예요.”
내 꿈은 저널리스트
양현군은 소중한 자신만의 아지트로 잠실 교보문고를 꼽는다. “책 숲을 산책하며 이 책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상상하며 서가의 책을 한권 씩 뒤적일 때 느끼는 뿌듯함은 정말 최고예요.”
양군의 책사랑은 그만의 독특한 노트정리법으로 이어진다.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과 참고서, 문제집에 정리된 내용, 거기에다 책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질문해 가며 종합한 내용을 자신만의 노트에 정리하며 공부한다. “예전에 읽었던 로빈슨의 교육학에서 4R 즉 read, reflect, recite, review 학습법을 응용했지요. 내 방식으로 정리한 노트를 반복해서 보고 또 보면 효과가 좋아요.”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고단한 고3 생활. 양현 군은 저널리스트란 분명한 목표 덕분에 슬럼프도 견뎌내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한다. “<인경>은 언론인이란 내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해준 고마운 디딤돌이에요. 보통 일간지를 세 종류 보고 있는데 요즘엔 객관적인 사실 보다는 자사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상업적인 기사들이 늘고 있는 것 같아요. 바람직하지 않죠. 저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객관적으로 전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다부지게 포부를 밝힌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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