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여행이 자유로워졌다. 세상천지가 자유로워져 내 돈과 발로 못갈 데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나라든 경계선을 넘으려면 먼저 입국 허가 즉 비자를 받아야만 한다. 이를 무시하고 월경하면 체포된다.
사람 또한 누구나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자신의 범위와 영역이 있다. 몸뚱이만이 아니라 공간이나 마음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자동차를 운전하면 앞뒤 범퍼와 좌우 후사경 테두리까지로 자신의 경계가 확장된다. 누군가 또는 무언가 살짝 닿기만 하여도 바짝 긴장하는 것은 이 경계 침범에 대하여서는 누구나 매우 민감하기 때문이다.
문을 닫고 혼자 방에 있으면 딴 짓을 할까 봐 불안하여 문을 닫지 못하게 하는 부모가 있다. 화가 나서 문을 쾅 닫아버려도 몰래 문틈으로 살핀다. 문을 잠그지 못하게 하려고 잠금 장치를 떼어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망치로 도어핸들을 부수고 방문을 열어젖힌 사람도 있다.
아무리 가까워도 사람 사이에는 경계가 있다. 국경처럼 물리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물 컵이나 숟가락을 옆 사람 쪽으로 벌여 놓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꾸 다시 밀쳐낸다. 영역을 침범 당하면 왠지 불편하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자아 경계는 정신분석가 폴 페던이 처음 말한 개념이다. 이는 자기 자신과 외부의 대상을 구분하는 경계로써,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하는데 필수적인 기본이 된다. 개인이 지속적으로 겪는 신체적 정신적 경험인 자아의 한 부분으로,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를 존중해야 한다.
프리츠 펄즈의 게슈탈트 기도문이 바로 이를 잘 나타낸다. ‘나는 내 일을 하고, 너는 네 일을 한다. 나는 네 기대대로 살려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너 또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기 위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너는 너, 나는 나이다. 만약 우연히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면 아름다운 일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쩔 수 없고.’
과음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보호자가 먼저 단주를 강요하는 수가 흔하다. ‘마셔도 내가 마시고 끊어도 내가 끊는다. 마시다 죽더라도 내가 죽는 것인데 웬 참견이냐’ 며 반발하는 것이 전형적이다. 자아 경계를 침범하는 단주 강요는 분노만 끊게 하고 단주를 더 완강하게 거부하게 한다. 자아 경계를 존중하면서 단주를 도울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단주 자체가 아니라, 그 앞 단계인 단주의 동기를 일깨우는 데에 초점을 옮겨 돕는 것이 다 낫지 않을까?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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