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단주를 시작하고 나날이 성장해 가는 J씨가 어느 날 단주 모임에서 한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이제는 더 이상 그녀가 아버지는 물론 다른 식구들한테 휘둘려 음주하는 일은 없겠다고 느꼈다.
아직 부모와 함께 사는 이제 30살을 갓 넘은 여성인 그녀가 처음 병원을 찾은 것은 과음과 토하는 문제 때문이었다. 폐쇄 병동이라 음주는 자동으로 통제되었으나 구토는 더 심해져 섭식 문제가 두드러져 보였다.
여성들의 알코올 문제는 일반적으로 남성보다 병리가 더 심각하고 뿌리가 깊다. 인격 장애, 섭식장애, 자살 행동, 품행 장애 등 공존 질환도 훨씬 많고 심각하다. 당연히 눈에 더 잘 뜨이는 공존 질환이나 신체적 합병증에 주의를 빼앗기게 된다. 그러다 보면 본질적인 과음 문제와 정서적 취약성을 개선하는 데 소홀하기 쉽다.
J씨 또한 초기에는 식사를 거부하고, 먹더라도 스스로 구토를 유발해 주치의와 직원들을 난처하게 하였다. 먹고 토하는 문제를 개선시키려 해보았자 의미가 없다. 차라리 얼마 동안은 무엇이 그렇게 힘들게 하는지를 이해하려 하고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다.
집단치료를 비롯한 정신치료를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자신을 비롯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J씨는 지금껏 모든 책임을 혼자 지려고 하며 살아왔다. 실업자인 남편과 시부모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새언니를 지나치게 도우려 한 것, 일도 안 하면서 늘 부모를 원망만 하는 오빠의 끝없는 불만을 해결해주려 한 것, 과격한 아버지에게 억눌려 늘 우는 소리만 하는 어머니를 다독이려 한 것, 아버지의 턱없이 높은 기대를 맞추려고 바동댄 것 등등 그녀의 삶은 남들에게 최선을 다 하느라 정작 자신은 얼마나 힘든지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도 모른 채 맹목적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이 힘들 때면 술의 힘으로 잊고, 무언가 불편한 마음이 생기고 배알 틀리면 토하는 것이 시원해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며칠 전 어머니와 외출하면서 아버지가 어디어디로 들렀다가 언제쯤 돌아온다고 장황하게 설명하는데, 문득 ‘그래서, 나더러 어쩌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으면 바로 말할 일이지, 구구절절 상황만 설명하는 것이 너무 구차해 보였다고 한다. 자기주장을 제대로 못하고 상대가 모두 알아서 처리해주기를 기대하는 모습이라니! 아버지가 퍽 힘세고 그래서 두려운 존재로 알았는데, 술 끊고 나서 보니까 새삼 ‘아버지도 애기 같더라’ 는 말이었다.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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