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쉐프되던 날~
갈수록 집안일에 남녀의 구분이 없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주방은 아빠들에겐 거리가 있다. 설거지 정도야 한두 번 해준다지만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도 요리는 당연히 아내의 몫. 집에 음식을 해줄 사람이 없는 경우에도 아버지들의 생각은 단 한 가지, ‘오늘은 뭘 사 먹지?’
그런 아빠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 앞으로 모였다. 직접 요리를 배워 그동안 고생한 아내에게 근사한 대접이라도 해볼 모양이다. 평소 가족을 위해 요리는커녕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았던 아버지들이 자식을 위해 아내를 위해 앞치마를 둘러 맨 사연은 다양하기만 한데.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오늘의 메뉴는...
오늘의 메인요리는 야끼소바와 야채 월남쌈. 유난이 칼질이 많은 메뉴다. 투박한 손으로 칼질이나 음식 재료 손질 등 모든 주방일이 어색하고 낯설게만 느껴질 법도 한데 깨끗하게 다듬은 야채를 도마 위에 놓고 칼질을 하는 소리가 경쾌하다. 듬성듬성 대충 모양만 흉내 내지 않고 가지런히 담아낸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다. 우동 면을 끓는 물에 삶아 내고 야채를 볶고 소스를 만드는 손놀림이 주부보다 빠르다.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다 요리를 망칠까봐 대단한 집중력을 보이는 아버지들,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요리 강습은 눈 깜짝할 사이 3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양천구 여성교실(신정7동 소재/신나는 어린이집 3층)에서 열리는 ‘아버지 요리교실’ 수업의 한 장면이다. 양천구 아버지 요리교실의 강좌를 맡고 있는 최소영 강사는 “처음에 오시면 대부분이 쭈뼛거리며 어색해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적극적으로 돌변한다”며 “오히려 주부보다 더 열심히 요리를 배우고 질문해 날로 실력이 향상됨을 볼 수 있다”고 회원들을 칭찬한다.
요리교실 수강생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번 회기에는 유난히 50대가 제일 신청을 많이 했다고. 임재석씨(63)는 아내가 양천 소식지를 보고 신청한 경우다. 더 나이가 들면 혹 혼자 밥을 해 먹어야 할 때가 있을 것 같아서였다. 진정한 요리라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는 임 씨는 막상 요리를 해보니 너무 재미있단다. “양푼이 찜갈비를 배우고 나서 집에 가서 해줬더니 다들 맛있다고 칭찬을 해줘서 기분이 좋았다”며 “골뱅이무침, 양푼이 찜갈비가 제일 자신 있는 요리”라 소개했다.
요리교실 최고령 회원인 박종인(66)씨는 첫날부터 장소를 찾지 못해 헤매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차에 아내에게 전화를 받고 택시까지 타고 요리교실에 참가한 경우, “평생 사랑한다는 표현도 제대로 못했는데 남편 잘못만나 고생한 아내를 위해 따듯한 밥 한 그릇 제대로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단순히 요리를 한다는 뿌듯함 뿐만 아니라 눈으로만 봐 왔던 아내의 고충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윤필섭씨(41), “장을 보면서 물가가 비싸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며 “아내의 고충도 이해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신청을 한 이민재(50)씨, “작년에는 어떨 결에 아내가 신청해 참가하게 되었지만 요리가 정말 재미있어 올해는 직접 신청했다”며 “사람이 살면서 먹는 즐거움도 있는데 더 배워서 가족을 위해 필요할 때 마다 만들어 줄 수 있는 전천후 아빠가 되고 싶다”고 전한다.
요리, 너무 재밌어~
아내가 신청한 것을 잊어버리고 늦잠을 자다 쫓겨나다시피 하여 요리교실에 발을 디디게 된 강창훈(45)씨는 양천구 아버지 요리교실에서 제일 요리를 잘 하는 아버지로 통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천공항에 있는 큰 식당의 총지배인이다. 또한 그날 요리가 끝나면 한 주 동안 다시 요리를 해서 사진을 찍어 강사에게 보내는 숙제를 제일 열심히 한다. “음식 재료를 사는 것부터 접시에 담고 먹는 것 까지 거의 70컷이 넘는 사진을 찍어 페이스북에도 올려놓았다”며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웃는다. 요리교실에서 만든 음식은 점심식사 겸 시식을 하거나 미리 챙겨온 반찬통에 나눠 담아 집으로 가져가기도 한다.
이번 기간 동안 아버지들이 배운 요리는 봄나물 겉절이, 양푼이 찜갈비, Fish & Chips(영국요리), 버팔로윙, 깐풍기, 매콤한 칠리새우, 월남쌈과 야끼소바다. 모두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생활 요리로, 만들어 놓고 나면 가족들 앞에서 어깨를 으쓱할 수 있는 메뉴들이다.
아버지 요리교실은 여성주간을 맞아 양천구에서 마련한 ‘부부양성평등사업’ 중 하나. 남성들이 요리를 통해 가사분담에 기여하고 양성평등의식을 고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2008년도에 시작하여 올해로 4년째 운영하고 있다.
4주 과정으로 강좌 수강료는 5000원(재료비 별도). 양천구 여성복지과 이민경씨는 “토요일인데다 비까지 내려도 결석자가 거의 없고 수료율이 100%에 이른다”며 “대부분이 재수강까지 신청을 해 아버지 요리교실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게다가 추가 강습 요청이 쇄도하여 올해부터는 연4회(4,6,9,12월)로 확대 실시하여 보다 많은 참여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문의: 여성복지과 2620-3385)
송정순 리포터 ilovesjsmor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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