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자고 꺼낸 말 아닌데…

괜한 말 한마디에 어이없는 종지부!

지역내일 2011-05-30

트위터에 글 한 줄 올렸다가 대중의 뭇매를 맞고 글을 삭제하는 ‘공인’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될 때가 있다.
기분 좋게 시작한 대화가 어느새 본질과 상관없는 옛날 얘기, 주변 얘기로 바뀌다 급기야 예기치 않은 반응에 맞닥뜨린 순간!
별생각 없이 꺼낸 말 한마디가 불러온 ‘돌발 사태’, 그 와중에 덤으로 얻은 씁쓸한 교훈.
Talk 1 남편
길에서 빵 먹는 아이 보다가… 일주일간 부부 냉전 정수영(가명·38)씨는 학원 가방 메고 길에서 빵을 먹는 초등학생을 보며 “저렇게 시간을 아껴 써야 하는데 우리 딸은…”이라고 혼잣말하다가 부부 냉전에까지 이르렀다. 아이가 신통한 마음에 한마디 했건만 남편이 ‘주말까지 어린애 사교육 시켜 무슨 부귀영화 보겠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당신도 애 좀 잡지 말라’는 색깔 있는(?) 발언을 했기 때문. 결국 독백은 언쟁으로 커져 ‘부모가 자식 인생 책임져야 하는데 당신은 가진 것도 없으면서 뭘 믿고 애 공부도 안시키려 하느냐’는 인신공격에, ‘딴 방법 있으면 알아서 키워라. 회사 사택 신청해 애들 데리고 들어가라, 나 혼자 방 한 칸 얻어 살겠다’고 냉전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정씨는 “평소에 공부 잘해 뭐 하냐고 반문하는 남편이지만, 그 말이 발끈할 만한 수위는 아니었거든요. 이런 돌발 상황을 방지하려면 애 문제만큼은 남편 속 편한 쪽으로 살짝 기울여 대화하는 게 길이라는 교훈을 얻었지요.”
애 절약 정신 자랑했다가… 아내 궁상만 타박당하다 오랜만에 간 마트에서 3만 원 정도밖에 쇼핑을 못 한 임윤서(41)씨 옆에는 ‘꼭 필요한 거 아니면 사지 마’ 잔소리 해대는 딸이 있었다. 인형 하나를 들고 행복해하다 5천 원이 붙은 가격표를 보더니 냉큼 내려놓고는, 계산 직전 다시 카트에 담았다가 계산 후 곧장 환불했을 정도. 450원 하는 노트 하나도 막판에 또 빼더라는 얘기까지 남편한테 고스란히 전한 임씨. ‘절약 정신이 몸에 배게 잘 키웠다’는 칭찬이 그 다음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제발 애 앞에서 돈 없다 소리 좀 하지 마!”라는 폭탄 발언이 돌아왔다. 얼마나 돈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였으면 애가 그렇게 갈등하다 환불했겠느냐는 말에 임씨는 ‘그럼 제발 빚 좀 어떻게 해줘봐!’ 하소연으로 받아쳤다. 슬쩍 꼬리 내린 남편에게서 ‘내가 더 열심히 일할게’라는 말을 듣는 것으로 일단락된 사건. 요즘 임씨는 남편 근로 의욕을 고취할 필요가 있을 때면 ‘부성애’를 자극한다나.
Talk 2 아이
굴러다니는 종이 한 장 버렸다가… 아이의 분노 쓰나미 아이 책상 위에 5일 내내 굴러다니던 A4 용지가 거슬려 갖다 버린 이민숙(40)씨. 내친김에 어지러진 문구류를 정리하며 ‘청소 좀 하라’고 아이를 다그칠 심산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온 아이는 울먹이며 담임선생님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고, 30분을 달래고 또 달래 기분을 풀어줘야 했다. 아이가 자기 방에 들어가면서 또 한 차례 쓰나미가 몰려왔으니. “왜 허락도 없이 정리했느냐고 짜증 내더니 점점 분노와 괴성이 터지더군요. 엄마는 이게 깨끗해 보이겠지만 전부 다 내가 쓰기 편하게 신경 써서 둔 건데 왜 치웠느냐, 엄마 열 살 때나 누가 치워주면 좋았지 나는 아니다 괴성을 지르는 아이와 한 시간 넘게 사투를 벌이다시피 했죠.” ‘괜히 정리했다 이게 무슨 꼴이람’ 되뇌었다는 이씨는 자고로 한창 독립심이 꿈틀대는 시기의 아이는 잘못 건드리면 큰코다친다는 교훈을 얻었다.
푸념 한마디 했다가… 엄마는 편하게만 살려고 해? 아이를 혼내다 보면 어느새 어린애가 엄마 속을 다 알 리 없다는 생각에 푸념을 늘어놓기 십상. 그러나 최유림(40)씨는 열 살 난 딸 앞에서 한숨 한 번 쉬었다가 ‘인생 그렇게 살지 마’란 말까지 듣고 말았으니. 늦둥이를 낳아 키우느라 하던 회사 일마저 중단해야 하는 상황에 버릇처럼 욕구 불만을 표현하던 터. ‘네 동생만 안 낳았어도 엄마가 이러고 살지 않을 텐데’ 하는 혼잣말에 맞은 뭇매는 이렇다. “엄마는 나 하나였어도 밖에 잘 안 데리고 나가고, 다른 핑계로 일 그만두려고 했을걸? 동생 덕분에 할머니 집에도 자주 안 가고 아빠랑 나한테 일 다 시키면서 편해진 것도 많잖아. 난 학년 올라갈수록 힘들게 공부하는데, 엄마는 나이가 들어도 어떻게 편하게만 살려고 해?” 오늘도 표정 관리와 말조심을 실천하며 긍정의 내공을 연마한다는 최씨다.
Talk 3 양가 어머니
시댁 만두 사수하려다… 명절 일이 두 배요~ 손위 동서 둘 사이에서 기싸움에 눌리기 일쑤인 한은경(가명·41)씨. 한번은 추석날 냉동실에 시어머니가 빚은 만두 두 봉지가 남아 있는 걸 보고 냉큼 차지해야겠다는 계산이 발동, 집 근처 왕만두집 얘기를 하며 “그래도 저는 어머님이 해주시는 만두가 제일 맛있던데요~” 하며 운을 띄웠다. “명절 음식 준비에 피곤해하던 시어머니가 화색을 띠더니 ‘그럼 우리 차례 지내고 다 같이 만두나 빚을까?’ 하시는 거예요. 차례만 지내고 서둘러 친정으로 가려던 동서들은 우거지상이 되고, 두 시간을 부동자세로 앉아 만두만 빚었죠.” 철인 3종 경기에 버금가는 추석 일정을 마친 동서들에게 “먹고 싶으면 그냥 주세요, 하지 왜 그랬어!” 하며 원망의 폭탄 세례를 맞았다.
애 파마해주려다가… 친정엄마와 결별(?) 위기 친정엄마한테 아이를 맡기고 부업을 하러 갔던 김선아(37)씨는 돌아와 아이를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긴 생머리를 삐뚤빼뚤한 단발로 자른데다 앞머리는 눈썹 위 5센티미터라 완전히 다른 얼굴이 되었더라고요. 별생각 없이 ‘내일 파마라도 해줘야겠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화를 내시며 ‘괜찮은데 뭘 그러느냐, 얼마나 힘들게 잘라놨는데 네가 그럴 수 있느냐’며 짐 싸서 나가시더군요.” 이걸로 끝이 아니다. 야근 중 장모에게 전화 폭격을 맞은 남편. 모든 화살이 남편한테 돌아가 “둘이 벌어서 빨리 집 사라고 애 봐줬더니 이렇게 푸대접을 할 수 있느냐, 내가 자식한테 용돈 몇 푼 받으려고 여태 애 봐준 줄 아느냐, 다시는 애 봐주러 안오겠다고 울먹이시더래요.” 나이 들면 서운한 일이 많다고 하듯 어르신들 판단은 일단 존중하는 게 삶의 지혜임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Talk 4 선생님
겸손하게 말하려다… 수강 한 과목 추가! 송미영(42)씨는 학습 능력을 신장하고 싶으면 학원 선생님과 밀착하라는 조언을 선배 엄마에게 들었다. 엄마보다 선생님이 아이 학습 태도를 잘 알 테니 절대 자랑하지 말고 되도록 많은 정보를 빼내라는 테크닉도 새겼다. “영어 학원에서 한 학년 높은 아이들과 같은 레벨 수업을 듣는 입장에서 ‘영어 실력은 자랑해도 좋은 단계거든요. 그래도 우리 애가 소극적이라 답답하시죠~’ 하고 겸손하게 말문을 열었죠.” 물론 ‘아니다. 다른 면이 뛰어나니 그 부분을 더 신장하면 된다’는 대답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돌아온 답은 “그러게요. 이 정도 레벨이면 말하는 걸 즐기는데 고개만 끄덕이고 있으니까 맥이 빠지던데요. 아무래도 낮은 학년 때문에 못 따라오는 면도 있어요”였다. 너무나 솔직하게 있는 그대로 말해준 강사. 겸손하게 말하려다 확인 사살 받고는 그날 저녁 애만 잡았다. ‘집에서 부족한 영역을 보완하고자 늘 노력한다’는 이미지메이킹만 챙겼어도 화·목반 수업까지 듣는 충성은 피할 수 있었는데.
기선 제압당하지 않으려다… 희생과 봉사의 아이콘으로 박윤영(45)씨는 고수 엄마들한테서 ‘미술 전공했다는 말이나 외동이라는 말을 일부러 하지는 말라’는 말을 들었다. 시간 많고 재주 많으면 학교에 불려가기 십상이라는 것. 그러나 청소하러 갔다가 선생님과 다 같이 면담하는 자리에서 젊은 엄마들한테 제압당하기 싫은 욕심에 “제가 미술을 전공해서 그런지 애도 낙서하는 걸 좋아해 외둥이라도 심심해하지 않아요”란 말을 던지고 말았으니. 그날 이후로 학교 환경 미화나 청소에 섭외 1순위로 불려 다니며, 미술대회가 있으면 같이 내보내자며 도움을 기대하는 엄마들이 줄을 섰다. 외둥이에 전업주부라는 것까지 안 엄마들은 모둠 과제가 있을 때마다 ‘우리 집은 큰애 때문에 안 돼~’ 하며 집합처를 떠안긴다. 과시욕에 던진 한마디에 한 학년 내내 희생과 봉사를 다해야 했다는 박씨는 ‘순간의 한마디가 1년을 좌우한다’고 전했다.
최유정 리포터 meet1208@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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