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병! 참으면 병 된다

참는 게 미덕인 시대는 옛말, 화의 건전한 분출구를 만들어라

지역내일 2011-04-14 (수정 2011-04-14 오전 8:51:35)

다른 민족에 비해 유난히 한이 많고 정이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질병이 있다. 바로 화병. 각종 스트레스로 가슴이 답답하고 분노의 감정이 생기면 사람들은 흔히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표현을 쓴다. 화병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우리문화 특유의 문화 진단명으로 우리발음 그대로 Hwa-byung(火病)이라고 미국정신과학회 진료편람에도 등재되어 있다. 화병이란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오랫동안 쌓여서 생긴 화가 분노덩어리가 되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문제 증상을 나타내는 것을 말한다. 스트레스를 혹처럼 달고 사는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호소한다는 화병. 특히 무슨 일이든지 참고 사는 게 미덕처럼 인식되어 온 우리나라 정서에서 화병은 남녀노소 누구나 한번쯤 겪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원광대학교 한의대 산본한방병원 한방신경정신과 강형원 교수의 도움말로 화병의 원인과 증상, 예방법 등에 대해 알아보았다. 

화병도 중년여성에서 중년남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강 교수는 화병에 대해 예전에는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었던 유교문화권 내에서 며느리의 삶이 화병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알려져 왔지만 오늘날에는 부부관계, 노사관계, 직장상사와의 관계 그리고 수험생들에게까지 그 범위가 다양해졌다고 말한다. 화병의 가장 대표적인 원인인 분노야말로 다른 인간의 감정보다 훨씬 더 조절하기 힘들고, 한번 발산하면 그 파괴력이 개인,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주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강 교수의 생각이다. 지난달에 있었던 아버지의 잔소리에 분노를 참지 못해 저지른 존속살해사건이나 묻지마 살인, 전국 산불방화, 유괴살인 등의 범죄는 화를 제대로 분출하지 못해 생긴 사회적 화병의 한 유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모방범죄가 많아지는 것도 한 번 분출되면 확 번지는 화병의 전염성 때문이라는 것. 화병은 남성보다 30대 후반부터 5, 60대 중년여성에게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최근에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확대와 직장 내 남성들의 위축, 그리고 아버지 역할의 혼란 등으로 중년 남성들의 발병률도 높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특히 학업에 의한 스트레스가 많은 청소년이나 젊은층도 화병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하고 있어 그 연령대가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화병은 약자의 표현이기 때문에 어떤 관계에서든 한 쪽이 일방적으로 참고 견뎌 내야하는 시스템에서는 화병 환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못하다가 억눌렸던 마음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더 이상 통제할 수 없을 때 발생하게 된다”고 강 교수는 설명한다. 화병은 하루아침에 발병하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오랜 기간 지속될 수 있는데 특히 중년여성의 경우 갱년기가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화병의 발병 단계는 처음에는 정신적 충격과 함께 강한 분노가 생기는 분노기에 이른다. 이 단계에 다다르면 성격 경향에 따라 분노를 바로 표출하는 사람과 그대로 덮어두는 사람으로 나뉘게 되는데 분노를 바로 표출하는 사람에 비해 후자는 많은 갈등을 거치면서 화병의 경과를 밟을 가능성이 높아져 화병이 시작될 경향이 높다. 결국 내가 참는 수밖에 없구나 하는 희생양 역할로 돌아서게 되면 바로 심한 우울기를 거친다. 이후 검사해도 이상이 없는데 신체의 통증을 호소하며 신체증상기로 나타나게 된다.




운동, 대화 통해 스트레스 해소하는 것이 예방책
화병이 생기면 개인의 성격, 체질, 스트레스에 대한 대응능력에 따라 순환기계, 신경계, 호흡기계, 소화기계 등 다양한 증세로 나타날 수 있다. 열이 확 오르거나 가슴이 답답하며 우울감, 불면증, 식욕저하, 피로 등의 증상을 동반한다. 소화가 잘 안되거나 명치에 뭔가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며 몸 여기저기에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무언가 치밀어 오르고 갑작스레 분노가 폭발하거나 짜증이 나기도 하며 죽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급성기에 접어들면 불면증이 생긴다.
“사람의 감정은 흐르는 물과 같다. 물이 흐르지 못하고 고이면 썩는 것처럼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면 화가 쌓여 병이 생기게 된다. 화병 치료를 위해서는 화의 원인을 제거하고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 교수는 충고했다. 화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규칙적인 생활습관과 운동 등을 통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길러 주는 것이 필요하다. 취미 생활 역시 화를 안으로 삭이지 않고 발산하는데 도움이 된다. 부정적인 감정을 억누르기만 하는 것 역시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가족이나 친구,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현하는 것 또한 도움이 될 수 있다. 대인관계 등의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되거나 스스로 대처 방법을 찾기 어렵다면 전문적인 상담과 함께 정신 치료를 통해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 강 교수는 또 “한의학에서는 정신적 문제라도 신체와 연관되어 나타나므로 몸과 마음이 하나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다”며 “한방에서는 침, 한약, 부항 등을 통해 신체 문제를 해결하고 정신적 상담 치료가 진행된다”면서 “화병으로 인한 불면증 환자라면 원광대 산본한방병원에서 실시하는 침 치료 임상시험에 참가해 도움을 받아 보라”고 덧붙였다.
배경미 리포터 bae@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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