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처럼 대한민국 남자를 잘 아는 이가 있을까. 『남자 vs 남자』라는 저서를 통해 남성 심리전문가라는 타이틀을 얻은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박사. 그녀는 오래전부터 기업의 임원이나 CEO를 대상으로 심리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1998년 대규모 구조조정 과정에 살아남은 직장인들의 심리적 공황상태를 연구한 ''ADD증후군'' , 중년 남성들의 삶을 정신의학적으로 살펴본 ''맨 콤플렉스'' 연구 등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겨레신문''에 ''정혜신 마음''이란 칼럼을 쓰면서 남다른 사회적 통찰력과 예리하고 정교하게 심리를 분석하는 칼럼니스트로도 활약 중이다. 그녀는 현재 정신건강컨설팅 기업 ''마인드프리즘''의 대표로 활동 중이며 얼마 전에는 국내 최초의 심리카페 ''홀가분''을 열었다. 신사동에 자리한 그곳에서 그녀를 만났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공간
카페 이름 때문인지 왠지 홀가분하게 터놓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 한산한 카페에서 심리치유 전문가와 마주 앉으니 깊은 곳에서 치유받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마흔 아홉 살에 청바지를 입은 소탈한 차림의 그녀에게서 날카로운 심리분석가의 이미지를 찾기란 쉽지 않다. 웨딩그린티를 사이에 두고 심리 카페 ''홀가분''을 열게 된 계기를 그녀에게 물었다.
"마인드프리즘에서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기업의 임원이나 CEO들이에요. 고도의 정신노동을 하는 사람들이죠. 기업의 중요한 일들에 대해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이고요. 그들을 만나 심층심리분석을 바탕으로 심리 치유를 하고 있어요. 이 과정은 한 사람 한 사람의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즉,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죠. 이 과정을 진행하다 보면 많은 이들이 안개가 걷히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합니다."
그래서 자기성찰(Self-Encounter)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참가자들은 보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 프로그램에 연결되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기존 프로그램은 시간도 많이 걸리고 무엇보다 비용이 비쌌다. 그래서 보다 많은 이들이 일상에서 좀 더 쉽고 편하게 자아성찰을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최종적으로 심리카페가 만들어지게 됐다고 말한다.
자기성찰은 마음을 MRI 촬영하는 것
그녀가 직업적으로 만나는 이들은 대체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성공한 사람은 자기 억압 지수가 높습니다. 사회적 성공은 자기 억압의 결과일 수 있어요. 끊임없이 평가받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습니다. 성공 경험으로 자기 확신이 강화된 사람들이 스스로의 내면을 열어 보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결국 자신의 내면을 열고 근원적인 곳으로 들어가면 그곳에 아내와 아이가 있습니다."
조직내에서 아무리 큰 위상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내밀한 관계의 핵심에는 배우자나 자식과의 갈등이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얘기다.
젊은 날엔 일에 치여서 가족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는 우리나라 남자들. 자식은 아내가 알아서 잘 키워주겠지 하고 철썩같이 믿었던 이들이다. 눈깜할 사이 자식도 크고, 중년이 훌쩍 넘은 어느 날 남자는 아빠 역할이 해보고 싶어진다. 하지만 남자는 한 번도 아버지 역할에 대해 학습해 본 적이 없다. 막상 부딪히니 어려울 수밖에.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단다. 자기성찰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자기성찰의 과정은 자신의 마음을 MRI 촬영하는 것과 같아요. 자기 안의 뒤틀림이나 억눌림, 맺힌 곳을 터치해 주면 그동안 얽혔던 실타래들이 풀리면서 세상을 여유롭게 바라보게 되지요."
그것이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변주곡이라고 설명한다.
인간을 파괴하는 ''경쟁''에서 벗어나기
요즘 사람들은 대체로 홀가분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과도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불필요하게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는 것 같아요. 그것도 일생에 걸쳐서요. 남녀노소 불문하고 경쟁이 필요 없는 직업의 사람들까지도 경쟁을 해요. 이렇다 보니 현상적으로는 사람들의 불안 레벨도 높고, 초조해지고 날카롭고 공격적이게 되죠."
경쟁은 곧 ''비교''에서 비롯된다고 말하는 그녀는 "비교의 구도 안에서 경쟁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인간은 예외 없이 누구나 불행해진다"고 경고한다.
마인드프리즘 홈페이지에 연재중인 그림에세이 ''힘의 근원''에서 그녀는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든 힘의 근원은 자기를 절절하게 느끼는 행위에서 비롯합니다. 잘났든 못났든, 상처투성이든 아니든 그 안에서 내 본래의 모습이 이랬구나, 내가 그래서 힘들었구나, 나한테 이런 욕구가 있었구나…를 알아차리고 발견하기. 그럴 때 인간의 자기치유력은 극대화됩니다.''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열게 하는, 그런 마력을 지닌 심리치유전문가 정혜신 박사.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마주하다보면 힘들 것도 같은데 내담자의 아픔이 치유되는 과정 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말하는 그녀. 세상을 안은 어머니처럼 홀가분 카페에 앉은 그녀의 눈빛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김지영 리포터 happykyk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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