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미친 남자 김명기. 천호동 사무실에서 만난 첫인상은 차돌멩이처럼 다부졌다. ‘사람이 바빠서 말을 탈 수 없다면 말이 사람에게로 가면 된다’는 역발상으로 시작한 <찾아가는 승마교실>. 2007년 청량초등학교에서 처음 시작된 승마 방과후 교실은 3년 만에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37개 학교, 1500명의 학생이 참여하고 있다. “운동장에 처음 말이 등장하면 난리가 나요. 500kg짜리 말이 아이들의 영혼을 사로잡죠. 비가 오나, 동장군이 기승을 부려도 우리는 수업을 해요. 물론 학생들도 즐거우니까 궂은 날씨에도 아랑곳 않고 말을 타죠.”
<한국국토대장정기마단> 김명기 대장은 틈나는 대로 압구정동 등 도심을 말을 타고 활보한다. 귀족스포츠로 알려진 승마를 생활스포츠로 보급하기 위한 홍보 전략이다.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안전과 체계적인 교육시스템. 50마리의 말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꼼꼼히 점검하고 기록으로 남긴다. 54명의 직원들에게는 1분의 지각도 허용하지 않을 만큼 엄하게 지도한다. “초창기에 교관들 때문에 애를 많이 먹었어요. 그래서 아예 신입직원을 뽑아 기초부터 맞춤형으로 길렀죠. 어린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에 승마 스킬 뿐 아니라 안전수칙과 말투, 행동 가짐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학교 운동장에서 배우는 승마
공학도였던 김 대장은 ‘시스템 만들기’의 귀재다. 승마교본도 직접 썼고 대학생 기마단을 중심으로 외국의 유명 승마 서적도 여러 권 번역했다. 국내에는 국가공인 승마자격증 아예 없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승마 진급시험을 만들어 정기적으로 테스트를 치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승마에 필요한 다양한 마구도 직접 개발했다. “3~4시간씩 승마교습을 하다보면 말 똥으로 학교 운동장이 엉망이 되죠. 그래서 말 기저귀인 ‘분뇨 처리기’를 고안해 특허까지 받았죠.” 김 대장의 열정 덕분에 청심국제중에서는 승마를 정규 교과목으로 채택했고 방과후수업 개설을 희망하는 학교도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1년 48주, 1개월에 13만원. 사실 교관과 말 훈련비, 운영비 등을 따져보면 박리다매형 사업이죠. 하지만 저는 미래를 보고 투자하는 겁니다.”
승마는 자세교정 뿐 아니라 대근육을 고르게 발달시키기 때문에 운동효과가 좋다. 게다가 말과 교감을 하기 때문에 감성발달에도 도움이 된다. “ADHD 증후군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였어요. 3년을 꾸준히 나왔지요. 말 타려면 꼿꼿이 앉아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담당의사가 놀랄 만큼 호전되었어요.” 이 같은 승마의 재활치료 효과에 주목한 강동구청은 다운증후군 등 관내 장애아 30명에게 승마를 배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IMF로 사업 실패 후 말 타고 국토순례
김 대장과 말과의 첫 인연이 궁금했다. 잘나가던 중소기업체 사장이었던 그는 IMF때 도산했다. “공부도 곧잘 해 대학원까지 마쳤고 집에선 우리 아들 최고라는 말만 듣고 자라 ‘나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착각과 자만에 빠졌죠. 그러다 폭삭 망했어요. 가정사도 풍비박산 났지요.” 나락으로 떨어졌던 실패의 쓰린 경험이 가르침을 주었다. 경기도 서삼릉에서 야영장하며 근근이 살던 중 인근에 말 기르며 체험승마장을 운영하는 전직 기수를 만났다. 말똥 치우며 배운 말 타기의 묘미에 점점 빠져들었다. “야영장을 찾아온 대학생들과 국토대장정팀을 꾸려 말을 타고 서울에서 제주까지 완주했어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라면으로 끼니 때우고 폭염을 뚫고서 아스팔트를 달렸어요.” 이렇게 시작된 기마국토대장정은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옛 문헌을 뒤져 우리나라의 승마 역사를 수집했다. “임금이 말의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마조단이 현재 한양대 안에 있어요. 맥이 끊겼던 마조제를 부활시켜 해마다 제사지내고 있습니다.”
무데뽀 정신으로 생활 승마 시장 개척
중고 트럭 한 대와 임대한 말 몇 필로 혼자서 시작한 <찾아가는 승마교실> “무데뽀 정신으로 버텼죠. 무작정 학교로 찾아가 설득하고 운동장에서 시범보이면서 방과후 학교 수를 늘려나갔죠.” 그동안 겪은 에피소드도 다채롭다. 한밤중에 대구로 가던 중 낡아빠진 트럭이 고장 났다. 중간 중간 차 세워 냉각수 부어가며 280km에 달하는 대구까지 달렸다고 한다. “외제차 타며 떵떵거렸던 내가 고장 난 고물차 모는 신세가 됐구나. 처량 맞았죠. 근데 주변을 보니까 졸린 눈 비벼가며 덤프트럭 모는 기사들, 야근하는 도로공사직원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그때 깨달았죠. 나만 고생하는 게 아니구나. 다시 이을 악물었죠.”
온갖 장애물을 넘으며 김 대장은 승마교육이라는 블루오션 시장을 만들고 있다. 새벽 5시면 눈을 떠 승마관련 사진과 동영상 등 홍보자료를 온라인 카페에 업데이트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잔소리 대마왕’ 소리를 들을 만큼 직원 교육에는 철두철미하다. “제 꿈은 찾아가는 승마교실을 전국 체인화하는 겁니다. 패스트푸드점처럼 시스템화해서 어디서든 표준화된 교육을 받는 거죠. 그리고 제가 가르친 아이들이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대한민국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을 꼭 보고 싶습니다.” 김 대장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오미정 리포터 jouro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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