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잔잔한 호수의 물결처럼 마음속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그리움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새벽같이 일어나 일정에 따라 분주하게 움직여야하는 강행군이라 할지라도 지나고 나면 그것마저 그리워지는 것이 여행이다. 초등학교 시절, 파월 장병아저씨에게 위문편지를 썼던 어린 소녀들이 어느덧 중년의 주부가 되었다. 위문편지의 추억이 떠오르는 베트남으로 가기 위해 밤잠을 설친 주부 삼총사는 아침 일찍 하노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오토바이와 아오자이의 나라
아오자이(베트남여성의 전통의상)를 입은 스튜어디스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다섯 시간 후 베트남 하노이의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했다. 베트남은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에 있는 가늘고 긴 S자형 국가이다. 북으로는 중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서북으로는 라오스, 캄보디아, 동서로는 남중국해와 타일랜드만에 인접해 있다. 언어는 베트남어이고 프랑스어, 영어가 일부 통용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우리에게는 15일 동안 무비자 입국이 가능했다. 하지만 짐을 찾는 데 무려 한 시간이 넘게 걸려 ''이럴 줄 알았으면 짐을 부치지 말 걸''하고 잠시 후회했다. 우리 일행은 전세버스를 타고 하노이 시내를 가로질러 쌀국수(포, Pho)집을 찾아갔다. 시내 풍경은 듣고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무질서와 매연 그리고 소음이 도로를 온통 뒤덮고 있었다. 시민들의 교통수단인 스쿠터와 오토바이 행렬은 신기하면서도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독립투사이자 혁명가였던 국민영웅 호치민
간단히 요기를 하고 호치민 묘와 바딘광장으로 향했다. 온 국민이 호아저씨(Bac Ho)라고 부를 정도로 베트남 국민에게 친근감을 주었던 독립투사이자 혁명가인 국민영웅 호치민. 그의 시신은 화장을 하지 않고 방부 처리한 채 밀랍형태로 일 년 중 10개월 동안은 관람객들에게 개방된다고 한다. 호치민 묘 앞에는 두 명의 근위병이 교대로 보초를 섰고, 맞은편에는 우리나라의 여의도광장과 같은 바딘광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노이의 중심인 바딘광장은 베트남의 독립이 선언되었던 곳으로, 지금은 국회의사당과 공산당 본부건물 등 정부부처가 모여 있는 지역이다. 호치민 박물관과 생가를 지나니 한기둥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한 개의 기둥위에 불당을 얹었다 해서 한기둥사원으로 불리는 이곳은 한국과 베트남 수교 10주년 기념우표에도 등장했다고 한다. 이 사원은 1094년 리 타이 통 왕 때 축조된 것이며 탑 자체는 아담하고 소박했다. 이 사원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아들을 낳고 오른쪽으로 돌면 딸을 낳는다는 속설 때문에 그날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하노이의 명물 씨클로 시내 관광
우리는 하노이의 명물인 씨클로(자전거 인력거)를 타고 하노이 시내를 관광했다. 씨클로의 남자기사가 "언니~"하면서 어눌한 한국말로 거리풍광을 설명했다.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의 수도인 하노이는 1011년에 세워진 고 도시이다. 하노이 번화가는 호안키엠 호수를 중심으로 남쪽 일대는 호텔과 레스토랑, 여행사, 항공사, 대사관 등이 모여 있고, 프랑스 통치시대에 세워진 콜로니얼양식의 건축물과 교회도 거리 곳곳에 남아있다.
하노이 오페라하우스, 대통령궁, 베트남 은행(인도차이나 은행의 전신), 성 요셉 성당, 소피텔 메트로폴 호텔 등은 당시에 지은 건축물들이다. 하노이의 시커먼 매연을 온몸으로 맞으며 30여 분간 시내 중심가를 달렸다. 무턱대고 밀려드는 오토바이 부대와 금방이라도 충돌할 것 같아 불안했지만 용케도 잘 피해 다녔다. 최근에는 남서부지역에 사무실 빌딩과 고층주택이, 북부에는 공업단지가 들어서 종래의 옛 도시와는 다른 신도시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3천개 이상의 섬들이 보여주는 장관, 하롱베이
하노이의 동쪽에 위치한 하롱베이 국립공원은 1994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8대 비경으로 꼽히는 곳이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도로를 4시간가량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하롱베이 국립공원(Halong Bay National Park)은 영화 ''인도차이나''와 로빈 윌리엄스의 ''굿모닝 베트남''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어서 우리에게도 그리 낯설지 않다.
하롱(Halong, 下龍)이라는 말은 글자 그대로 ''용(龍)이 바다로 내려왔다''는 것을 의미하며 전설에 따르면 한 무리의 용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사람들을 구했고, 침략자들과 싸우기 위해 내뱉은 보석들이 섬이 되었다고 한다. 선착장에서 이층짜리 유람선을 탄 후 얼마나 지났을까 배 주위로 뾰족한 바위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진입하니 수많은 바위섬들이 망망대해 위에 흩뿌려져 있었고, 우리 일행은 하롱베이의 불가사의한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해면위로 점차 윤곽을 드러내는 기암괴석의 자태를 눈앞에 마주하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 모두는 호수와도 같은 잔잔한 바다 위에서 미로와 같은 섬들에 포위되어 신비와 경외 그리고 적막 속으로 서서히 잦아들어갔다.
선상에서 즐기는 싱싱한 해산물
이곳의 독특한 지형은 중국 계림에서부터 난빈까지 이어지는 석회암 대지가 바닷물과 비바람에 침식돼 변모한 것이라고 한다. 둘이 나란히 바라보고 있는 키스바위를 비롯해 용섬, 거북이섬, 원숭이섬 등의 별명을 가진 섬들로 인해 ''바다의 계림''이라고도 불린다.
중간 지점에서 작은 배로 갈아타고 기암괴석들을 더 자세히 보기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만 일대의 수심은 2미터정도라고 하며 해수면은 짙은 에메랄드빛이었다. 더운 동남아지만 바닷바람을 쐬니 추위가 느껴졌다. 서울에서 가져온 겨울용 파카를 입고 중간 선착장에 내려 갓 잡아 올린 생선을 구경하면서 우리가 먹을 횟감을 골랐다.
드디어 기다리던 점심식사. 기본으로 제공되는 스프링 롤, 조개, 오징어, 새우 등과 밑반찬들도 푸짐했고, 거기에 다금바리를 비롯한 해산물이 더해져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었다. 싱싱한 생선회를 초고추장에 찍어 상추와 각종야채에 싸서 먹으니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곧이어 안락미로 지은 하얀 쌀밥에 매운탕까지, 보기만 해도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우리 일행은 시원한 맥주잔을 높이 들고 다함께 건배를 외쳤다. 파도가 거의 없는 잔잔한 바다를 유람하면서 만끽했던 선상에서의 만찬은 그런대로 만족스러웠다.
열대과일의 달콤한 유혹
조그만 배에 과일을 가득 싣고 유람선 주위를 맴돌면서 과일을 파는 아낙네와 어린아이들도 보였다. 열 살 남짓 돼 보이는 아이한테 리치 한 바구니를 샀다. 그 아이의 꼬질꼬질한 손때와 맑지만 슬퍼 보이는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잠시 배에서 내려 주변의 석회동굴을 둘러보았다. 동굴은 아주 넓고 깊었으며 영롱한 조명으로 장식돼 있어 별세계에 온 듯 착각을 일으켰다.
가이드의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며 동굴을 빠져나오니 희뿌연 안개가 드리워져 있다. 6시간의 관광을 마치고 처음 출발했던 선착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천원에 3개~"하면서 기념품을 파는 어린 소녀들이 우리를 향해 손짓했다. 우리의 화폐를 타국에서 쓸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럽기도 했고 묘한 느낌도 들었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다음 바로 옆에 있는 야시장으로 나갔다. 알록달록한 공예품들 외에도 먹음직스러운 과일들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한국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열대과일인 망고스틴과 망고, 파인애플 등을 실컷 먹을 수 있어 행복했다. 다음날, 하롱베이에서 다시 하노이로 귀환한 우리는 뷔페식당에서 마지막 점심을 들었다. 우리 입맛에 맞는 쌀국수를 비롯해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월남음식들이 수 백 가지나 되는 듯했다. 베트남에는 쌀국수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이 3백여 종류가 있다고 한다. 주변의 재래시장을 둘러본 후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는 다음 여행지인 캄보디아 씨엠립을 향해 출발했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Tip / 베트남 여행 정보
- 기후 : 북부지역인 하노이는 아열대 기후로 4계절이 있다 (여름: 평균 28도, 겨울: 평균 15도) . 겨울엔 제법 쌀쌀하기 때문에 외투를 준비하는 것이 좋다.
- 비자 : 한국여권을 가지면 15일 동안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 시차 : 한국보다 2시간 느리다.
- 화폐 : 동(Dong), 1,000동 = 80원~90원 정도, 미화 1 불 = 14,000동
- 전기 : 220V, 50Hz
- 주의할 점 : ①물은 비닐 캡이 벗겨지지 않은 생수를 사서 마시는 것이 좋다.
②식당에 갔을 때, 주문하지 않았는데 휴지나 물수건 땅콩 등을 테이블위에 놓고 가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사용하면 나중에 요금이 따로 정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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