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녀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자녀는 부모의 지원과 기대에 조금이라도 부응하고자 하루의 대부분을 공부에 투자한다. 청소년이 있는 일반 가정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원과 노력이 정확한 목표와 방향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아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이 뚜렷해 일찍부터 진로를 결정해 매진한다면 좋겠지만, 대개의 경우 부모가 아이의 적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거나 아이 역시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원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태에서 고등학교 입학을 맞는 학생과 부모들은 마음이 다급해진다. 대학입시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의 확대에 따라 진로에 맞는 스펙관리가 요구되고, 2014학년도 수능개편안을 봐도 미리 진로를 정해 과목별로 수준별 시험을 준비해야할 필요성이 커졌다. 실제 고교 2학년부터 문·이과 계열을 분리했던 학교들도 1학년으로 앞당겨 계열을 분리해 학급을 편성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고교입학과 함께 진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문·이과 계열 선택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고교 문·이과 계열분리제도 자체에 대한 학계의 논란이 일고 있는 현 시점에서 입시제도와 맞물려 계열선택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봤다.
문·이과 계열분리, 융합형 인재양성의 걸림돌
고교에서의 문·이과 계열분리에 대해 학계에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나 마크 주커버그와 같은 융합형 인재양성에 걸립돌이 된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서울대학교 오세정 교수(물리학)는 “과학기술과 인문 사회적 능력을 고루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학제를 넘나드는 교육이 필수다. 그러나 우리 교육은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을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 지식의 편식을 강요하고 있다”(조선일보 1월 17일자)며 고교에서 문·이과 계열이 없어져야함을 강조했다. 또한 연세대학교 강호정 교수(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는 “우리 교육에서 지향해야할 방향 중 하나는 복잡한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새로운 제도는 고등학교에서의 교육을 그와 정반대 방향으로 향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조선일보 2월 5일자)고 말해 ‘2014 수능개편안’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진로적성교육 전문연구소인 와이즈멘토의 조진표 대표는 이에 대해 “문·이과 계열분리는 시대착오적이다. 학과의 성격도 많이 변했고 융합형 인재 양성에도 걸림돌이다. 많은 교과과목을 유지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나눠야만 하는 현상이 지속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학입시제도는 문·이과 계열선택을 요구한다
문·이과 계열분리가 미래형 인재 양성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입시제도를 보면 고교에서의 문·이과 선택은 꼭 필요하다. 휘문고등학교 신동원 교사는 두 가지 측면에서 문·이과 계열분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첫째는 대학입시 때문이다. 대부분의 수시 전형에서 실시되는 대학별고사에서 문과 논술과 이과 논술은 다르다. 문과 논술은 독해력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이고 분석적인 논리력과 표현력을 요구하고, 이과 논술은 수리적 과학적 이론과 현상을 토대로 한 문제해결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대학별 고사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열 분리가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수능 준비도 문·이과로 나누어 지도하는 것이 유리한데, 2014 수능에서는 더욱 계열 분리가 필요한 상태이다. 인문계는 언B, 수A, 외B/A, 사탐2로 선택해야하고, 자연계는 언A, 수B, 외A/B, 과탐2로 선택해야하므로 이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계열이 분리가 필요하다.
둘째는 계열 분리는 진로 선택의 첫 단계에 해당되므로 진로를 구체화하기 위해 필요하다. 고등학교 1~2학년 단계에서 인문, 사회, 자연, 공학, 예체능 등 큰 덩어리로 진로를 구체화하고, 고등학교 3학년 단계에서는 철학, 사회학, 경영, 정치, 물리, 천문, 기계 등으로 더욱 세밀하게 진로를 구체화한다. 이는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방향을 찾는 첫 단계이므로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한다.
문·이과 계열선택 언제가 적절한가?
필요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입시제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계열을 선택해야만 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그럼 언제가 가장 적절한 선택 시기인가? 와이즈멘토의 조진표 대표는 “2009 개정교육과정과 입학사정관제에서는 계열선택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유리하게 되어있기 때문에 늦어도 고1 1학기가 끝나기 전에 정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고교선택제에서 원하는 분야가 특성화 되어있는 고교를 선택하기 위해서는 중학교 3학년 고교선택시기 이전에 계열을 결정하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또한 휘문고 신동원 교사는 미리 진로를 결정해 공부의 방향을 잡는 것이 대학 입시나 학업 관리, 내신 관리에 유리하다고 한다. 신 교사는 “초등학교 단계에서는 적성이나 소질, 흥미를 판단해 국제중이나 예술중으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고, 중학교에서는 과학고, 외국어고, 국제고, 특성화고, 마이스터고 등으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하며 진로의 구체화가 빠를수록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음을 언급했다.
문·이과 계열선택 무엇을 기준으로 할 것인가?
문·이과 계열선택은 진로와 관련된 중요한 첫 번째 선택이다. 첫 단계인 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므로 자신의 진로 분야에 맞추어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조 대표는 ‘수학을 잘하면 이과, 수학을 싫어하면 문과’와 같은 식으로 계열을 선택하면 안 되며, 학과 목표를 정하면 계열은 자동으로 선택되는 것이므로 우선 학과목표를 고민해서 정하라고 조언했다. 예를 들어 수학을 잘한다고 이과를 갔는데 적성이 문과라면 대학에 가서 괴로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수학을 잘하는 학생 중에 과학 선호가 있어야만 이과를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수학을 잘해도 문과를 선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한다.
또한 신 교사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흥미나 희망, 목표 중심적으로 계열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상당히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일단 계열을 선택하면 같은 범주에 있는 학생들끼리 경쟁을 해야 한다. 흥미나 희망, 목표 의식이 강해도 학습 능력이나 적성에 맞지 않으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고, 경쟁에서 한번 밀리면 복구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진로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학습 능력과 적성이다”라고 조언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목표하는 학과진로가 뚜렷하다면 문제가 없겠지만,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도 진로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라면 문·이과 선택의 기로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교육제도의 현실이다.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지 않는 잘못된 계열 선택으로 중간에 부득이하게 계열을 바꿔야하는 경우 입시에서 큰 부담을 갖게 된다. 입시제도와 교육과정이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 만큼 학생과 학부모는 더욱 신중하게 진로에 대해 고민하고 계열을 선택할 필요가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우리 교육계는 미래가 필요로 하는 인재에 대해 좀 더 고민하고 그에 걸맞은 교육제도를 정립해야할 것이다. 백년대계인 교육이 이해관계자들의 갑론을박에 휘둘리는 동안 학생과 학부모는 혼란을 거듭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움말 전국학부모지원단 대표 휘문고 신동원 교사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
이선이 리포터 sunnyyee@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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