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 - 명현학교 강영자 교장

지역내일 2010-12-27

특수교사의 길, 힘들지만 행복하게 갑니다

 명현학교에 찾아갔던 18일 아침, 운전석 앞창으로 비쳐드는 햇살이 눈부셨다. 한동안 시리게 추웠기 때문일까, 차선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환한 빛이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밝고 푸근한 인상의 강영자 교장을 만났을 때, 리포터는 오는 길에 본 겨울 빛을 떠올렸다. 

1977년, 특수교사가 되다
 명현학교는 덕양구 삼송동에 있다. 지적장애를 지닌 유치부 초, 중, 고등부의 특수교육 대상 학생 170여명이 다니고 있으며 올해로 문을 연 지 40년째다. 강영자 교장은 34년째 명현학교에 몸담고 있다.
 “스무 살 때, 같은 성당에 주일학교 교사로 있던 분이 특수교사가 돼보지 않겠냐고 하셨어요. 70년대니까 그때는 (장애아를) 정신박약아라고 불렀던 때죠. 세상 사람들도 그렇고 저도 특수아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특수교사자격 검정고시를 따려면 대구대에서 치르는 시험을 3차에 걸쳐 봐야했다. 강 교장은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장애아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공부하면서 ‘이 아이들을 돕고 일생을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하겠구나. 이 아이들을 돕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은 거예요.”
 그렇게 특수교육에 발을 내딛은 강 교장은 1977년에 명현학교(당시 혜인학교)로 첫 발령을 받았다. 낮에는 수업을 하고 밤에는 생활관에서 장애아들과 함께 생활지도를 겸하는 일이었다. 열악한 조건인 줄 알고 들어오긴 했지만 스물을 갓 넘긴 처녀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외출은 한 달에 단 두 번 뿐. 처음 열흘은 적응이 안 돼 애를 먹었다.
 “신부님, 수녀님, 주일학교 선생님들한테도 다 배웅 받고 왔는데 다시 가야하나 어떡하나 고민했어요. 밤마다 일기 쓰면서 울었죠.”
 두부종이 딸랑딸랑 치면 아이들을 데리고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고, 대야에 세면도구를 챙겨 목욕탕으로 향했다. 방마다 하나씩 수도꼭지를 맡아 아이들 이 닦아주고 씻겨주고 학교에 보냈다. 저녁이면 이부자리 깔고 아이들을 재웠다. 밤 열시면 소등을 했다.

스물두 살 처녀 별명이 ‘세종이 엄마’
 누군가는 간밤에 짐 보따리 싸서 슬쩍 학교를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방학이나 휴가를 받아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들이 그렇게 보고 싶더란다. 강 교장은 그 가운데서도 오세종이라는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제 별명이 ‘세종이 엄마’였어요. 걔가 잠들기 전까지는 다른 방에 마실도 못가요. 화장실 갈 때는 데리고 가서 세워놓고 볼일을 봐야 돼요. 너무 애가 상태가 심하니까 꽃이 있으면 다 따고 있으면 집어서 던지고. 그래서 우리 방은 다 삭막했어요. 화장품도 잠그고 예쁘게 꾸밀 수가 없는 거예요.”
 하루는 강 교장이 잠이 들었는데 이상한 꿈을 꾸었다. 빗질을 해야 하는데 머리가 빗어지지 않더란다. 눈을 떠보니 세종이였다. 방 안을 돌아다니며 오줌, 똥을 조금씩 싸놓고 치워달라고 머리를 잡아당긴 거였다.
 “여름에 휴가를 주면 세종이가 어떻게 지낼까 궁금하고 보고 싶은 거예요. 나도 참 못 말리겠다, 했어요. 밥 먹다가도 숟가락 휙 던지면 다른 숟가락을 집어다 줘야 하고. 금방 손으로 집어 먹고 다른 애 반찬 건드리고. 정말 힘들게 하는 아이인데 그런 아이가 더 정이 가고  보고 싶다는 걸 알았어요.”
 그렇게 평교사를 거쳐 13년간 교감으로 일했고 지난 2008년 3월, 교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지난 시절, 힘들게 지낸 경험이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가 되었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잘 이해하게 되었고, 아이들 눈빛 손짓 하나만 보아도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특수교육이기에 정말 즐겁고, 아무것도 힘든 것이 없다고 강 교장은 말했다. 

장애아 위해 일생을 살고파
 ‘선생님 나는 이것이 필요해요’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장애아들을 대변하고 싶다는 강 교장. 그런 고민 끝에 시작하게 된 것이 날마다 1교시를 운동으로 시작하는 ‘건강 지킴이’ 수업이었다. 날이 좋을 때는 뒷산으로 산책을 가고 겨울이나 날씨가 안 좋을 때는 영상을 보고 교실에서 스트레칭이나 요가 등을 따라한다. 비장애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동작 하나도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 170여명 학생에 교직원 95명 모두가 달라붙어 지도한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지 않겠나, 날마다 아침에 하면 힘들지 않겠냐며 처음에는 교사들도 불만이 많았어요. 그런데 3년째 되니까 효과들이 보여요. 매년 신체능력을 체크하면 향상되고 있고 비만 아동도 급격하게 줄어들었어요.”
첫 해부터 ‘건강 지킴이’ 책임을 맡아 온 체육담당 조철환 교사의 말이다.
산행을 나가기 힘든 학생들은 그 시간이면 개별 지도를 받는다. 5학년 변재민 군은 입학 당시 보조기구 없이는 일어서기도 힘들었으나 지금은 보조기구에 의지해 운동장을 한 바퀴 돌 만큼 상황이 좋아졌다. 재민군의 담임 현은경 교사도 “다리 올리는 힘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명현학교는 재활승마, 1분 스피치, 방송부, 댄스부, 자기 주장부, 미술부 등 체력과 자신감을 올려주는 활동들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5학년 한원석 군은 지난 8월 대구에서 열린, 지적장애 학생들을 위한 ‘스페셜 올림픽’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에 끝까지 달리는 어린 학생을 보며 사람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세상의 속도와 다르다. 그러나 명현학교 학생들은 강 교장을 비롯한 선생님들의 응원 속에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자라나고 있었다.
 ‘세종이 엄마’로 시작해 강산이 세 번 바뀌고도 몇 해가 더 흘렀다. 강 교장은 자신을 교사로 있게 해 준 장애아들을 위해 일생을 살고 싶다고 했다. 
 “부족함 투성이 그 자체였던 저를 특수교사가 되게 해준 우리 아이(학생)들에게 빚을 졌다고 생각해요. 그 빚을 다 갚고 떠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생활해요.”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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