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할 때나 일에 지칠 때면 우리는 가족들과 나누는 단란한 저녁 자리를 그리워한다. 그러나 요즈음은 항상 먹는 게 눈앞에 널려 있다. 그러니 달리 음식에 대해 생각할 것도 없이 배가 고프면 눈앞에 있는 것들을 집어다 먹기만 하면 된다.
선택해서 섭취하는 의욕의 부재가 ‘항상 영양이 충분하도록 먹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현대인들을 시달리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음식에는 영양 외에 세월의 여유와 인정을 담은 맛과 멋이 함께 우러났다. 식사 중이라도 행상이나 손님이 왔을 때 밥 한 술 뜨기를 권한다. 잔칫날 음식 냄새가 대문 밖으로 풍기면 지나가는 과객까지 불러들여 나눠 먹는다.
어른들이 밥상을 물릴 때면 으레 밥 서너 숟갈, 맛있는 고기 한두 점을 남겨 아랫사람들로 하여금 맛을 보게 한 배려도 조상들의 여유와 인정의 모습이었다.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 감나무 끝에 매달린 서너 개의 홍시, 이른바 ‘까치밥’에서 날짐승에게도 베푸는 보시 정신도 엿볼 수 있다. 정월 보름에는 소에게도 오곡밥과 나물을 키에 차려 먹이면서 나물보다 오곡밥을 먼저 먹으면 그해 풍년을 예감하였다.
들일을 하면서도 먹는 음식은 맨 처음 ‘고수레’라 하여 땅과 미물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보냈다. 가을 수확이 끝나면 농가에서는 햇곡식으로 시루떡을 만들어 고사를 지낸다. 이때에도 대들보 밑이나 밭둑에서 새참을 먹을 때 길 가는 사람을 불러 모아 밥 한 술, 술 한 사발을 나눠 먹길 권하는 마음이 우리네 심성이고 인정이었다.
진기하고 맛있는 음식을 장만하여 조상을 생각하고 부모와 어른을 생각하며 이웃과 나누고 심지어 땅속과 땅위의 미물과 짐승들과 함께 나누는 이러한 마음은 공식(共食) 공생(共生) 공존(共存) 정신의 발현이며 한국인만이 갖는 인심과 선정의 발로다.
그러기에 우리의 음식에는 단지 맛과 영양소 외에도 전통 문화의 일부로서 민족의 혼이 어려 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전통 음식을 만들어 먹어온 민족의 오랜 역사와 삶이 그 속에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마음으로 음식을 먹이기 위해 재료 장만에서 조리 과정까지 정성과 품을 들였다. 이처럼 전통 음식에 깃든 조상들의 식생활 지혜와 숨결을 본받아 우리의 음식 문화를 재창조하고 맛을 되살려내 후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동시에 세계화하려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때다.
글 S-코드스쿨 구미교육센터 조헌구 원장
정리 사진 전득렬 팀장 paperu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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