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사람들-3대를 이어온 대장장이 이호일씨

차가운 쇳덩어리에 생명을 불어넣다

지역내일 2010-12-19
“기술의 발달로 점점 할 일이 줄어드는데다 값싼 중국산까지 밀려들고 있지만 대장간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는 한 대장장이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동구 인동 골목길에 자리 잡고 있는 용신대장간. ‘꽝~꽝~광~’ 쇠를 내리치는 망치소리를 따라 들어가 보니 이호일(53)씨가 화덕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꺼내 망치로 두들기고 있었다. 이씨의 망치질에 두껍고 단단한 무쇠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반복되는 망치질과 담금질에 투박했던 쇳덩어리가 날렵한 칼의 모양으로 변해갔다. 눈이 따라가기 바쁠 정도의 빠른 손놀림으로 10여분도 안 돼 여러 개의 칼이 뚝딱 만들어졌다. 칼을 매만지는 그의 손과 눈빛에서 자식을 대하는 듯 따스함이 묻어났다.

‘장인정신’으로 3대째 가업 이어
“대장간 일은 오랜 세월 배우고 익혀야 하는 고된 일이라 이 일을 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년은 지나야 조금 알 것 같은 대장간 일을 누가 하고 싶겠습니까.”
이씨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그래서 이제는 명맥이 끊어지지 않을까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그래서 그는 더욱 이 일을 그만둘 수 없다. 대장장이를 천직이라 여기며 할아버지와 아버지 뒤를 이어 30년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고등학교 시절, 힘들게 일하시던 아버지를 돕겠다며 대장간을 들어선 게 인연이 됐다. 당시 아버지는 들쭉날쭉 출근하는 직원들 때문에 대장간 운영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를 보다 못해 장남이었던 이씨가 나선 것이다.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낮에는 아버지의 대장간 일을 도왔고, 군대 제대 후엔 본격적으로 대장장이의 길로 들어섰다.
배우는 과정이 고되 그만 둘까 하는 생각도 많았다. 하지만 무쇠와 고철덩어리가 망치질과 담금질에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되는 것을 보면서 희열 같은 것을 느끼게 됐다. 이후 대장간 일에 익숙해지면서 눈썰미와 손재주가 뛰어나 찾아온 손님들로부터 ‘일 잘하는 대장장이’라는 칭찬도 많이 받았고, 동생들과 자식들을 모두 대학에 보낼 정도로 벌이도 괜찮았다.
하지만 늘 좋은 일만 있었던 건 아니다.
쇠를 달구는 화덕에서 뜨거운 쇳물을 꺼내다 온몸에 화상을 입고 3년 동안 병원 신세를 진적도 있다. 쇠를 갈다가 그라인더가 파열돼 눈 밑을 80바늘이나 꿰매는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 사고 후에는 겁이 나서 3개월 동안 기계 옆으로도 가지 못할 정도로 후유증을 앓았다. 이 외에도 자잘한 사고는 손으로 일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의 몸에는 지금도 그 때의 상처들이 훈장처럼 남아있다.
또한 갑자기 찾아온 IMF에다, 값싼 중국제품까지 밀려들어오면서 사업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동안 우울증에 빠져 술과 함께 세월을 보내기도 했고, 3개월 이상 가게를 팽개쳐 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손에서 망치를 놓지 못했다. ‘당신은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가족과 이웃들의 위로와 격려가 그를 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이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이씨는 대장간을 떠난 적이 없다. 늘 작업에 매달려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대장간은 그가 만든 다양한 종류의 칼과 엿가위 호미 낫 등으로 가득하다.
그는 “비록 차가운 무쇠지만 생명을 불어넣겠다는 마음으로 망치질과 담금질을 한다”며 “그래서 내 손으로 만든 모든 작품들이 내겐 자식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그의 작품에서 따스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30여년을 대장장이로 살았지만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며 다시 망치질을 시작하는 이호일씨. 그의 모습에서 진정한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땀과 정성을 쏟으며 대장간을 지켜나가는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문의 : 283-4631
김진숙 리포터 kjs997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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