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불현듯 찾아오는 정신적 공황

자살 충동 느끼는 주부들

지역내일 2010-11-10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던 행복전도사 최윤희씨가 남편과 동반 자살한 소식은 ‘충격’이란 말로 다 표현되지 않을 만큼 절망감을 줬다.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중학생 아들과 말다툼 끝에 목매 숨진 주부의 소식이 또 들려왔다. 그들의 죽음을 두고 백번 공감한다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배신감이 든다는 이들도 만만치 않았는데. 문제는 자살 충동을 느끼는 주부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살면서 불현듯 찾아올 수도 있는 자살 충동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전문가에게 들어봤다.
공감한다 vs. 배신감 느낀다
임옥경(가명, 38·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얼마 전 정기 구독하는 잡지의 11월 호를 받아보고 가슴이 먹먹했다. 고인이 된 최윤희씨의 칼럼이 실려서다. “전과 다름없이 밝고 공감이 가는 글을 읽다 보니 만감이 교차하더라”는 것. “자살하는 사람들이야 오죽하면 그런 선택을 할까마는 저도 그 사람들 때문에 가슴에 구멍이 나는 것 같아요.” 김미현(가명, 42·대전 서구 월평동)씨도 오랫동안 앓는 지병으로 매 순간이 지옥같이 느껴지던 차에 최윤희 부부의 자살 소식을 접하면서 백번 공감이 갔다. “너무 아플 때는 그냥 죽고 싶어요. 긍정적인 마음 자세요? 그게 뭐가 중요한가요. 순간순간이 지옥인 것을… 차라리 죽어서 평화를 찾는 편이 낫겠다 싶어요.”
두 사람처럼 망자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인으로서 그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배신감이 생긴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심혜정(가명, 45·경기 성남시 야탑동)씨는 몇 년째 손가락 관절염 때문에 아픈 부위를 잘라버리고 싶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차라리 죽어서 이 고통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주는 자살은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자신의 고통을 마무리하기 위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경제적·정신적 피해를 준 것은 극도로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것. 이희연(가명, 40·서울 동작구 흑석동)씨도 “어떤 고통이었을지 공감은 가지만 건강한 남편까지 함께 자살하도록 한 것은 그동안 행복을 주창한 사람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공인의 자살 소식으로 주부들의 공허함이 채 가시지도 않은 때 한 주부가 중학생 아들과 말다툼 끝에 목매 자살한 소식이 또다시 들려왔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으며 자식에게 모든 걸 거는 주부들이 유난히 많은 우리나라 주부들이 받았을 정신적 공허함은 말로 표현이 안 될 정도였다. 주부들이 많이 모이는 오전 시간 공중목욕탕에서 또 한 번 공방이 이어졌으니…. “아들이 얼마나 속을 썩였으면 엄마가 자살을 했겠느냐?”는 측과 “그 엄마 성질이 얼마나 불같았으면 아들에게 평생 씻지 못할 상처를 주면서 자살을 했겠느냐?” “그런 엄마한테 그동안 얼마나 시달렸을지 아들이 불쌍하다”는 측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주부들은 왜 자살 충동 느끼나
양주시 정신보건센터의 김영미 자원전문상담사는 다양한 상담 사례를 들며 “실제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주부들이 많다”고 전한다.
주부 A(47)씨에게는 말 잘 듣는 중학생 아들이 있었다. 아들은 늘 고분고분하고 엄마가 짠 스케줄에 따라 열심히 공부해 성적도 좋은 편이었다. 그러던 아들이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여자 친구가 생겼고, 그 후 점점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고 성적도 떨어졌다. 아들의 변화에 겁이 난 엄마는 매사에 아들을 감시하며 “학교 끝나고 왜 바로 오지 않았니?” “오다가 슈퍼 들러서 뭐 샀지?” 등 취조하듯 꼬치꼬치 캐묻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엄마의 기대와는 점점 더 멀어졌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도 참고 사고 싶은 것도 아껴가며 모든 것을 아들을 위해 희생하고 아들만을 위해 살아온 엄마는 말할 수 없는 절망감이 들더라는 것. “날마다 지옥같이 느껴지던 차에 집에 있던 농약을 봤어요. 농약이 저더러 ‘나를 마셔, 나를 마시라니까’라고 말하는 거예요.” 혼자 힘으로는 견딜 수 없어 전문상담사를 찾은 A씨는 상담사의 권유로 바우처 선생님이 되어 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자살 충동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남편의 외도로 자살 충동을 느낀 주부 B(45)씨도 지난 일을 후회한다. B씨의 남편은 돈벌이에 급급하여 집안일은 늘 아내의 몫이었다. 남편은 늘 바쁜 사람이라는 생각에 집안일이나 자녀 양육에 관한 일을 남편과 상의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남편의 부담을 덜어준다며 모든 가정사를 혼자 해결한 것이 남편과 단절을 가져온 것.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안 뒤 ‘내가 세상에 왜 있지?’라는 물음과 함께 고층 아파트에 살던 B씨는 ‘뛰어내려, 뛰어내려!’라는 환청에 시달렸다. 상담 후 B씨는 종종 친구와 만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자신을 위해 돈을 쓰고, 친구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쏟아내며 환청에서 벗어났다.
내담자 중에는 가족력으로 인해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례도 있다. 김 상담사가 상담을 통해 어렵사리 마음을 잡게 한 C(15) 학생이 있다.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반듯한 학생이었는데, 다시 만날 기회가 있어 물으니 여전히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것. “주변 분들이 잘 해주고 도와주셔서 그분들 생각에 그러지도 못해요”라고 말하는 C처럼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약물 치료가 필수적이다.
김 상담사는 여러 사례를 통해 “나부터 사랑해야 한다”며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착한 척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한다. 자살 충동을 느끼는 내담자들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남편과 사이가 데면데면한 경우가 많고, 남편의 빈자리를 자식에게 올인 하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런 주부들은 자신을 위해 시간도 돈도 투자하지 않으며, ‘나’는 없고 오로지 자식이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혼자 해결? 전문가 상담이 최우선!
마음과마음정신과 송형석 원장은 “우울증을 앓거나 자살 충동을 느낄 때 우선 전문가를 찾을 것”을 권한다.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면 일시적으로 위로가 되겠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힘들 뿐 아니라 도와주는 사람도 지치게 마련이라는 것.
자살 충동을 느끼기 쉬운 성격이 따로 있을까? 송 원장은 몇 가지 타입을 예로 든다. 첫째, 해결 방법이 없다고 단정 짓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 괴로운 처지에 놓였다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자신을 도울 수 없다고 단정 짓는다.
또 다른 타입으로 모든 생각을 자기중심적으로 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는 힘이 약하고, 모든 것이 자신의 힘든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리고 자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주변 사람의 조언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음은 남이 보기에는 행복한 모든 조건을 갖추었지만 본인은 자살 충동을 느끼는 경우다.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힘이 약하고, 남에 의해 나를 어떻게 바꿔달라고 요구하는 성향이 강하다. 마지막 유형으로 자존감이 없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안 해본 것이나 못 해본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이들은 몹시 유약하고 두려움이 많으며, 모든 것을 회피하려고 한다. 따라서 주변사람이 도움을 주려고 어떤 것을 청해도 주저하므로 도움을 주기가 몹시 힘들다.
주변에 어떤 고민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일단 위로해 주고 여행 등을 권하라”고 송 원장은 말한다.
최원실 리포터 goody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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