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영화감상 ‘이층의 악당’

상큼한 웃음을 선사하는 유쾌한 악당

지역내일 2010-12-05
쌀쌀했던 일요일 오후, 따뜻한 커피 한잔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영화 한편이 그리웠다. 매표소 앞에서 잠깐 망설이다 한석규와 김혜수가 주인공이라는 이유로 최근 개봉한 ‘이층의 악당’을 선택했다. 1990년대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한석규라는 명배우를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만나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그의 연기가 돋보였던 ‘8월의 크리스마스’ ‘넘버3’ ‘초록 물고기’ ‘쉬리’ 등을 추억하면서 자리에 앉으니 영화 첫 장면부터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감미롭게 흘러나온다.

20억 짜리 골동품 찻잔을 둘러싼 이야기
30대 중반의 연주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있는 까칠한 여자로 우울증까지 앓고 있다. 또 중학교에 다니는 딸 성아는 외모 콤플렉스에다 사춘기까지 겹쳐 매사 반항적이고 부정적이다. 남편을 사고로 잃고 살아가는 두 모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이층의 방을 세놓기로 한다. 

때마침, 이 평범하지 않은 모녀의 주위를 서성이며 그녀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던 창인. 자신을 작가라고 속이고 소설을 쓰기 위해 두 달간만 지내겠다며 이층 방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은 그 집에 숨겨져 있는 20억짜리 골동품 찻잔.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창인은 모녀가 집을 비우면 1층으로 내려와 온갖 수상한 행동을 하게 되고 이를 목격한 동네 주민들은 그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영화 ‘이층의 악당’은 의외로 구성과 스토리가 단순하다. 창인이 찻잔을 찾기 위해 연주의 집으로 들어가고 그 과정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이야기가 전부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연주와 성아의 신경전, 연주와 정신과 의사가 나누는 대화 등 다소 엉뚱하고 새로운 느낌의 대사가 관객들을 웃게 만든다.

배우들의 실감나는 명품연기
영화 속에서 김혜수의 연기는 나무랄 데 없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살아가는 연주를 마치 김혜수 자신으로 착각할 만큼 리얼하게 보여준다. 한석규 역시 부드러우면서도 착해 보이지만 느물거리는 사기꾼의 모습을 잘 소화해 관객들에게 친숙하고 정감 있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처럼 단순한 스토리만으로는 두 시간 가까운 영화가 지루해 질 수 있다. 그러다보니 영화는 창인과 연주의 사랑이야기, 두 모녀간의 갈등, 중학생 딸의 고민, 윗집 여인의 은밀한 감시, 정신과 의사, 지구대 경찰관, 재벌 2세, 송실장 등 여러 장치를 넣어 유쾌한 웃음을 유도한다. 

영화 속에서 외모 콤플렉스에 괴로워하는 딸 성아. 그녀는 어렸을 때 우유 CF모델을 하면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성장하면서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소외받는다. 그 이유가 자신의 못생긴 외모 때문이라며 성형을 시켜달라고 조르는데···. 이 장면에서는 요즘 청소년들의 세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또 조연으로 출연한 아이들 그룹 유키스의 동호가 성아를 학교 과학실로 유인해 몰카로 촬영하던 장면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는 별로 유쾌한 기분을 주진 않았다. 

‘이층의 악당’은 결코 선이 굵은 영화는 아니다. 우울증에 시달리는 엄마와 외모를 비관해 자살까지 하려는 딸을 설정하면서 무언가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했으나 미흡했고 역부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갈등과 미움으로 치닫는 두 모녀가 창인이 끼어듦으로써 화해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는 훈훈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시종일관 자잘한 웃음을 촘촘하게 배려한 ‘이층의 악당’은 올 겨울 추위를 녹여줄 따뜻한 영화가 될 것이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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