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인터뷰/ ‘갤러리 우덕’ 이신자 관장

가장 뛰어난 예술은 ‘열정’이 만든다

지역내일 2010-11-29
서초구 잠원동에 위치한 ‘갤러리 우덕’의 이신자 관장(78)을 처음 보았을 때 최근에 본 패트리샤 필드의 인터뷰기사가 떠올랐다. 미국 인기드라마 ‘섹스 인 더 시티’의 스타일리스트로 세계적인 명성을 떨치고 있는 패트리샤 필드(67)는 그녀가 생각하는 훌륭한 스타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서 “훌륭한 스타일이란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 사람의 옷차림만 봐도 주변 사람들이 그 사람의 직업이나 취미, 생각, 심지어는 어떤 친구를 사귀고 있는지 등 모든 것이 파악될 수 있어야 한다”며 스스로를 존중할 줄 아는 사람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시킨 아름다운 의지
한국야쿠르트 사옥 2층의 ‘갤러리 우덕’에서 만난 이 관장이 바로 그랬다. 자기만의 개성 있는 옷매무새가 그의 직업과 성격, 살아온 인생 역정을 대변해 주는 듯 했다. 검은색 의상에 매치한 레깅스와 원사가 듬성듬성 매달린 특이한 머플러, 가볍게 걸쳐 입은 베스트 등 그의 어디에서도 팔순을 바라보는 노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지난 1997년 한국야쿠르트 문화재단은 기업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갤러리 우덕을 개관했다. 이곳은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고 문화 예술 사업을 지원한다는 취지 아래 신진작가 발굴과 함께 문화 예술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디딤돌 역할을 해오고 있는 곳이다. 

이곳의 초대관장으로 선임돼 14년째 운영을 맡고 있는 이 관장은 다른 곳과 달리 모든 전시를 무료로 열 수 있으며 작품 운송료에서부터 전시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해결할 수 있도록 작가 장려금을 지원하고 있기 때문에 신진, 중견작가 할 것 없이 모든 작가들에게 꼭 한번 전시회를 열고 싶은 곳으로 입소문이 나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쾌적한 공간에서 전시회를 열기 위해서는 수백만 원이 넘는 대관료에서부터 각종 부대비용 등 소요되는 경제적인 부담을 감안한다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공예계의 역사이자 섬유예술의 산증인
제목/ 덕성여대에서 32년간 재직한 후 정년퇴직을 한 이 관장은 우리나라 공예계의 역사이자 섬유예술의 개척자로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틈나는 대로 인사동을 비롯해 각종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실력 있고 감각 있는 작가들을 선발한다. 또 여러 대학이나 협회에서 추천이 들어오는 작가의 작품도 꼼꼼하게 챙겨본 후 전시회 개최 여부를 결정한다고 한다. 

이신자 관장은 경북 울진 태생으로 서울대 미대 응용미술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직물디자인을 전공했다. 섬유예술이란 어휘 자체조차 없던 초창기에 ‘타피스트리’ 미술을 일구어내고 그것을 대학교육과정으로 보급시킨 섬유예술의 산증인이다. 그는 “6·25 전쟁 중에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미군들 초상화를 그려주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 관장은 50년대 염색을 시초로 하여 실과 천을 비롯한 한지, 밀집, 동선 등 갖은 재료를 한 화면에 도입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해 왔다. 때문에 섬유에 관한한 그의 관심과 시도는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현대 공예계에 섬유예술을 정착시키고 대학 강단에서는 후진을 양성했으며 또 가정에서는 4남매의 엄마로 바쁘게 살아온 그는 “환경도 열악하고 작품에 쓸 재료도 제대로 없었던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열정 하나로 버티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남편인 장운상 화백과의 짧은 만남
그는 염색과 유화에도 남다른 취미를 가지고 있어 손수 디자인하고 그 위에 각종 소재를 입체적으로 구사한다. 1965년에 전통자수를 현대화시킨 타피스트리를 처음 선보인 후, 섬유예술의 영역확대와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같은 서울대 출신이자 세칭 미인화가로 이름을 날렸던 목불 장운상 화백이 그의 남편이다. 하지만 그는 1982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에 대한 애틋한 추억을 얘기할 때는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듯 했다. 

“제가 평소에는 아주 씩씩하기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고 살았는지 아무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아이들이 잘 자라주어 고맙고 행복하다”고 전했다. 현재 4남매 중 세 자녀가 국내 대학에서 미술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금속공예, 그래픽디자인, 스테인드글라스 등 전공은 각각 다르지만 방학이면 함께 모여 작업도 하고 정보도 교환한다고. 동심의 세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섬유예술로 승화시키며 일평생 작품 활동을 해온 그는 “새로 준비하는 전시회 때문에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나이가 들어서인지 잠이 없어져 작업을 하다보면 어느새 동이 트곤 하지요”라며 웃는다. 그 미소 속에 한 세대를 뜨겁게 살아온 어머니, 아내, 여자로서의 아름다움이 잔잔히 배어났다.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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