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쾅! 쾅!” CC-TV만 깨어 제 할 일을 하고 있을 시간. 한밤중에 아파트 한 동 전체가 흔들리도록 거세게 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또 시작이군.’ 수능이 끝나고 나서 아래층 소음이 부쩍 거세졌다. 만족할만한 성적표를 받아든 아이가 얼마나 될까. 그래도 최선을 다한 결과에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할 텐데. 네 탓, 내 탓, 조상 탓까지 들먹거리며 아이의 시험 결과를 얘기하니 집안이 조용할 수가 없다.
게다가 “엉, 엉” 이게 웬 울음소리인가. 아랫집 아주머니의 울음소리까지 들린다. 세상에나 가슴에 커다란 비수 하나 제대로 꽂힌 모양이다. 도대체 어떤 말을 들으면 이 시간에 저렇게 목 놓아 울게 되는 걸까. 도대체 어떤 말이 하고 싶어 20년 열심히 달려온 아내의 가슴에 큰 상처를 남기는 걸까. 수능이 끝난 후 유난히 시끄러워진 강남의 아파트 몇 곳을 들여다봤다.
여태 넌 뭐 했니?
대치동에 사는 주부 박 모씨(52). 늦은 결혼에 아들 하나 낳아 잘 길러보겠다고 교육에 열을 올렸다. 어려서부터 조기 교육, 영재교육 안 시켜 본 게 없고, 학교로 학원으로 비서처럼 아이 옆을 맴돌며 헬리콥터맘으로 충실하게 19년을 보냈다. 3년 전 아이의 미래를 위해 선택한 대치동으로의 이사, 회사가 멀어져 남편의 반대가 컸지만 교육환경이 좋은 곳에서 아이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에 맹모삼천지교를 실천했던 것이다.
그런데 믿었던 아들의 성적이 오히려 이사 후 주춤하기 시작했다. 과외를 시켜볼까? 학원을 바꿔볼까?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대치동의 다른 친구들 성적을 따라갈 수 없었다. 수능이 끝난 후 남편이 말했다. “그래, 그렇게 고집 피워 이사 해 놓고 넌 뭐 한 거야! 3년 동안 넌 뭘 하고 다닌 거냐고! 하자는 대로 그냥 맡겼더니 대체 이게 뭐냐고!”
아무리 성적이 안 나왔기로서니 그게 엄마만의 책임이란 말인가.
유학만 보내줬어도 이렇게는 안 됐어!
일원동에 사는 정 모씨(49). 대기업의 차장으로 사회적 위치도 그만하고 됐고, 살고 있는 집에 두 아이들 학원까지 보내고 있으니 경제력도 일정 수준 되고, 노후 자금으로 일정액 연금도 준비해 두었으니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하다. 부모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니라 결혼 후 아내와 함께 스스로 일궈낸 것이라 더 뿌듯하다.
그런데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늘 아이를 남들처럼 가르치지 못한다고 불만이었고, 방학이면 아이를 외국으로 보내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다. 무리를 해서 해외로 보내는 것이 과연 잘하는 일인 걸까? 늘 망설이기만 했던 정 모씨. 그런데 수능을 보고 온 아이의 입에서 외국어 영역을 망쳤다는 소리가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지는 아내의 말. “얘도 유학만 갔으면 이렇지 않았어. 아버지가 돼서 언어 망쳤다니까 기분이 어때! 좋아? 애 위해 돈쓰는 게 그렇게 아까워? 도둑질 아니라 뭔 짓을 해서라도 돈을 만들어 왔어야지. 이제 얘를 어떻게 할 거야, 얘 미래 당신이 책임 질 거야!” 허무하다.
내 돈 갖다 뭐했어
서초동에 사는 이 모(45) 주부. 대학교 졸업 후 일찍 결혼 해 아이들과 알콩달콩 재미나게 살았다. 오전이면 엄마들 모임에 나가 이것저것 교육 정보도 듣고 오후엔 아이들 간식과 숙제를 챙겼다. 의사인 남편 덕에 여느 엄마들처럼 학원비 걱정도 없었고, 아이가 특별히 속을 상하게 하는 일도 없었다. 개인 병원을 하는 덕에 시간이 많았던 남편은 주말이나 주중에 하루 정도 시간을 내 아이의 공부까지 관리해 주었다. 남부러울 게 없던 이 모 주부.
그러나 수능을 치르면서 그녀의 행복한 날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아이의 수능 결과에 만족할 수 없었던 남편이 그 공격의 화살을 아내에게 돌렸던 것. “내가 가져다 준 돈으로 대체 넌 뭘 한 거야? 옷 입고 화장품 사는 데 다 썼어? 애가 저 지경이 됐으면 어떻게 대책이라도 마련을 했어야지. 내가 뼈 빠지게 환자 봐서 벌어온 돈으로 넌 대체 뭘 한 거야? 애를 왜 이렇게 만든 거야?”
그러는 남편, 넌 뭘 한 거야? 차려주는 밥 먹으며 대체 뭘 한 거냐고!
당신 집안은 왜 그래
방배동에서 자영업을 하는 최 모씨(55). 약사인 아내에게 늘 기가 죽어지낸다. 아내가 학벌도 좋고, 키도 크고, 심지어 나이까지 한 살 연상이었던 것. 아이가 좋은 성적을 받아올 때면 “아이고 우리 딸”이고 조금이라도 저조한 성적을 받아 올 때면 “쟤 머리는 누굴 닮은 거야?”하면서 은근히 공격을 해 온다. 처가는 변호사에 선생님이 가득한데 최 모씨 집에는 평범한 회사원뿐이다. 그래도 어디 나가서 밥 굶고 지내는 일 없는 착실하고 성실한 가족들이다. 수능 날 최 씨는 간이 콩알만 해졌다. 기다리는 차 안에서 간절히 딸의 성적이 좋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 이하. 실망한 아내는 연신 거품을 물고 남편을 공격한다. “딸은 아빠를 닮는다는데 정말 큰일이다, 큰 일. 집안에 머리 좋은 사람이 하나 없으니 얘가 어떻게 성적이 좋겠냐고. 우리 애가 개천에서 난 용이야? 도대체 기댈 언덕이 있어야 공부도 하고, 일도 하지. 당신 집안은 정말 하나같이 다 왜 그래?”
그런 평범한 집안사람이 좋다고 결혼 할 땐 언제고, 이젠 정말 지친다.
고 3아이를 두진 않았지만 필자로서 나도 한마디 거들고 싶다. “생활비가 또 부족해? 내가 벌어다 준 돈은 다 어디에 쓰는 거야? 애들 학원을 좀 줄이지 그래”라고 묻는 강심장의 우리 신랑에게 하고픈 말. “나나 되니까 사는 거야. 고마운 줄 알고 살아, 이 남자야!”
<부부간의 대화 이렇게 하세요!>
가정경영연구소 강학중 소장
첫째, 첫 마디를 조심하라. 첫 번째 말을 어떻게 건네느냐에 따라 그 다음 말이 달라진다.
둘째, 원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라. 인신공격을 하는 말보다는 구체적이고 정확한
요구사항을 표현해 해결점을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셋째, 잘 들어라. 배우자의 마음까지 읽을 수 있으면 더욱 좋다. 상대가 원하는 것이 격려나 칭찬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들어보자.
넷째, 관계가 좋도록 노력하라. 부부대화의 기술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도 의외로 자주
싸울 수 있다. 어떤 대화도 관계가 좋지 않으면 좋게 풀리지 않는 법. 평소 부부
사이에 관계가 좋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이지혜 리포터 angus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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