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진료실 책상위에는 오래된 탁상시계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이 시계에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몇 년 전 홍콩으로 관광을 갔다가 마카오에 들른 적이 있습니다. 현지인 골동품상이 좌판을 펴놓고 오래된 잡동사니들을 팔고 있었는데 둥근 공 모양의 시계가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옆에서 바라보면 금속 띠를 두른 수정 구슬 같았지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의 수정 구슬을 보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손에 쥐고 들어보니 크지도 작지도 않게 제 손 안에 알맞게 잡히는데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져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시계 자체가 주는 시간의 무게감과 골동품이 주는 세월의 무게감이 함께 느껴졌습니다.
시계를 정면에서 바라보니 시계의 숫자판과 시침 분침 초침들의 움직임이 수정 구슬에 의해서 선명하게 확대되어 현재 시간을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스위스 시계제작사의 회사 이름과 원형 고리 모양의 심볼 마크가 시계 상단에 새겨져 있고, 시계 하단에는 ‘switzerland made 1882’라는 작은 글자가 붙어 있어서 은근한 호기심과 수집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가격이 우리 돈으로 환산해서 7~8만 원 정도였으니 횡재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인가를 받은 골동품상도 아닌 노점 좌판에서 구한 물건이니 진품이 아닌 이미테이션이겠지요. 하지만 보면 볼수록 소박한 만족감을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보아, 진품이던 아니던 간에 오래된 골동품임에는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시계를 사용하면서 느끼게 된 고마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이 시계는 하루에 한 번씩 태엽을 감아주지 않으면 가는 힘을 다하고 정지한다는 사실입니다. 덕분에 아침마다 태엽을 감아주는 새로운 일과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전자식 디지털시계가 넘쳐나는 세상이지요. 핸드폰을 집어 들 때마다 현재 시각이 나타나고, 자동차를 탈 때마다 계기판에 현재 시각이 표시되고, 시내 곳곳의 전광판마다 현재 시각이 깜박이며, 컴퓨터 모니터 하단에 현재 시각이 항상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풍요로운 시계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정작 시간의 중요성은 잊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아침마다 시계태엽을 감는 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감사한 마음으로 충전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 시계의 태엽을 감을 수 있는 날은 언제까지일까요. 그 언제인가는 태엽을 감을 힘조차 없어지는 날도 오기는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도 나는 창밖의 신선한 아침 공기를 흠뻑 들여 마신 후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시계태엽을 감아놓습니다.
늘푸른한의원 김윤갑 원장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