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딸이 아빠’라는 말이 있다. 딸만 둔 아빠들이 아들 못 가진 처지를 속상해하며 붙인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은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타고 아들 가진 부모는 버스 탄다는 우스갯소리로 달라진 세태를 설명한다. 아들만 사람 취급 하다가 여자가 중요한 세상이 되니 여자라서 행복하고 딸 낳아서 기쁘단다. 여자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세상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가족 화목, 여자가 주도한다
김지현(39·서울 관악구 남현동)씨는 가족 모임에 갔다가 아들만 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남편을 보고 속상한 기억이 있다. 딸을 둔 남편 친구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였는데, 딸이 어찌나 아빠를 챙기는지 김씨가 봐도 살가운 태도가 눈에 띄었다. 아빠 또한 딸에게 하는 말투가 나긋나긋하여 김씨 집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참 부럽네. 저 집 아빠는 집에 들어갈 맛 나겠어. 우리 집 머슴아이들은 아빠가 오는지 가는지. 말투도 투박하고. 에휴~ 집에 딸은 있어야 하는 건데” 하더란다.
“결혼하기 전부터 ‘나는 아들이 좋아. 아들 둘 낳으면 좋겠어’ 했거든요. 원하는 대로 아들 둘 낳았고, 아이들도 아빠를 좋아하고 잘 자라는데 이제 와서 삭막하다니오. 완전 배신감 들더라고요.” 김씨의 말이다.
정유숙(46·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위로 오빠가 둘 있다. 정씨 어머니는 ‘아들 둘 딸 하나가 딱 알맞다’며 은근히 자랑하셨다. 하지만 정씨는 자라는 동안 늘 외로웠다고 말한다. “언니를 둔 친구는 고민은 물론 소소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웠어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뒤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도 오빠들과 1년에 몇 번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그 친구는 여름이면 언니네와 휴가도 같이 가던데.” 정씨는 자매가 있다면 유년 시절이 조금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지원(가명, 41·서울 용산구 이촌1동)씨는 둘째 며느리다. 서씨의 윗동서는 딸 셋 중 장녀고, 아랫동서는 남매의 첫째다. 서씨의 시어머니는 아들만 셋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동서들의 친정어머니는 매년 여행을 다녀오신다. 반면 시어머니는 3년째 여행을 못 가셨다. 여행을 부추기고 예약해주는 딸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저도 이번 여름에 친정어머니께 온천 예약해드렸어요. 아버지가 싫다 하셔서 이모와 같이 다녀오시도록 했죠. 그런데 시어머니께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가시라고 돈은 드려봤어도 안 가신다면 그뿐이죠.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타고 외국 가고, 아들 가진 부모는 버스 타고 탑골공원 간다는 말이 실감 나서 씁쓸하네요.” 서씨의 말이다.
미국 브리검영 대학의 로라 파딜라 워커 교수는 1년 동안 395개 가정의 10대 형제들을 관찰했는데, 대체로 형이나 오빠 등 형제보다 언니나 누나 등 자매가 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잘 챙겨주어 외로움을 덜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언니와 누나는 부모 역할을 대행하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자식들의 안녕은 가정의 평온과 직결된다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가정이 제대로 되려면 남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가족의 화목을 여자가 주도한다니 아들만 있는 집은 슬플 일이다. 워커 교수는 연구 결과 근본적으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형제간 우애를 형성해주는 것도 결국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이다.
남녀공학 좋다더니 남자에겐 기피 대상 1위
10여 년 전만 해도 남녀공학에 보내려고 이사하는 집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들 둔 엄마들은 남녀공학을 기피한다. 남학생들이 여학생에게 치인다는 이유 때문. 아들을 남녀공학 중학교에 보낸 김선유(42·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중학교에 보내기 전 전교 1등부터 30등까지 남학생은 다섯 명도 안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설마 했는데 아들을 보내보니 그러네요. 이런저런 이유로 경쟁력이 떨어져요”라고 말한다. 아들을 남고에 보내려는 김씨는 13년간 살아온 동네를 떠날 계획이다.
자녀를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보낸 김씨는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남중을 거쳐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진학한 김씨의 아들은 고등학교 진학 후 성적이 떨어지더니 지금은 재수를 한다. 중학 시절엔 반에서 1등 하던 아이다. 3학년 돼서 정신 차리긴 했는데 다들 열심히 하니 등수가 잘 안 오르더라고요.” 뒤늦은 후회였다.
문성애(46·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씨의 중3 아들은 전교 부회장이다. 남녀공학인 아들의 학교는 반에서도, 전교에서도 회장을 한 명 뽑는다. “초등생 때 전교 회장을 해보고는 중학교에 가서도 꼭 하고 싶다고 했는데 여자를 당할 수가 없네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여자 회장이 70퍼센트예요.” 여학생 수가 훨씬 많은 문씨 아들의 학교에서 남학생들은 수적으로도, 야무진 면으로도 밀린다니 여자 회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여자의 강세 현상은 학부모 모임에서도 나타난다. 딸 가진 엄마들의 학부모회 참여율이 훨씬 높다. 중학생 딸 하나를 둔 김서희(가명, 48·경기 성남시 정자동)씨는 학부모회는 물론 운영위원까지 학교 일에 두루 참여한다.
김씨는 딸이 자신이 커온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살아 정말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사회 파워는 우먼 파워, 하지만…
사회에서도 여성의 파워는 점점 세지고 있다. 매년 사법, 행정 등 국가고시에서 여성의 합격률이 높아지고, 여성이 수석을 차지하는 경우도 여러 번이다. 공무원 임용 고시에서 여성의 파워는 더욱 거세다. 8월 24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등의 발표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여성 공무원은 8만666명으로 전체의 30퍼센트에 육박했다. 2001년 5만4천771명, 2006년 7만5천608명으로 매년 급증해서 이젠 10명에 3명은 여성 공무원이다.
금녀의 구역이던 사관학교에도 여성의 입학률이 늘어 여성 장교가 해마다 늘고, 여성 비행기 조종사도 탄생했으니 남성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기는 하다. 아들 가진 엄마들은 여자애들 무서워서 문과 보내기도 두렵다고 말한다.
수학, 과학에 취약한 여학생들이 이과 진학은 꺼리고 문과 쪽에서 약진이 두드러지니 대학에 제대로 못 갈까 봐 문과 가기가 꺼려진다는 것. 남자들은 이과에서 버티는 것이 살길이라는 말도 한다. 여학생들은 여대가 있어 대학 들어가는 문이 더 넓다며 여대에 맞서 남대도 만들어야 형평성이 맞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벽은 여전하다는 주장도 있다. 여성 공무원도 양적인 증가일 뿐 질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으며, 기업의 신규 직원 채용에서도 여성들의 자리는 아직 좁다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여성들의 사회생활 지속 기간이 짧은 것이 이유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세상의 중심이 여자로 바뀌어가지만, 사회 활동 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내는 우먼 파워.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서 집중할 부분이다.
유병아 리포터 bayou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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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화목, 여자가 주도한다
김지현(39·서울 관악구 남현동)씨는 가족 모임에 갔다가 아들만 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남편을 보고 속상한 기억이 있다. 딸을 둔 남편 친구 가족과 식사하는 자리였는데, 딸이 어찌나 아빠를 챙기는지 김씨가 봐도 살가운 태도가 눈에 띄었다. 아빠 또한 딸에게 하는 말투가 나긋나긋하여 김씨 집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참 부럽네. 저 집 아빠는 집에 들어갈 맛 나겠어. 우리 집 머슴아이들은 아빠가 오는지 가는지. 말투도 투박하고. 에휴~ 집에 딸은 있어야 하는 건데” 하더란다.
“결혼하기 전부터 ‘나는 아들이 좋아. 아들 둘 낳으면 좋겠어’ 했거든요. 원하는 대로 아들 둘 낳았고, 아이들도 아빠를 좋아하고 잘 자라는데 이제 와서 삭막하다니오. 완전 배신감 들더라고요.” 김씨의 말이다.
정유숙(46·서울 강남구 논현동)씨는 위로 오빠가 둘 있다. 정씨 어머니는 ‘아들 둘 딸 하나가 딱 알맞다’며 은근히 자랑하셨다. 하지만 정씨는 자라는 동안 늘 외로웠다고 말한다. “언니를 둔 친구는 고민은 물론 소소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것을 보고 많이 부러웠어요.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뒤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도 오빠들과 1년에 몇 번 얼굴 보기도 힘들어요. 그 친구는 여름이면 언니네와 휴가도 같이 가던데.” 정씨는 자매가 있다면 유년 시절이 조금 더 풍요롭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서지원(가명, 41·서울 용산구 이촌1동)씨는 둘째 며느리다. 서씨의 윗동서는 딸 셋 중 장녀고, 아랫동서는 남매의 첫째다. 서씨의 시어머니는 아들만 셋이다. 얘기를 들어보면 동서들의 친정어머니는 매년 여행을 다녀오신다. 반면 시어머니는 3년째 여행을 못 가셨다. 여행을 부추기고 예약해주는 딸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저도 이번 여름에 친정어머니께 온천 예약해드렸어요. 아버지가 싫다 하셔서 이모와 같이 다녀오시도록 했죠. 그런데 시어머니께는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가시라고 돈은 드려봤어도 안 가신다면 그뿐이죠. 딸 가진 부모는 비행기 타고 외국 가고, 아들 가진 부모는 버스 타고 탑골공원 간다는 말이 실감 나서 씁쓸하네요.” 서씨의 말이다.
미국 브리검영 대학의 로라 파딜라 워커 교수는 1년 동안 395개 가정의 10대 형제들을 관찰했는데, 대체로 형이나 오빠 등 형제보다 언니나 누나 등 자매가 동생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잘 챙겨주어 외로움을 덜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언니와 누나는 부모 역할을 대행하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자식들의 안녕은 가정의 평온과 직결된다고 분석했다는 것이다.
가정이 제대로 되려면 남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젠 가족의 화목을 여자가 주도한다니 아들만 있는 집은 슬플 일이다. 워커 교수는 연구 결과 근본적으로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형제간 우애를 형성해주는 것도 결국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이다.
남녀공학 좋다더니 남자에겐 기피 대상 1위
10여 년 전만 해도 남녀공학에 보내려고 이사하는 집들이 꽤 있었다.
그러나 요즘 아들 둔 엄마들은 남녀공학을 기피한다. 남학생들이 여학생에게 치인다는 이유 때문. 아들을 남녀공학 중학교에 보낸 김선유(42·서울 양천구 목동)씨는 “중학교에 보내기 전 전교 1등부터 30등까지 남학생은 다섯 명도 안 된다는 말을 들었어요. 설마 했는데 아들을 보내보니 그러네요. 이런저런 이유로 경쟁력이 떨어져요”라고 말한다. 아들을 남고에 보내려는 김씨는 13년간 살아온 동네를 떠날 계획이다.
자녀를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보낸 김씨는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 남중을 거쳐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진학한 김씨의 아들은 고등학교 진학 후 성적이 떨어지더니 지금은 재수를 한다. 중학 시절엔 반에서 1등 하던 아이다. 3학년 돼서 정신 차리긴 했는데 다들 열심히 하니 등수가 잘 안 오르더라고요.” 뒤늦은 후회였다.
문성애(46·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씨의 중3 아들은 전교 부회장이다. 남녀공학인 아들의 학교는 반에서도, 전교에서도 회장을 한 명 뽑는다. “초등생 때 전교 회장을 해보고는 중학교에 가서도 꼭 하고 싶다고 했는데 여자를 당할 수가 없네요.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여자 회장이 70퍼센트예요.” 여학생 수가 훨씬 많은 문씨 아들의 학교에서 남학생들은 수적으로도, 야무진 면으로도 밀린다니 여자 회장이 많을 수밖에 없다.
여자의 강세 현상은 학부모 모임에서도 나타난다. 딸 가진 엄마들의 학부모회 참여율이 훨씬 높다. 중학생 딸 하나를 둔 김서희(가명, 48·경기 성남시 정자동)씨는 학부모회는 물론 운영위원까지 학교 일에 두루 참여한다.
김씨는 딸이 자신이 커온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살아 정말 다행이라는 반응이다.
사회 파워는 우먼 파워, 하지만…
사회에서도 여성의 파워는 점점 세지고 있다. 매년 사법, 행정 등 국가고시에서 여성의 합격률이 높아지고, 여성이 수석을 차지하는 경우도 여러 번이다. 공무원 임용 고시에서 여성의 파워는 더욱 거세다. 8월 24일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등의 발표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여성 공무원은 8만666명으로 전체의 30퍼센트에 육박했다. 2001년 5만4천771명, 2006년 7만5천608명으로 매년 급증해서 이젠 10명에 3명은 여성 공무원이다.
금녀의 구역이던 사관학교에도 여성의 입학률이 늘어 여성 장교가 해마다 늘고, 여성 비행기 조종사도 탄생했으니 남성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같기는 하다. 아들 가진 엄마들은 여자애들 무서워서 문과 보내기도 두렵다고 말한다.
수학, 과학에 취약한 여학생들이 이과 진학은 꺼리고 문과 쪽에서 약진이 두드러지니 대학에 제대로 못 갈까 봐 문과 가기가 꺼려진다는 것. 남자들은 이과에서 버티는 것이 살길이라는 말도 한다. 여학생들은 여대가 있어 대학 들어가는 문이 더 넓다며 여대에 맞서 남대도 만들어야 형평성이 맞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벽은 여전하다는 주장도 있다. 여성 공무원도 양적인 증가일 뿐 질적으로는 달라진 것이 없으며, 기업의 신규 직원 채용에서도 여성들의 자리는 아직 좁다는 것이다. 자의든 타의든 여성들의 사회생활 지속 기간이 짧은 것이 이유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는다. 세상의 중심이 여자로 바뀌어가지만, 사회 활동 면에서는 한계를 드러내는 우먼 파워. 조화로운 발전을 위해서 집중할 부분이다.
유병아 리포터 bayou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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