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리는 ‘포상금 모아 엄마에게 모두 주겠다’는 효녀에요”
“어제 파주에서 일밤 촬영을 늦게까지 하고 아침에 서둘러 오느라 잠을 잘 못 잤어요.(하품) 좀 졸리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초가을 이른 아침, 성남 상원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난 U-20 축구 구가대표팀 주장 김혜리(21`여주대`중원구 양지동) 선수는 20대 특유의 솔직함과 개성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지난 8월 독일월드컵대회에서 세계 강호들을 꺾고 3위를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혜리 선수. 인터뷰 내내 상큼 발랄한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준 혜리 선수와 그의 오늘을 있게 한 어머니 배순임(47) 씨를 함께 만났다.
‘팔에 금이 가도 엄마에겐 쉿~’ 아들처럼 듬직한 딸이에요
인터뷰 전날 경기도 파주에서 12시간 넘게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오늘을 즐겨라’ 코너의 촬영을 하고 왔다는 김혜리 선수. 그곳에서 만난 영화배우 공형진과 정준호, 특히 빅뱅의 승리 얘기를 들려주며 여대생 특유의 수줍은 미소가 번진다.
“공형진 삼촌이 전화번호 가르쳐주면서 나중에 연락하라구, 고기 사주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혹시나 장난 아닌가 싶어 문자해봤더니 정말 장문의 멀티메일이 온 거에요. 진짜 감동이에요. 동갑내기 승리랑은 앞으로 친구하기로 했어요.”
U-20 여자대표팀의 주장으로 맏언니처럼 듬직하고 당차던 김혜리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깜찍하다. 흐뭇한 표정으로 딸의 얘길 듣고 있던 배순임 씨가 안쓰러운 듯 한마디 꺼낸다.
“독일 월드컵 마치고 돌아와서도 집에서 거의 쉬질 못했어요. 방송출연과 환영식에 쫓아다니느라 많이 피곤한 상태에서 강릉에서 열린 전국여자종별축구대회까지 뛰고…. 오늘도 인터뷰 마치고 바로 치과에 데리고 가야 해요.”
지난달 시합 중에 상대 선수의 팔꿈치에 맞아 어금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는데 그동안 경기 일정 때문에 치료를 계속 미뤄왔던 것. 결국 이가 빠져버려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딸의 상황에 엄마의 마음은 안타깝기만 하다.
“항상 안 다치고 부상 없이 잘 뛰어줬음 하는 게 가장 큰 바람이죠. 혜리가 선수치곤 체격이 그리 큰 편이 아닌데다가 몸싸움이 많은 수비수다 보니 여기저기 다칠 때가 많아요. 엄마 걱정할까 싶어 어디 아프다 말도 잘 안하고…. 어렸을 땐 꼭 아들 키우는 것 같았어요.”
엄마의 묻는 말에 겨우 대꾸 한마디 해주면 고마운 성격의 무뚝뚝한 혜리 선수. 송파 오주중학교 재학시절 합숙훈련을 할 때는 팔에 금이 가서 깁스를 하고 있단 사실을 다친 지 일주일만에 다른 학부모를 통해 전해 들었을 정도다.
뒷바라지요? 시합때 응원가서 박수쳐준 것 말곤…
성남 상원초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축구부 홍일점으로 두각을 나타냈던 혜리 선수. 6살 생일 선물로 엄마에게 축구공을 사 달라 졸랐을만큼 싹수가 남달랐다.
“2살 터울의 언니는 치마 입기를 좋아해 천상 공주였지만 혜리는 언니 옷을 물려 입은 적이 없어요. 언니보다는 남동생이나 사촌 오빠들과 어울려 노는 걸 더 좋아하더라구요. 성격을 좀 바꿔볼까 싶어 피아노학원에도 보냈는데, 1년쯤 하더니 태권도 학원 보내달라지 뭐에요.”
초등1학년부터 시작한 태권도는 3단을 따기 직전까지 만 4년을 배우고 결국 축구 때문에 그만뒀다. 축구를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자꾸 발이 올라가는 발차기 습관 때문이었다. 김혜리 선수를 국내 최고의 여자축구 선수로 키워온 엄마 배순임 씨의 교육철학이 궁금했다.
“축구를 할 때가 제일 행복하고 좋다고 하니까 그냥 믿고 지켜본거죠, 뭐. 초등학교 5학년땐가 혜리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 나눴던 적이 있어요. ‘엄마는 회비 내 주고 경기 있을 때 응원 가는 것 말곤 특별히 뒷바라지 해줄 수 없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으면 축구에 네 인생 걸어봐라’ 그랬더니 망설임도 없이 후회 안할 거라고 대답하대요.”
위가 작아 많이 먹진 못하지만 삼겹살을 가장 좋아한다는 혜리 선수는 여느 20대처럼 인터넷 미니 홈피를 운영하고 있다. 그 안에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년 같은 모습의 사진들이 많은데, 그 모습이 본인의 평소 모습 그대로란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 역시 깊고 갸륵하다. 목표와 계획을 물었더니 부모님 얘기가 먼저 나온다. 여기에 신세대 다운 엉뚱함이 함께 묻어나 더 풋풋하다.
“지금 생각 같아선 언니랑 남동생 결혼하고 나면 제가 결혼 안하고 부모님 모시고 살 것 같은데 또 모르죠. 음, 인생이란 게 계획한 대로 되는 건 아니니깐 그렇게 안 되어도 할 수 없는 거구.(웃음) 이번에 포상금 받은 게 있는데 앞으로 돈을 더 모아서 엄마한테 드리고 싶어요. 제 축구 목표는 서른 살 정도까지 선수로 뛰다가 그 이후엔 지도자 생활을 하는 거에요.”
앞으로도 쭉~ 여자축구 사랑해주세요
최근 김혜리 선수같은 스포츠선수로 자녀를 키워보려는 엄마들이 늘고 있다. 엄마 배순임씨에게 그들을 향한 조언 한마디를 부탁했다.
“경쟁과 좌절, 승리와 패배가 반복되는 게 스포츠의 생리인만큼 본인이 선택한 일에 책임도 함께 지라고 가르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전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본인의 노력에 감독님의 가르침이 얹어져 훌륭한 성과가 만들어지는 거죠.”
김혜리선수를 포함한 U-20 축구대표님의 독일 월드컵 선전은 얼마 뒤 여민지 등 U-17 후배들의 세계 제패로 이어져 더 큰 기쁨을 낳았다. 지인으로부터 부탁받은 사인을 요청하자 월드컵대회를 앞두고 혹시나 싶어 미리 만들어뒀다는 사인을 정성껏 그리는(?) 혜리 선수. 볼수록 귀엽다.
“요즘처럼 축구하는 게 신났던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여기저기서 많이 알아봐주시고 반갑게 맞아주시니까 기분도 좋구요. 앞으로도 쭉~ 우리나라 여자축구 많이 사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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