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는 추석이 다가온다. 좋은 계절에 사랑하는 가족들과 만물의 풍요로움을 나누면서 즐기는 시간. 흥취와 결실이 잘 어울리는 인물을 만나기 위해 서초동 국립국악원으로 향했다. ‘1인 오페라(one-man opera)’라고 칭하는 판소리를 전수하고 후학들을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스승 한 분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상상과는 달리 그녀는 너무 젊고 예뻤다. 현재 한국 판소리의 ‘허리세대(중간세대)’이자 성실한 소리꾼으로 평가되는 강경아 명창(40). 그의 진솔한 이야기가 가을하늘처럼 시원스레 펼쳐진다.
에너지 넘치는 판소리계 명창
판소리는 ‘판’과 ‘소리’가 합해진 단어이다. 여기서 판이란 ‘소리꾼’과 북을 쳐주는 ‘고수’, 그리고 ‘구경꾼’들이 모인 자리를 의미한다. 이 셋이 모여야 비로소 판소리라는 음악이 형성된다. 판소리는 우리나라 민속예술 가운데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2003년, 유네스코에 세계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더 많이 알려지고 보급되었다.
반주라고는 북밖에 없고 그에 맞춰 소리꾼이 여러 등장인물의 역할을 혼자 다 한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춘향전이면 춘향이부터 이몽룡 심지어는 변학도나 아전들까지 모든 역할을 소리꾼 혼자 다 해내야 한다. 또 북 반주를 하는 고수와 대화를 한다는 점도 특이하다. 게다가 판소리는 이야기가 매우 길다.
심청이가 태어나서부터 시작해 커서는 뱃사람들에게 팔려가 바다에 빠져 죽고 다시 살아나 왕비가 돼 아버지를 만나기까지 그 긴 시간을 노래로 표현해야 한다. 판소리는 혼자 하는 것이므로 서너 시간을 쉬지 않고 해야 하니 그 어려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국립국악원 문화학교에서 판소리를 가르치고 있는 강 명창은 소탈하고 솔직담백한 성격과는 달리 깐깐한 강사로 통한다. 초급반과 중급, 고급반 수십 명의 수강생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배려하며 열성적으로 강의한다.
창의 기본, 격(格)과 예(藝)
이곳에서 4년째 판소리를 배우고 있는 수필가 이모(서초동. 55)씨는 “판소리는 구전으로 전해졌고 우리의 전통음악은 악보가 없기 때문에 판소리 교육은 매우 어렵다”면서 “그러나 선생님은 직접 칠판에 음계 없는 악보를 그리면서 혼신을 다해 가르치신다”고 전했다. 강 명창이 창안한 ‘강경아식 악보’에는 타로는 물론 음의 모양, 고저, 장단, 들숨과 날숨까지 상세하게 들어있다. 또 판소리 한 대목을 가르치더라도 무대에서 실현하는 것과 같이 목을 아끼지 않고 철저하게 지도한다고 덧붙였다. 때문에 그에게는 많은 문하생들이 있다.
또 국악방송의 교육프로그램 ‘국악이 좋아요’에서는 남도민요 강사로서의 역량을 십분 발휘하고 있다. 그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에는 대선배이자 최고의 스승인 김수연 명창이 있었다. 1947년 군산에서 출생한 김수연 선생은 일찍이 박초월과 성우향 명창 문하에서 판소리를 공부했으며 1989년에는 전주대사습 판소리 명창부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런 스승 밑에서 그는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춘향가’를 차례로 배웠다.
이제 사십을 갓 넘은 강경아 명창을 만났을 때 거듭 떠오르는 단어는 격(格)과 예(藝)였다. 사실 요즘 젊은 세대들 중에서 소리를 잘하는 젊은이들은 많지만 그들에게는 2%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 이는 강 명창이 스승 댁에 기거하면서 북채와 부채를 잡기 전에 걸레를 먼저 들었고, 허드렛일도 불사하면서 소리를 익혔던 18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대학교 2학년 때 김수연 명창 댁에 처음 들어가 지금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소리를 배우고 있는 것. 하지만 소리를 배우기 전에 먼저 알아야했던 것이 깍듯한 범절과 예도였다. 그 때문에 그에게는 20~30대 젊은 소리꾼에게는 없는 격조가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신세대적인 에너지가 넘쳐난다.
중저음의 매력적인 의리파
부산이 고향인 그는 소리를 배우기 위해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상경했다. 어렸을 때는 노래와 춤으로 타고난 끼를 자랑하면서 동요대회 등 각종 대회에서 모든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그녀의 소질을 인정한 아버지는 단지 딸아이를 잘 키워보겠다는 일념으로 서울행을 강행했다. 서울 국악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는 소리꾼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다.
그 후 단국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하고 현재는 일반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1990년 동아국악콩쿠르 판소리부문 은상을 시작으로 전주대사습놀이, KBS 서울국악대경연, 흥보가 완창발표회 등 여러 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이뤄냈고 전통예술고등학교, 남산국악당 등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때 그는 성대수술을 받을 만큼 목 때문에 고생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후천적으로 목을 어떻게 활용해야 좋은 소리꾼이 될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아울러 고음보다는 중저음에서 매력을 발산하는 그의 목소리는 흥보가에 더 잘 어울리며 실제 그의 성격과도 많이 닮아있다. 부당한 경우를 보면 제일 먼저 소리를 높이는 사람이고 불쌍한 사람을 보면 제일 먼저 지갑을 열줄 아는 의리파이다. 아직 미혼인 그는 “멀지 않은 미래에 꼭 결혼을 하겠다”면서 “전주대사습놀이에 재도전해 대통령상을 받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 박찬웅(스튜디오 ZIP)
김선미 리포터 srakim2002@hanmail.net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