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의존인 사람의 보호자가 늙은 부모들인 수가 있다. 과음으로 혼기를 놓쳤거나, 술로 가정이 해체되어 어쩔 수 없이 다 큰 자식을 챙겨야 해 보기에 딱하다. 이런 경우에 나이 든 부모들이 저지르는 가장 흔한 실수는 자신의 역할을 혼동하는 것이다. 보호자가 아니라 교사나 의사가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꾸 교사 역할을 하는 것은 과음 문제를 환자가 뭘 몰라서 저지른 문제라고 이해한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꾸만 ‘술을 많이 마시면 해롭다’, ‘저녁에 일찍 들어와야 한다’는 등의 말을 교훈처럼 주입하고 가르치려 한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다. 화를 내면서 큰소리로 다그치니까 속이 상해서 안 듣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어머니는 아들이 40세도 훌쩍 넘었는데, 한두 살짜리 애에게 하듯 조용한 목소리로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찬찬하게 설명하려 한다. 합리적으로 설명하여 설득시키면 해결된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식의 조종은 과정이 은근하므로 어렸을 때에는 잘 몰랐고 그래서 효과적이었으나, 결국에는 알아차린다. 그러면 통제를 받는 경우보다 더 기분이 나쁘다.
다음으로는 보호자가 어느덧 치료진으로 변하는 경우다. 환자를 마주칠 때마다 ‘그러다 간경화 될라’, ‘단주 모임에 빠지지 말아라’ 등 치료적 조언을 늘어놓는다. 물론 지시나 처방대로 잘 따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보호자의 몫이겠으나, 진료와 같은 불편한 과정을 반복하여 회상시키는 것은 본인에게는 고통이다.
과음의 시초는 억압만 하고 살다가 술기운을 핑계로 마음껏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쾌감 때문인 수가 흔하다. 지난날 인생이 그만큼 자유롭지 못했다는 뜻이다. 큰 대가를 치르면서도 과음을 통해 추구하는 것이 만능감과 자율감인 수가 많다. 통제와 조종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이런 마음은 조금도 모른 채 볼 때마다 통제하고 조종하려 한다면 회복은 멀어진다. 오늘날 학교는 군대나 교도소처럼 통제가 많다. 의료도 본질적으로 통제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학교나 군대나 병원을 싫어한다. 집이 마치 학교나 군대나 병원 같을 필요가 있을까?
환자의 마음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결과 행동인 음주만 갖고 문제 삼기보다는 술을 참고 지내느라 겪는 어려움을 이해하고 위로하자.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면 함께 괴로워하고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것이 실수할까 봐 의심하고 경계하는 것보다 낫다. 보호자의 역할은 결국 위로와 도움이니까.
신 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w.alj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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