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의 경제 교실

고령화 시대 장수의 위험

지역내일 2010-08-19
필자가 근무하는 연구소에는 일주일에 한 번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청해서 강의를 듣는 시간이 있다. 이번 주 강의 주제는 ‘고령화와 노후 설계’였다.
그런데 강의 시간 내내 귀가 따가울 정도로 말이 ‘장수의 위험’이다. 일찍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단명의 위험’이라면 모를까, 왜 축복받은 장수를 ‘위험’이라 부를까? 장수의 위험이란 노후 대비 없이 오래 사는 위험을 말한다. 한마디로 돈 없는 노후 생활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그만큼 요즘 우리 사회에서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바로 ‘고령화’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사회를 향한 초고속 질주를 시작했다. 통계청의 ‘2009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09년 7월 1일 현재 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자는 약 519만 명으로, 총인구의 10퍼센트를 넘어섰다. 지난 1990년 5퍼센트를 넘어선 이후 20여 년 만에 2배로 증가한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2026년에는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퍼센트를 웃돌아 유엔이 정한 ‘초고령사회’에 진입한다.
이렇듯 고령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는 것은 훌쩍 늘어난 평균수명과 턱없이 낮은 출산율이라는 기묘한 앙상블(?)의 결과다. 의료 기술이 발달하고 참살이 열풍이 부는 등 건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우리 국민의 평균수명은 1970년 61.9세에서 2008년에는 79.1세로 늘어났다.
반면에 2008년 우리나라의 신생아 수는 약 46만 명으로, 한 해 100만 명이 넘게 태어나던 1970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노인들은 점점 늘어나는데 신생아의 울음소리는 잦아들고 있다는 얘기다.
2050년 지구촌 출산율은 2.1명으로 예상되지만, 한국은 0.8명에 불과할 것이라는 암울한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오죽하면 정부가 범국민 출산 장려 운동을 시작할 정도다.
당장 드러나는 문제가 국민연금 재정의 고갈이다. 오는 2060년이면 국민연금이 완전히 소진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할 젊은이는 줄어들고 부양 받을 노인들은 늘어나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 등이 휘고 경제는 활기를 잃을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노후 대비의 든든한 버팀목인 국민연금의 존립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얘기다.
‘초저금리 시대’의 도래도 ‘장수의 위험’에 불을 붙인 또 다른 원인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 9일 17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기준 금리를 끌어올렸지만, 아직도 기준 금리는 연 2.25퍼센트 수준에 불과하다. 금리가 치솟는 물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금리 ‘제로’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은퇴 후 예금이자만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말 그대로 ‘죽을 맛’이다.
더 답답한 것은 오륙도, 사오정, 삼팔선(38세까지 직장에서 버텼으면 선방), 삼초땡(30대 초반이면 명예퇴직 대상) 등의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조기 퇴직 바람이다. 한 번 입사하면 평생을 직장과 함께 늙어가는 ‘평생직장’은 ‘흘러간 옛 노래’가 되었다. 50세 전후면 퇴직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80세 가까운 평균수명에 비춰보면 퇴직 후 최소한 30년 이상 노년의 삶이 남아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런데도 노후 준비에 손을 놓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2009년 3월 발표한 ‘은퇴자의 은퇴 준비 과정과 생활 실태 분석’ 결과를 보면 은퇴자 4명 중 3명꼴로 은퇴 전까지 노후 준비를 전혀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장수의 위험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된 것이다.
자녀 양육과 여러 책임감에서 벗어난 노년이야말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시기일 수 있다. 장수는 분명 ‘축복’이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사람에겐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장수를 축복으로 연결하자면 그만한 준비가 필요하다. 하루라도 일찍 시작하는 노후 준비가 ‘장수의 위험’을 예방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박철 연구위원
(KB국민은행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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