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영 원장
유원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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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은 0시간도 가능하고 24시간도 가능하다
어떤 인간도 시간 흐름 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모든 인간이 완벽하게 평등한 조건으로 이 세상을 살다가는 것은 오직 하나, 하루를 공평하게 24시간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전교1등에게도 전교 꼴찌에게도 하루 24시간은 동일한 조건이다. 이 24시간을 어떻게 매순간 선택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1년 후, 10년 후의 모습이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자신의 촌각을 아껴서 자식들이 조금이라도 더 공부할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좀 더 편히 공부하라고 자가용으로 데려다 주고, 간식거리를 대령해놓고,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마다하지 않고 대신한다. 심지어 봉사활동시간이 대학입시에 결정적이라는 헛소문이 돌자 자식을 대신해 봉사활동시간을 얻어가려는 학부모로 고아원과 양로원이 넘쳐났다. 우리네 어머니의 소망은 이렇게 절약된 시간을 공부에 쏟아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런 시도는 실패로 귀결된다. 어머니의 간절한 희생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은 시간의 풍족함 속에서 시간의 소중함을 배우지 못하고 성장해 버린다. 이와 반대로 불우한 환경 속에서 학비를 벌어가면서 공부를 해온 학생들이 사회 진출하여 사회적 리더로 성장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는 시간의 소중함을 학창시절 배운 때문이다. 두 가지를 다 해내야 하는 압박감 속에서 시간 소모적인 관심거리를 자연스럽게 스스로 차단하는 능력을 형성한 것이다. 24시간을 온전하게 활용하는 법을 체득하는 것이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일과 노력을 누군가의 희생으로 때우며 성장한 경우 사회진출 후에도 자신의 일과 노력을 누군가의 희생으로 메우려 하며 그 먹잇감을 찾는 본능이 성장하여 자신의 24시간을 오로지 자신의 일을 대신할 존재를 찾는 것에만 허비하고 자신의 노력은 0시간을 만든다.
20세기 대규모의 구조주의적인 사회체제가 발달하면서 자신의 일을 위임하는 능력 또한 대단히 중요한 능력으로 인정되었으나 리더의 본연의 일을 하기 위해 업무를 위임하는 경우와 달리 자신이 놀면서 아랫사람을 부려먹기 위해 업무를 위임하는 리더는 자신의 자리를 보존하지 못하였다. 더구나 21세기는 소규모 변화중심의 사회체제가 요구되므로 사회의 리더는 한조직 구조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팀원역할과 조직을 이끌고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의 역할도 동시에 해나가야 한다. 이런 사회 속에서 24시간 동안 2~3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나갈 수 있는 시간관리 능력을 소유한 사람만이 성공적인 리더가 되어 자리를 유지할 것이다.
행동은 선택 가능하나 역사흐름 속에서 결과는 선택할 수 없다. 때를 놓치지 않아야 원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논어에 자주 등장하는 ‘時(시)’란 한자어는 ‘때때로’, ‘때에 맞게’, ‘때를 놓치지 않고’로 번역되곤 한다. 이런 논어를 차치하고 우리속담 중에 ‘모든 건 때가 있다’라든지 영어단어 중에 ‘tip point''란 어휘 등은 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일을 진행해 나감에 있어서 선택의 순간이 중요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리더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이때를 알아 이 순간을 놓치지 않도록 아랫사람을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때를 모르는 상관을 둔 아랫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한들 자신의 노력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끝날 것이다. 더구나 때의 중요성을 모르는 상관은 아랫사람이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서 일을 그르쳤다고 책임회피까지 한다. 무능하고 몰염치한 리더라고 할 수 있다.
할리우드영화 중 해리슨 포드 주연의 ‘에어포스 원’은 대통령 전용기가 납치되고 대통령인 해리슨 포드만 우연히 지하창고에 숨어 있다가 인질과 전용기를 납치범의 손에서 되찾는 줄거리다. 인질이 된 대통령 스태프 중 누군가 아군이 납치되지 않았고, 뭔가 일을 꾸민다는 것을 알게 되자 ‘누군가 한 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때를 기다는 중이다’라는 말을 한다. 해리슨은 때를 맞춰 반격을 시도하고 다른 인질들과 협력하여 인질과 전용기를 구한다. 즉, 리더는 결정할 때를 알고 행동해야하는 때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여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의 오판은 전체의 노력이 무위로 끝나는 작은 비극에서 끝나지 않는다. 전체가 공멸하고 회복의 기회조차도 주지 않는 비극으로 끝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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