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그릇과 인형들이 내 삶의 기쁨이고 위로예요
외국에 다녀오는 일이 잦았던 부모님은 딸을 위해 작은 소품들을 선물해주었다. 도자기 인형과 예쁜 컵을 보며 기뻐하던 소녀는 자라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를 보며 마음을 추스르기 힘들던 시절, 부모님이 사주신 작은 컵들은 위로가 되어 주었다.
혼자만의 취미를 넘어서 이웃과 함께 나누려는 사람, 앤틱 빈티지 인형과 소품을 모으는 일산동구 성석동의 김미경 씨를 만났다.
오래 되어 낡은 소품의 매력을 아는 사람
정원이 예쁜 그의 집에는 포근한 기운이 가득했다. 분홍빛 장미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마당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창가에는 꽃무늬 조각 천을 이어 만든 퀼트 이불이 햇살을 머금고 있었다. 벽에 가득 걸려 있는 접시들, 100년 된 나무 의자와 앤틱 가구들, 도자기로 만든 작은 피겨린들이 말없이 반겨주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반짝 반짝한 새 것보다 누군가 마음을 담아 만든 것, 만들다가 못 만든 것들, 그래서 아무 쓸모없는 거라도 저는 그게 좋아요.”
오래 되어 낡고 깨지더라도 가치를 인정받는 소품들을 보며 그는 장애를 지닌 아들을 떠올리게 된단다. 엄마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흠을 가지고 있는 자식이라도 기어코 사랑스러운 점을 알아차리고야 마는. 김미경 씨도 그랬다. 자그마한 도자기 인형 몇 개를 들고 오더니 그것이 특별한 이유를 말해주었다.
“1934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피겨린이에요. 독일 오슬로의 공방에서 버다 흠멜이라는 수녀님이 그린 그림들을 모티브로 만들기 시작했죠. 지금까지도 만들어 지고 있고, 그 수익금이 전 세계의 가난한 나라로 가서 아이들을 돕는데 쓰여요.”
컵이나 접시처럼 음식을 담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쓸 곳이라고는 단 한 가지, 위로를 해준다는 것. 그러나 살면서, 그것도 자식 낳아 기르는 어른이 되어 위로 받을 곳이 한 군데라도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래서 김미경 씨는 깨진 채로 배송되는 그릇이라도 애지중지 아낀다. 음악이나 그림처럼 앤틱 소품들이 사람들에게 주는 즐거움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취미생활, 장애 공동체를 위한 밑거름으로
소장하고 있는 수많은 소품들 가운데서 그가 가장 아끼는 시리즈는 허벌랜드 시리즈. 접시를 살짝 흔들면 분홍 꽃들이 후두둑 떨어질 것 같은 이 접시들도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프랑스의 작은 지방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공방에 모여 그린 거예요. 그림을 보세요. 똑같지 않고 다 다르죠. 선도 조금 삐뚤어 졌고요.”
접시에 그림을 그리던 백 년 전 프랑스의 주부들처럼 김미경 씨 둘레에도 손으로 직접 무언가를 만드는 재주를 가진 이들이 많다. 발달장애아 부모로 알게 되어 지역아동센터 <기쁨터>를 꾸리고 이제는 함께 살아갈 마을을 같이 준비하는 이들이다.
“바느질로 인형 만들고, 양재하고 퀼트를 하다보면 근심을 잊어요. 수집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저한테는 이 일이 인생의 짐을 희석시켜 줘요.”
아이에 대한 어려움을 취미생활로 풀면서 몰두하다 보니 전문적인 기술이 쌓일 정도가 됐다. 함께 모여 바느질을 하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에 ‘신데렐라’라고 말하며 서로 웃고는 했다는 그들. 어느새 아이들은 자라 성인기에 들어섰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많지 않아요. 단순하게 조립하는 일을 직업 교육으로 하기에 저희도 맡아서 해보았어요. 오히려 그동안 해온 특수교육에서 거꾸로 후퇴하는 느낌이었어요.”
엄마들이 먼저 시작하고 아이들이 함께 하면 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양재, 비누, 퀼트, 인형 만들기를 다 같이 배우기도 했다. 김 씨가 소장한 앤틱 소품들을 기반으로 온라인 자선 쇼핑몰도 열었다. 앤틱 빈티지 쇼핑몰 <앤의 다락방>이 그것. 판매 이익금은 모두 기쁨터에 기부한다. 어떤 쇼핑몰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나쁘지 않은’ 쇼핑몰로 운영하고 싶단다.
김미경 씨는 요즘 1930년에서 50년 사이에 만들어진 천을 찾고 있다. 오래된 천과 새 천을 이어 새로운 작품으로 태어나게 하고 싶은 까닭이다. 고궁 앞에 서면 옛 사람들을 떠올린다는 그는 옛날 천을 만지며 누구를 생각할까. 작은 인형과 도자기 그릇들에게, 삐뚤빼뚤 바느질한 낡은 천에게 그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다 알고 있다고. 사람들이 고개 돌린다 해도 슬퍼하지 말라고. 너를 사랑하는 내가 여기에 있다고.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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