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마다, 학생마다 다른 과목, 다른 수업

특성화되는 일반고, 이제 교육과정을 읽어라

지역내일 2010-08-09 (수정 2010-08-09 오전 10:05:53)




지난해 12월 고시된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고교 현장은 특히 큰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에 따라 획일적으로 기본 교과를 배우는 체제였지만, 이제 고등학교는 공통 교육과정 없이 1학년부터 선택 교육과정을 편성한다.
이에 따라 학교마다 교육과정 편성, 운영의 자율권이 대폭 늘면서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른 맞춤형 교육과정 운영이 가능해졌다. 이는 특목고나 자율고뿐 아니라 일반고까지 특성화되면서 중학교 단계에서 내 아이에 맞는 학교와 교육과정을 판단하는 안목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뜻이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2년간 발달단계에 따른 교육 내용과 수준 등을 담은 로드맵. 교육과정의 의미다. 학교 시설이 그릇이라면 공부할 과목부터 학습량, 수준 등을 제시하는 교육과정은 그릇에 담긴 내용물인 셈이다.
김대중 정부의 7차 교육과정을 통한 개혁 이후 노무현 정부는 2007 개정 교육과정으로 이를 수정·보완했고, 현 정부는 2007 개정 교육과정을 크게 손질한 2009 개정 교육과정을 2011년 초·중·고등학교 입학생부터 적용한다.

학교 현장 어떻게 달라지나
2009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은 단위 학교의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재량권을 대폭 이양하고, 창의적 체험 활동을 도입해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맞게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또 학습 부담을 덜어준다는 취지에서 여러 학년과 학기에 나눠 배우던 과목을 한 학년, 혹은 한 학기에 집중하도록 해 학기당 배우는 과목을 10~13과목에서 8과목 이내로 줄인 것이 가장 큰 골자다.

1학년부터 선택 교육과정 운영, 학교 재량권 대폭 확대  앞으로 일반계 고등학교는 3년간 총 이수 단위 204단위 중 ‘학교 자율 과정’ 64단위와 새로 도입되는 창의적 체험 활동 24단위를 포함한 88단위를 재량껏 편성할 수 있다. 매주 34시간 중 14~15시간은 학교와 학생마다 다른 과목, 다른 수업을 할 수 있다는 얘기다. 특목고나 자율고는 재량이 이보다 확대된다.
예를 들어 수학, 과학 등 이공계 과정을 특성화하고 싶은 학교는 64단위를 관련 과목 중심으로 편성할 수 있고, 인문·사회 과정을 특성화하고 싶은 학교는 사회, 외국어 등의 과목을 집중적으로 편성할 수 있다. 또 진로와 연계된 심화 학습이 가능해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 특목고에 개설되던 고급수학, 국제경제, 영어청해 같은 전문 교과나 일반화학 등 대학에서 개설된 교양과목을 정규 교과로 편성할 수도 있다. 그간 일반고 학생들이 연세대 언더우드 전형 등 전문 교과 이수를 자격 조건으로 내건 상위권 대학들의 일부 전형에 지원하기 쉽지 않았지만, 이제 선발권만 없을 뿐 일반고와 특목고가 교육과정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진 것. 특성화 전략은 학교마다 다를 수 있다. 수학으로 특성화하더라도 어느 학교는 ‘수학1’과 ‘미적분과 통계 기본’만 배우고 바로 전문 교과로 들어갈 수 있고, 어느 학교는 수학에 취약한 학생들을 위해 교과별 수업 시간 20퍼센트 범위 내 자율 증감 허용에 따라 수학 교과 단위를 높여 기초부터 심화까지 수학 과목을 집중적으로 이수하도록 편성할 수도 있다.

학기당 이수 과목 축소, 집중 이수제 & 창의적 체험 활동 도입  2009 개정 교육과정의 또 다른 특징은 집중 이수제를 도입한 것. 여러 학년과 학기에 걸쳐 이수하던 과목을 학년별, 학기별로 집중 이수해 수업 부담을 덜고 집중도는 높이겠다는 취지다. 학기당 배우는 과목이 8과목 이내로 줄고, 과목 특성에 따라 2~3시간을 묶어 토론식 수업, 실험 수업에 적용하는 블록 타임제 등 수업 방식도 다양화될 수 있다.
종전의 창의적 재량 활동과 특별활동을 통합한 개념인 ‘창의적 체험 활동’이 도입되는 것도 큰 변화다. 6학기 동안 24단위, 즉 정규 교과 안에서 주당 평균 4시간 이상 확대되는 창의적 체험 활동이 얼마나 특색 있게 운영되는지도 주목할 부분. 비교과 영역이 중요해지는 입시 흐름에 비춰보면 봉사 활동, 특별활동, 동아리 활동 등을 내실 있게 운영하는 학교일수록 자기소개서나 학업 계획서 등에 담을 경험과 소재가 풍부해진다.

입시와 뗄 수 없는 교육과정,
특성화 수준 지켜봐야
이처럼 획일화된 교육과정에서 탈피해 학교 현장의 다변화를 꾀한다는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학교 현장에 안착하기까지 풀어야 할 과제가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 집중 이수제가 과연 수능을 준비하는 데 유리할지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휘문고등학교 신동원 교사는 “1, 2학년 때 전 과정을 모두 마친 과목을 3학년 때 접하지 않으면 수능에 임박해선 별도로 사교육의 힘을 빌려야 할 수도 있다.
지나친 입시 중심 교과목 편성에 따른 우려 때문이긴 하지만, 수능을 완벽하게 대비하려면 30과목 이상 이수해야 하는 현실에서 국·영·수·탐구 영역을 8과목 이상 편성할 수 없도록 한 조치에선 재량권 발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보는 입장.
학교별 특성화가 어느 수준까지 구체화될지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현행 내신 평가 체제에서 전문 교과 운영이 얼마나 활성화될지 예상이 쉽지 않기 때문. 서울중등교육과정연구회 상임부회장인 영동일고등학교 진동섭 교감의 설명이다.
“특목고 대신 일반고를 선택하는 학생들은 내신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할 텐데, 예를 들어 진로 집중 과정을 위해 개설한 ‘국제경제’를 선택했다고 가정해보죠. ‘경제’라는 보통 교과가 있는데, ‘국제경제’는 전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루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어려워요. 우수한 소수 학생들만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데, 만약 신청자가 20명밖에 안 됐다면 상대평가 아래선 1등급이 한 명이잖아요. 정규 수업 대신 성적은 내지 않아도 되지만 이수했다는 기록은 남길 수 있는 방과 후 학교에 개설해달라는 요구가 나올 수도 있고, 수업 자체를 교양 수준으로 쉽게 가르치는 변칙 운영으로 갈 수도 있을 텐데, 이를 대학이 어떻게 신뢰하고 인정해줄지 이런 문제들에 대한 정비가 선행돼야겠죠. 아직 갈 길이 먼 셈이에요.”
아직 발표되지 않은 2014학년 대학 입시 개선안도 관건이다. 학생들이 고교에서 배우는 내용 자체가 달라지기에 교육과정 변화와 가장 유기적 관계를 맺는 것은 대학 입시. 선택 중심 교육과정인 7차 교육과정으로 처음 입시를 치른 2005년, 서울대는 인문계 학생들도 과학을 24단위 이상 이수하도록 강제했고, 전학이나 편입 등으로 이수하지 못했을 때는 학교장의 사유서를 받았다. 또 사회는 11과목 중 4과목, 과학은 8과목 중 최대 4과목을 선택하도록 수능 체제도 변했다.
신동원 교사는 “2009 개정 교육과정으로 각 과목 시수뿐 아니라 수업 내용도 크게 달라진다”며 “최근 발표된 서울대 입시안을 보면 모든 수험생에게 한국사를 필수로 요구하고, 예체능이나 인문계 학생들도 과학을 2과목 이상 이수해야 지원할 수 있도록 규제했는데, 일반적으로 서울대가 최소 이수 과목을 정하면 거의 모든 고등학교가 준수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수능뿐 아니라 상위권 대학의 입학 전형 방법을 교육과정과 비교해 잘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 교육과정기획과 김승익 연구관은 “현재 개정 교육과정의 취지에 맞는 적합한 학업 성취도 평가 방법과 수능 체제 개편안에 대한 연구가 거의 마무리되고 있다. 학생들이 수능 체제 개편 방안에 따라 원하는 교육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올 10~11월 안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략적 진학 로드맵을 위한
교육과정 사용 설명서
앞으로 고교 현장에서 2009 개정 교육과정이 어떻게 구체화될지는 좀더 두고 봐야겠지만, 당장 내년부터 고1 과정이 선택 중심으로 큰 폭의 변화를 보일 것 같진 않다. ‘진로와 직업’ 과목을 신설하고, 직업 교육을 강화한 중학교 단계 개정 교육과정이 안착해야 고교 선택 과정도 제대로 운영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고교 선택제와 더불어 고교 진학이 선택의 개념으로 바뀌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편성표를 본다 한들 이해가 쉽지 않은 교육과정을 내 자녀에 맞도록 전략적으로 읽으려면 어떤 판단 기준이 필요할까.
우선 중학교 단계에서 자신의 진로를 어느 정도 확정하고, 학습 능력에 따라 고교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과학고나 영재학교를 준비하다 합격하지 못했다면 과학중점학교나 수학·과학 중심의 특색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일반고로 지원해 그동안 공부하던 수학, 과학 심화를 이어가야 한다. 경영 계열로 진로를 결정했다면 사회 과목 중 ‘경제’나 ‘법과 정치’ 등 관련 교과 이수 단위가 큰 학교를 선택해 특기자 전형이나 수시 일반 전형으로 진학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역발상도 필요하다. 전 교과 성적은 괜찮은데 유독 수학 성적이 취약하다면 기초부터 심화까지 단계를 세분화해 수학 교육과정을 밀도 있게 짜놓은 학교를 선택해 취약점을 보완하는 것도 방법이다. 수학이 약하다고 해서 무조건 기피할 게 아니라는 얘기. 신동원 교사의 가이드를 참조해보자.
“고교 교육과정이 다양화된다 해도 대학 입시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 현행 대학 입시를 잘 이해하면서 교육과정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준 차가 다양한 학생들이 모인 일반고에서는 학생부 중심 전형을 염두에 두고 특별히 전문 교과나 자체 개발 교과를 도입할 필요 없이 교과부가 제시한 일반 교과 중심으로 교육과정을 짜면서 수능도 대비하고, 우수한 학생들이 좋은 내신을 받을 수 있도록 내신 관리를 철저히 하겠죠. 강남 학군처럼 매년 서울대 지역 균형 선발 전형에 한 명도 합격시키지 못하는 지역에선 수시 특기자 전형이나 대학별 고사를 통해 선발하는 일반 우수자 전형을 목표로 전문 교과나 대학 교양 수업 수준의 전문 교과를 개설, 이들 전형을 집중 공략할 테고요. 반대로 수능이나 대학별 고사에서 성과를 내기 힘든 지역에선 입학사정관 전형을 대비해 창의적 체험 활동을 특성화하고, 포트폴리오와 내신 관리에 용이한 교육과정을 운영할 것입니다.”
대학 입시에 따른 교육과정이 학교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학습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 과목 수가 적어진다고 해도 시험 범위는 넓어지기 때문에 단시간 대비가 어렵고, 기초가 없으면 특정 과목 시험공부를 포기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 평소 학교 진도에 맞춰 스스로 계획을 세워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진동섭 교감은 교수 학습 방법을 잘 살필 것을 당부한다. “수준이 다양한 학생들이 모인 일반고에서는 공부에 흥미가 없는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어떻게 높일지, 교수 학습 방법을 어떻게 특성화해 프레젠테이션이나 의사소통 능력을 길러줄지, 자기소개서에 기록할 수 있는 경험의 폭은 어떻게 넓힐지, 진로 탐색을 위한 지도는 어떻게 하는지 학부모 입장에서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정애선 기자 asjung@naeil.com
사진 박찬웅·이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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