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배우고 나누는 마을 문화 만들어요
햇빛마을, 하늘마을, 흰돌마을. 예쁜 이름의 마을들. 그러나 그곳에는 진정 ‘마을’이 있을까? 문하나 걸어 잠그면 이웃집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없는데, 우리는 정말 ‘마을’에 살고 있는 것일까? 서로 나누고 돕는 마을을 되살리고 싶은 사람들, 품앗이 교육 공동체 뚱이학교를 찾았다.
아이들 장구 가르치며 만난 엄마들, 품앗이를 시작하다
2008년에 시작된 뚱이학교는 처음부터 계획된 모임이 아니다. 이들은 자녀들이 배우는 장구모임에서 서로를 알게 됐다.
“장구만 하다가 아쉬워서 다양한 것을 하며 놀아보자 했죠. 그래서 미술도 시작했고요. 아파트에 살다보니 교류하는 이웃이 없었어요. 이웃, 친구를 만나는 기분으로 시작했어요. 재미있게 놀고 싶어서요.” 이현주 씨의 말이다. 그이처럼 뜻을 같이 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일주일에 두 번 씩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장구와 음식, 동화책을 들고 연습하는 집에서 하루를 보낸 것. 오전에는 취학 전 아이들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고 학교에 다녀오는 아이들은 오후에 결합했다. 그러다 2009년에 김주연 씨가 심학산 가까이에 있는 단독 주택으로 이사하면서 그 집에서 모였다. 한결 안정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아침에 모이면 아침열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노래를 부르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읽어주었다. 또 산책을 다녀오고 장구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시간에 부모들은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같이 공부를 하면서 한 부분만으로 우리 고민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어요. 삶과 교육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자는 지향이 자연스럽게 생겨났죠. 어떻게 해야 한다는 틀 같은 건 없었어요. 한발 한발 걷듯이 할 수 있는 선에서 길을 찾아 왔어요.” 김주연 씨의 말이다. 작정하고 모여도 쉽지 않은데 별 생각 없이 알음알음 모인 것이 신기하다고. 그러나 사람이 모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마지막으로 합류한 박숙경 씨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 들렀을 때가 고구마를 캐는 날이었어요. 내 아이 네 아이 할 것 없이 돌보는 모습이 좋아 보였고 저도 해보고 싶어서 시작했죠.”
일곱 가정의 열여덟 명 아이들이 함께 하는 뚱이학교. 생후 4개월 아기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연령 폭이 넓다. 프로그램은 저학년과 고학년을 따로 진행한다. 저학년은 아침열기와 산책이 끝나면 도자기 만들기나 콩나물 기르기, 가방 만들기 같은 작업을 한다. 고학년은 수학과 반찬 만들기, 장구를 한다. 중학생들은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하게 돕는다.
‘우리끼리’ 넘어 열린 공간으로
뚱이학교 사람들은 각자 집안에 있는 물건 리스트를 작성해서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돌려서 쓴다. 옷도 큰 옷장에 남자 아이 옷, 여자 아이 옷인지만 구분해서 넣어놓으면 필요한 사람이 꺼내 입기 때문에 옷 살 걱정도 없다. 옷이나 물건뿐이 아니다. 아이들이 자라났을 때 쓸 교육비도 함께 모은다. 아이가 자라나서 배우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돈이 없어서 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한 집에 얼마씩 일괄적으로 정하지 않고 소득 수준에 따라 낼 수 있는 만큼 모은다. 아이들이 돈을 벌면 다시 갚게 할 거란다.
뚱이학교 사람들은 지난달 25일 덕양구 대장동에 센터를 열고 이든해윰이라 이름 지었다. 이든은 ‘좋은’, 해윰은 ‘생각’을 뜻하는 우리 옛말이다. ‘좋은 생각’을 가진 모든 이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방과 후 교육, 어른들을 위한 강좌 개설,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작업장 까지.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마을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지금까지는 우리 아이들 데리고 우리끼리 시간을 보내는 거라면 이제는 나누자는 거예요.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겠죠.” (김주연 씨)
“센터가 집에서 가깝고 아이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여서 좋아요. 옛날 어릴 때처럼 한 동네 살면서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며 노는 것이 제가 바라던 거예요. 아직은 초반이라 자주 와야 되고 일이 많아 힘들지만 돌아보면 좋아요.” (김성신 씨)
김희정 씨도 “아이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니까 아이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돼서 좋다”고 말한다. 아빠들은 뚱이학교에 결합하면서 ‘내가 잘못되면 집안이 무너질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있단다.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꿈꾸는 뚱이학교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 길, 문득 옛날 마을에서 함께 쓰던 우물이 떠올랐다. 온 마을 사람들이 퍼도 마르지 않고 새 물이 끊임없이 솟아오르던 우물을 뚱이학교 사람들은 꼭 닮아 있었다.
이향지 리포터 greengreen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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