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인 정서를 반영한 가족, 부부관계 치료법에 대한 명쾌하고도 알기 쉬운 강의로 각종 언론매체는 물론 특강, 세미나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성애 박사.
가족치료의 세계적인 권위자 존 가트맨 연구소의 국내 첫 공인치료사이기도 한 최 박사는 지난 2005년 한국에 영구 귀국한 후, 현재 서초구 서초동에 HD클리닉을 설립해 가족관계 치료 및 예방활동에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 보다 한국적 정서에 맞는 가족치료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해 가족치료 전문가 양성과정도 운영하고 있어 바쁜 스케줄을 쪼개 인터뷰 날짜를 잡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역시나 주중에는 시간을 낼 수 없어 인터뷰는 토요일 오후에 진행되었다. 최 박사는 인터뷰 내내 과학적인 실험과 통계를 바탕으로 건강한 결혼생활이 가족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울타리인지 강조했으며 ‘쿨하게 헤어져라’며 이혼을 부추기는 잘못된 사회 분위기, ‘스트레스를 키우지 말고 배우자에게 모든 걸 풀어내라’라며 감정을 상하게 하는 관계연구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남을 먼저 생각했던 아이
가족, 부부, 아동치료 전문가로서 현재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최성애 박사는 쉰네 살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운 피부에 가냘픈 몸매, 차분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다. 최 박사는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컬럼비아대에서 심리학 석사, 시카고대학 인간발달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이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심리학협회에서 국제심리치료사 및 가족치료사 자격증까지 땄다.
평생 인간 심리와 관계에 대한 공부를 해오고 있는 최 박사는 어린 시절부터 나보다는 남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중학생 때부터 양로원과 고아원을 찾아다니며 외롭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었으며 고등학생이 되자 본격적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니는 사랑의 학교에 자원봉사를 다니며 아이들을 돌봐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고.
대학에서 사회사업을 부전공으로 선택한 최 박사는 사회사업의 기본 학문인 심리학을 더욱 깊이 있게 공부하고자 유학길에 올랐다.
결혼을 통해 부부관계 및 치료에 눈떠
보다 통합적으로 인간심리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어 미국에서 다시 학부부터 시작했던 최 박사는 시카고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칠 때 지금의 남편 조벽 동국대 석좌교수를 만났다.
1984년 시카고에서 결혼식을 준비하던 중 최 박사는 결혼식 날 딱 하루만 입을 웨딩드레스를 대여하는 비용이 아까워 예단으로 온 한복을 입고 결혼을 치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전통혼례에 대해 지식이 아주 없었던 최 박사는 직접 시카고 영사관을 찾아가 가정의례준칙서를 보고 결혼식을 감행했다.
최 박사는 “결혼식을 하려다 보니 사모관대는 무엇이며 연지곤지, 기러기의 의미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며 “결혼 후 박사과정 중이었던 남편을 따라 버클리로 이사해 매일 도서관에 다니며 결혼의 상징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라고 말했다.
버클리대 도서관 동아시아관에 앉아 중국, 일본, 미국, 중세 유럽까지 동서고금을 통틀어 결혼의 상징에 대한 공부를 7년에 걸쳐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을 출판하게 되었다. 1993년 결혼을 심리, 사회, 문화, 경제적인 의미에서 바라보며 유래와 의미에 대한 내용이 담긴 이 책이 바로 ‘혼수전쟁’이다. 이후 최 박사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 국제심리 및 가족치료사 자격증을 땄다.
최 박사의 고운 피부와 착한 품성에 반해 결혼을 선택했다는 조 교수는 지금까지 최 박사의 가장 든든한 동지이자 친구이기도 하다. 조벽 교수는 세계의 명강사 5인에 선정된 바 있으며 미국 미시건 공대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최 박사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와 최 박사와 함께 교육부 Wee 프로젝트 자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미국의 사례를 통해 우리나라 가정문제 확인
결혼과 이혼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면서 최 박사는 지난 2006년 세계적인 부부치료 연구자인 존 가트맨 박사가 운영하는 시애틀의 ‘가트맨 인스티튜트’에서 부부치료사 자격증을 땄다. 지난 20년간 가트맨 연구소에서 훈련을 받은 4만여 명의 연구원 중에 오직 102명만이 자격증을 받을 수 있었으며 동양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최 박사가 영예를 안았다.
2005년 영구귀국 이전까지 27년간 미국에서 거주했던 최 박사는 미국의 이혼율이 사회 경제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보며 우리나라 역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최 박사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이어지는 스트레스 때문에 미국인들의 77%가 탈진상태에 빠졌어요”라며 “1년간 기업에서 직원들의 스트레스를 다스리는데 사용한 비용이 4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수치에 이르며 이로 인해 미국 의료시스템이 망할 지경”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직장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가정에서 해결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고. 그래서 결혼과 이혼은 개인의 사생활이 아닌 한 사회를,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국가 전체를 좌지우지 할 큰 문제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결혼 후 아이를 낳고 3년 안에 관계가 최악으로 발전하는 부부들이 67%나 되며 이러한 악영향은 태어난 아이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데, 부부 사이가 나쁠 경우 아기의 소변 속에는 다량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검출된다는 것은 실험을 통해서도 밝혀졌다.
이렇듯 부모의 갈등과 이혼은 자녀의 언어, 정서, 신체발달에 해를 끼치는 것을 시작으로 자녀의 학업 성취도, 성장 후 사회, 가정생활까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는데 스웨덴의 한 연구결과를 보면 영향을 끼치는 기간이 3대까지 이어진다고.
가족문화가 무엇보다 중요해
최 박사는 행복한 부부가 되려면 적금 붓듯 꾸준하게 긍정적인 감정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어 행복한 부부는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부부는 모두가 비슷하게 불행하다며 대화에 있어서 ‘비난’, ‘방어’, ‘경멸’, ‘담쌓기’라는 네 가지 나쁜 방식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당신은 항상 그렇지 뭐!’, ‘당신은 뭘 잘했는데?’, ‘혼자 실컷 떠들어라’ 식의 관계를 망치는 태도로 싸우는 부부는 94%가 이혼으로 간다며 ‘싸움의 원인’보다 ‘싸우는 방식’ 때문에 많은 부부들이 헤어진다는 점을 다시 상기시켰다.
최 박사는 결혼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넓은 아파트, 기능이 뛰어난 가전제품만큼 부부관계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며 반드시 결혼 전 관계기술에 대해 교육받기를 권유했다. 더불어 부모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바로 건강한 관계인데 ‘가족 모두가 모여 아침식사를 하기’처럼 간단하지만 가족 간의 유대를 이어줄 수 있는 가족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박수진 리포터 icoco19@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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