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를 배우면서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땅바닥에라도 글을 썼다는 남자 서강구(54), 손으로 하는 일이라면 공부 빼고 모두 자신 있다는 여자 김순옥(50). 부부라는 이름으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은 시인으로 아내는 서예가로 꿈을 이루기까지, 서로의 장점을 존중하고 지지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두 사람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서울여자의 시골 살이, 서예를 시작하는 계기 되다
둘의 만남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횡성이 고향인 서강구 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에서 일을 하다가 아는 사람의 소개로 우연히 김순옥 씨를 만나게 되고, 어깨솔기가 뜯어진 자신의 와이셔츠를 감쪽같이 꿰매는 그녀를 보며 ‘저 여자는 평생 같이 살아도 되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결혼. 하던 일이 어려워지면서 고향에 내려오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횡성에 정착하게 된다. 이때부터 서울여자 김순옥 씨의 시골살이가 시작된다.
21살 어린 나이에 농사를 지으며 시부모님 모시고 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자식을 낳고 기르며 10년이란 세월을 보내면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등학교 때 배웠던 서예를 다시 시작하게 된다. 남편 서강구 씨는 “이것저것 배운다고 돌아다니기 시작하니 집이 엉망이었지요. 그래도 연애편지 쓸 때 봤던 흐트러짐 없는 아내의 필체를 떠올리며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줬습니다”라며 슬쩍 아내의 글씨를 칭찬한다.
●병상에서도 글쓰기를 멈추지 않은 남자, 문예춘추에 등단하다
이렇게 시작한 서예가 그녀의 삶을 바꿔 놓기 시작했다. 국전에서 수상하며 대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후 집 주변의 야생화에 흠뻑 빠진 그녀는 민화, 동양화, 도자기 등을 배우며 야생화 그리기에 몰두한다. “까만색 글씨만 접하다가 그림을 그리며 색을 표현하는 일이 너무 행복했어요. 난 죽으면 꽃이 될 것 같아요”라는 김순옥 씨는 타고난 손재주 꾼이었다.
아내가 밤새 그림을 그리면 남편 서강구 씨는 옆에서 시를 썼다. 그러던 2008년, 산에서 내려오다 사고를 당해 척추장애 2급 판정을 받고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게 된다.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쉬지 않고 메모를 하며 글쓰기를 이어 나갔던 서강구 씨는 퇴원 후 당시의 심정을 담아 쓴 ‘병상일기’란 수필이 문예춘추에 당선되며 등단하게 된다.
●‘사랑’이란 이름의 서로 다른 꿈
지금 부부는 남편은 방통대 국문과 3학년, 아내는 중문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동기다. 그리고 남편은 장애인 복지관에서 장애인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고, 작년 겨울엔 아내와 함께 ‘경로당을 찾아가는 한글교실''에서 한글과 일기,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렇게 바쁘게 살아온 부부에게 서로 다른 꿈이 있다. 남편 서강구 씨는 “아내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내 김순옥 씨는 “남편이 지금껏 쓴 시를 모아 시집을 출간하는 것”이 꿈이다. 부부의 서로 다른 꿈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배진희 리포터 july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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