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역사가 함께 하는 마을 ‘귀래‘

경순왕의 자취를 쫓는 ‘미륵산행’

지역내일 2010-05-28 (수정 2010-05-28 오후 4:28:44)


 부도탑. 부도는 각각 학서당, 서응당이라고 한자로 적혀 있으며 경순왕 때의 승려로 알려져 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원주 미륵산 아래 학수사와 고자암이라는 이름의 절을 짓고 말년을 잠시 의탁한 이래, 사람들은 이곳을 ‘귀래‘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귀한 사람이 와있는 동네라는 뜻이다. ‘귀래’라는 지명이 경순왕으로부터 유래되었으니 이미 천년도 넘게 묵은 오래된 이름이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귀래’라는 면소재지는 충주 가는 길의 작은 정류장 이름이거나 또는 지나치는 풍경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귀래’를 목적지로 하면 색다른 여행을 즐길 수 있다. 경순왕의 자취를 찾아 오르는 답사 산행이 바로 그것이다.




● 옛 학수사터는 마을이 되었고 주춧돌은 정원돌이 되었네
 
학수사의 주춧돌로 추정되는 석물이 민가의 정원에 놓여 있다.  



절안마을 황토한옥.. 학수사 터가 있었던 절안 마을에 현대식 황토한옥이 들어서고 있다.




충청도에서 귀래로 넘어오는 ‘배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덕주 공주가 경순왕을 향해 절을 하던 고개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귀래 면소재지의 ‘너더리’라는 곳은 왕이 개울을 건널 때 옷이 젖을까 하여 주민들이 널다리를 놓았던 곳으로 널다리가 너더리로 변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귀래는 아직까지 경순왕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지명이 전해져 오고 있다. 미륵산에 오르는 여정도 예외가 아니다. 경순왕이 세웠던 학수사 터를 지나야 하고, 영정을 모신 경천묘의 왼편 오솔길에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학수사는 중간에 황산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절은 없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절안 마을이 자리를 잡았다. 일설에 의하면 학수사 터는 학이 돼지 머리를 밟고 있는 형상의 터전이라고 하며 볕이 잘 드는 남향의 양지쪽에 자리를 잡고 있다.
지금 남아있는 절의 흔적은 민가 정원에 남은 주춧돌뿐이고 지금은 기와를 얹은 황토집들이 여러 동 들어와 있어 깊은 산중 전원주택단지 같은 모습이다. 짓고 있는 집에 카페와 펜션 간판이 눈에 띄기도 한다. 황산사 중건 유래에 대한 내용을 담은 비석이 들어서 있어 옛 일을 조금이나마 전하고 있다. 




● 고승의 무덤을 지나고 해탈교를 건너자 고자암

해탈교. 사찰의 입구에 있는 다리로 속세와 불국토를 연결한다는 의미가 있다. 옛 고자암 터의 입구에 서 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고자암 터에 들어선 작은 암자에서 나이든 노보살이 연등을 손질하고 있다. 


주포리 삼층석탑. 고자암 터에 있으며 원래 5층 석탑이었지만 현재 3층만 남아있다. 고려시대 지방 민간신앙 대상물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산행은 보통 계곡을 따라가다가 계류가 사라지고 물이 마르는 시점에 능선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리고 항상 능선 길로 접어들기 전에는 사찰이 있어 고요한 산사의 정취를 느끼며 목을 축일 수 있는데 그 위치에 경순왕의 영정각 경천묘가 있다.
경천묘에는 석간수와 주차장 화장실이 있어 산행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점검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경주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관리하는 분께 부탁하면 경순왕의 영정을 배알할 수 있다. 왕에게는 네 번 절해야 한다.
경천묘의 왼쪽으로 오솔길이 나있는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등산객들이 쌓아놓은 돌무더기, 지난 겨울 폭설에 꺾인 나무들을 지나치며 한참을 오르면 아늑한 숲의 한 자락에 부도탑이 나란히 놓여 있다.
부도탑은 고승의 사리를 모셔놓는 탑으로 사리를 낸 고승은 학서당과 서응당 스님이다. 마침 사리탑 주변으로 늦은 봄꽃들이 산들바람에 우수수 흩날리고 있었는데 천 년을 지난 지금의 봄날까지 함께 한 그 자태가 몹시 정다워 보였다.
부도탑을 지나 다리품을 조금 더 팔면 작은 돌다리가 나온다. 도량으로 들어갈 때는 해탈교를 지나는데 해탈교는 속세와 불가의 땅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는 속세와 불계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異)의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이 소박한 다리에 해탈교니 불이교니 이름이 붙여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자암 터의 입구에 자리를 잡아서인지 ‘이것이 해탈교인가?’ 라고 중얼거리며 건너본다. 
고자암터에는 삼층석탑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 그 모양이 참 청승맞다. 옥계석마다 푸른 이끼를 두르고 골동품의 느낌을 풍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천년이라는 시간에 비하면 그 모습이 아직도 굳건해 보인다. 웬만하였으면 진즉에 흩어졌을 터인데, 석탑에 숨결을 넣은 석공의 성심은 세월도 거스르나 보다.
고자암터를 지나 능선길이 시작된다. 경사가 급해지고 바위지대가 나타나는데, 정상부 가까이에 가면 큰 바위들 사이를 밧줄을 타기도 하고 기어오르기도 해야 하므로 안전에 주의해야 한다. 그렇게 밧줄과 바위와 씨름을 하다 보면 마애미륵불에 닿게 된다. 그런데 큰 바위 벼랑에 음각된 불상이라 아래쪽에서 올려다 볼뿐 인바로 볼 수가 없다. 
전설에 경순왕의 딸 덕주 공주가 부왕의 얼굴을 따서 석불을 조각하였다고도 하며 또는 대홍수가 났을 적에 어떤 사나이가 배를 타고 와서 바위에 불상을 새기기 시작했다고도 한다. 그런데, 머리 새기기를 마치고 몸을 새기는 동안 급히 물이 빠져버려서 마저 완성하지 못해 부처님의 몸은 흐릿하게 되었다고 한다. 실재로도 얼굴에 비해 몸의 조각이 흐릿하다. 
 
●하산하며...귀거래 귀거래 ‘귀래’

 진달래 너머 마애미륵불. 네모진 얼굴에 눈 코 입 귀 등을 크고 토속적으로 묘사하였다. 낮은 육계에 소발머리, 통견의 법의 등을 얕게 부조한 점, 머리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작은 네모진 체구, 치졸한 팔이나 손의 형태 등은 고려석불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장원이 황폐해지고 있다’로 시작한다. 고향의 밭이 묵고 있는 것이 관직에 진출해서도 못내 안타까웠던 시인은 끝내 관직을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문장을 지었다.
어감이 비슷해서인지 ‘귀래’라는 이름에서 왠지 귀거래사가 떠오른다. 미륵산 골짜기, 과거 화전민들의 터전에는 가수 장윤정의 집을 비롯해 이미 전원주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내려가며 귀래, 귀래 ‘나도 언젠가는 돌아가련다’라고 중얼거리며 돌아왔다. 허기진 배를 수타면을 고집한다는 유명한 귀래 중국집의 수타식 짜장으로 달래주면서...




● 여행 tip> 함께 돌아보면 좋을 곳

귀래의 중국집에서 수타면을 뽑고 있다. 

 
미륵산농원 




-‘귀래’의 유명한 중국집 ‘옥로원조2대 손짜장’ : 762-4040, 
                                                    소문난 옛손짜장 : 762-4118

-미륵산농원 : 미륵산자락의 맑은 물로 장을 담가 파는 곳이다. 여러 매체에서 소개가 된 꽤 유명한 농원. 펜션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문의 : 900-3030

-천은사 아래 다둔마을(삼태미마을)에서 금광체험과 숲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숲속 펜션에서 숙박과 물놀이 등 가족단위 여행이 가능하다. 마을 내에는 정화석 화백의 불이재 미술관이 있어 도조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문의 : 070-4124-4902




글.사진 : 최종필(둘레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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