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는 법. 고로 살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 남모르는 콤플렉스를 겪는다. 누군가는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또 누군가는 학벌 콤플렉스에 괴로워한다. 재밌는 건 결혼 후 여자들이 겪는 공통의 콤플렉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름하여 착한 며느리, 착한 아내, 착한 엄마 콤플렉스다.
착한 여자 이야기…01
그녀, 결혼과 동시에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에 빠지다
“절대~ 절대 착한 척, 살림 잘하는 척하지 마! 네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 결혼 8년 차 김아무개(40)씨는 요즘 결혼 전 선배들이 해준 얘기가 귓속에 맴돈다. 왜 진작 귀담아듣지 않았을까, 이제 와 후회막급이지만 때는 늦었다.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에 고르고 골라 5남매의 막내아들과 결혼했다는 김씨. 하지만 결혼 1년 만에 시아주버니가 해외 지사로 발령 나면서 한순간에 집안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막내며느리가 되고 말았단다. “못하지만 열심히 배우려고 노력했죠. 시댁에 서운한 일이 있어도 이해하려고 애썼고요. 친정 엄마도 그랬으니까요. 무의식중에 착한 며느리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증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생각은 4년 전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큰며느리가 한국으로 돌아왔건만, 집안 대소사는 여전히 ‘형님’이 아닌 그의 몫이다. 시어머니가 밝히는 이유는 “우리 막내며느리가 착해서…”가 전부. 그렇다면 형님은 나쁜 며느리일까? 아니다. 그저 ‘착하지 않은’ 착한 며느리일 뿐이다.
착한 여자 이야기…02
집으로 돌아온 그녀,
착한 아내 콤플렉스에 괴롭다
“정말 내가 다른 집 남편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해?” 결혼 후 줄곧 맞벌이를 하다가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재택근무 프리랜서로 나선 현아무개(39)씨는 요즘 부쩍 남편과 말다툼이 잦아 걱정이다. 부부 싸움의 주된 화두는 남편과 아내의 역할 분담. “직장 생활할 때랑 천양지차죠. 집에서 일하랴, 가사 돌보랴, 아이 챙기랴 정말 미치겠더라고요.” 싸움의 발단은 현씨가 남편에게 가사 노동의 고충을 토로할 때마다 남편이 어이없다는 듯 내뱉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 키우는 게 당신만 하는 일이냐?”는 말 때문이다. 주목할 것은 남편의 이런 자세가 현씨에게 착한 아내 콤플렉스를 유발한다는 점이다. 주변을 둘러보니 아침마다 남편 재킷의 먼지를 털어주며 엘리베이터까지 출근길을 배웅하는 아내, 남편 아침밥은 꼭 챙긴다는 아내, 잠자리는 부부의 의무라며 아무리 하기 싫어도 남편이 원하면 응해준다는 아내까지… ‘착하디착한’ 아내가 수없이 많더라는 것. 그런데 이게 착한 거랑 무슨 상관이지?
착한 여자 이야기…03
출산 후, 착한 엄마 콤플렉스의
세계에 발을 디디다
“항상 아이에게 착한 엄마가 못 돼 미안하죠!” 여덟 살 외동아이의 맞벌이 엄마 박아무개(43)씨는 아이를 낳은 뒤 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다. 정확히 말하면 임신 직후부터다. 야근이 잦아 배가 뭉치는 경우가 많았고, 출산도 양수과소증으로 20일이나 앞서 유도 분만해했다. 출산하고는 석 달 뒤에 직장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좋다는 모유도 60여 일박에 못 먹여 속이 탔단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 “아이가 자랄수록 미안한 일이 왜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다른 엄마들처럼 매일 밤 책도 못 읽어주고, 맛난 반찬도 제대로 못 만들어주고, 공부도 제대로 못 봐주고… 갈수록 못 해주는 일들만 수두룩해지더군요.” 이처럼 착한 엄마 콤플렉스는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 착한 아내 콤플렉스에 이어 대한민국 주부들이 겪는 3중고 세트의 완결편이라 할 수 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남편과 아내보다 강력한 관계기 때문이다.
착한 여자 이야기…04
착한 며느리, 착한 아내, 착한 엄마… 알고 보면 모두 같은 맥락
친정 엄마의 삶을 떠올리며 스스로 착한 며느리가 되려던 김아무개씨, 아내의 역할에 대한 남편의 요구와 주변 엄마들의 모습을 보며 착한 아내 콤플렉스에 괴로워하던 현아무개씨, 아이를 가진 뒤 줄곧 미안한 일투성이라는 박아무개씨… 과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남의 잣대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다. 연세신경정신과의 손석한 원장은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빠지는 이들의 경우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는 것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높다”고 지적한다. 아이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 아이에게 ‘좋은 엄마’의 느낌을 주기 위해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못하고 그저 아이가 하자는 대로 들어주는 것도 엄마 자신의 문제 때문이다. 둘째,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기대치를 높은 기준에 정해놓고,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유형이다. 셋째, 불안장애 성향이 강하다. 매사에 지나치게 걱정하여 실수나 부정적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많고,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것이다.
손 원장은 ‘착한 엄마’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고 짚어준다. “오히려 착한 엄마기 때문에 사소한 잘못을 견디지 못하는 경향이 높다”는 것. 예를 들어 아이가 가다가 넘어져서 조금 다쳐도 ‘내가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아이가 다쳤어’라고 자책하기 쉽다는 얘기다. 더불어 ‘착하다’는 모호한 표현 아래 사회가 우리에게 편향된 며느리, 아내, 엄마의 역할을 요구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게다가 착한 여자 콤플렉스가 지나치면 한참 후 마음의 응어리가 남아 ‘화병’이 될 수도 있다니, 절대 착하고 볼 일이 아니다.
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도움말 손석한 원장(연세신경정신과) 일러스트 홍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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