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던 전화기가 냉장고에 있더란 이야기, 리모컨을 손에 들고 온 집을 뒤졌다는 이야기 등등 건망증에 얽힌 이야기가 이제 남의 일 같지 않다. 언제부턴가 심해지는 건망증 탓에 ‘내가 벌써 늙었나?’ 나이 탓도 해보지만 그 정도가 심상치 않아 걱정인 주부들이 많다.
가스 불에 냄비 올려두고 태워먹은 건 다반사, 심지어 점심을 먹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는 주부, 갑자기 남편 이름이 생각 안 나더라는 주부... 출산 후에 더 심해진 주부건망증. 출산 후 호르몬의 변화로 인한 생리적인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웃지 못 할 에피소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부경, 김영희, 박성진, 이수정 리포터 lagoon02@hanmail.net
밤손님, 어서 옵쇼~
주부 박미진(40·수영동)씨는 얼마 전 아침에 일어나 간 떨어질 뻔 했단다. 신문을 가지러 나가려고 거실 중문을 여는데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더라는 것. 그때서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날 밤 현관에 널려 있는 신발들을 정리하다 먼지 때문에 현관문을 열어 놓고는 닫지도 않고 거실 중문만 닫았던 것이다.
“그것도 모른 채 밤새 두 발 뻗고 잘 잤으니 기가 찰 노릇이죠. 밤손님도 지나가다 웃을 일이죠”라며 양씨는 허탈한 웃음을 짓는다.
결혼 전 남편과 연애할 때도 가방이나 지갑 등을 잘 잃어버렸던 박씨를 두고 박씨 남편은 ‘주부건망증의 끝은 어디인가’를 연구해보고 싶단다.
“내가 점심을 먹었나?”
아직 어린 아이 둘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다는 김은희(36·남천동)씨. 여느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건망증 때문에 소소한 불편을 겪는 것은 매한가지. 전화 통화하면서 전화기 찾기, 차 열쇠를 찾아 온 방을 돌아다니기, 가지고 나갔던 물건 놓고 오기 등은 이제 일상생활인지라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고 한다.
“둘째 낳고 일 년 뒤였어요. 갑자기 점심을 먹었는지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어떻게 밥 먹은 게 기억이 안날 수가 있나? 이러다 바보가 되는 게 아닌지 나름 심각하게 고민까지 되더라구요”
다행히도 몇 달 지나니 기억이 나더라는 김씨. 지금은 황당하고 웃긴 추억으로 기억하지만 그 때는 정말 놀랬다고.
“조금씩 차이가 있을 뿐 남들도 다 정신없이 살더라고요. 엄마들에게 건망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래도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어본 적은 없다는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살아요.”라며 스스로 대견하단다.
“애들만이라도 잘 챙기면 돼!”
어린 세 아이들과 나들이를 하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온 김정애(37·용호동)씨. 남편과는 주말 부부라 혼자서 차 안에서 곯아떨어진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 나르기 위해 차를 아파트 현관문 앞에 이중 주차를 하고 비상깜빡이를 켜뒀단다. 세 아이를 집에 눕혀 놓고 바로 내려와 차를 지하 주차장에 대려 마음먹었던 김씨. 최근 심각한 건망증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는 차를 경비실 앞에 떡하니 세워놓은 걸 깜빡하고 바로 씻고 잠이 들었다.
두어 시간이 지난 새벽 1시쯤. 경비실에서 인터폰이 와 잠이 깬 그녀.
‘이 새벽에 왜 인터폰을 하지?’
“아이구, 사모님! 차를 이렇게 대 놓고 안 내려 오시면 어떻게 합니까?”
허걱~. 애 셋을 낳다보니 정신이 이 모양인지. 김씨는 점점 자기 자신이 무서워진단다. 그럴 때 스스로 위안하며 다짐하는 말. “애들만 안 잊고 잘 챙기면 돼!”
감쪽같이 사라진 지갑, 아니 거기에?
남보다 늦게 결혼해 아들 하나를 이제 막 유치원에 보낸 박정금(39·좌동)씨는 얼마 전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서둘러 보내고 친구와 영화를 보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박씨의 지갑이 감쪽같이 사라졌던 것. 아침에 유치원에 보낼 돈이 있어 분명히 지갑을 열었던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친구가 찾아와 함께 온 집을 뒤져도 지갑은 나오지 않았다고. 아들 유치원 보내는 사이에 도둑이 들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영화보기는 무산되고 지친 친구가 나가면서 던진 한마디.
“정말 도둑일까? 이렇게 집이 멀쩡한데... 너 아침에 뭐했니?”
아침에 아들 유치원 보낸 것밖에 없다는 박씨의 말에 친구는 무심코 또 한 마디 던졌다.
“유치원 가방에 넣은 거 아냐?”
짜증 섞인 친구의 목소리에 박씨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유치원에 전화해보니 유치원 가방에 곱게 담긴 지갑이 있다는 너무나 반갑지만 낯 뜨거운 소식. 건망증 때문에 사는 게 너무도 힘들다는 박씨.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집에 가서 확인 좀 해줘요~”
약속 장소로 가는 차 안에서 이웃집 전화번호를 연신 눌러대는 이현자(42·민락동)씨.
오늘은 머리에 힘 좀 준다고 간만에 꺼내 쓴 셋팅기 전원을 아무래도 켜 놓고 온 듯해 이웃에 사는 아는 언니에게 자기 집에 한번 가 봐달라고 부탁했다. 한참 뒤 ‘잘 꺼져 있노라’는 전화를 받고서야 안심이 된 이씨.
지난주에는 보조주방 가스렌지 위 냄비에 불을 켜 두고 나온 것 같아 이웃집 아는 동생에게 한번 가서 확인해 봐달라고 부탁했다. 이웃들 중 그녀의 이런 부탁을 서너 번 이상 안 받아 본 사람이 없단다.
집을 나서면 불을 껐는지 켰는지, 창문을 닫았는지, 아이 간식거리를 챙겨 놓고 왔는지 등등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이씨.
“방금 집을 나섰으면 되돌아가 확인하는 건 기본이에요. 그럴 수 없을 때는 아는 이웃에게 부탁해 확인을 해봐야 안심이 돼 다른 일을 볼 수 있어요.”
Tip. 주부건망증 예방을 위한 생활 습관
*일상 속 메모하는 습관 들이기
일상에서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면 기억력이 향상될 수 있다. 중요한 일이나 잊기 쉬운 것은 꼭 메모를 해 놓도록 하자. 수첩이나 달력 등에 중요한 일을 표시하고, 자주 보면서 머릿속에 할 일들을 기억한다.
*30분 이상 지속하는 운동 생활화
조깅이나 수영, 달리기 등 유산소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운동을 통해 뇌에 산소가 공급되면 뇌의 면역 기능은 물론 호르몬과 감각 기능을 조절하는 등 다양한 효과가 있다.
*왼 손으로 전화받기
왼쪽 귀로 전화를 받거나 왼손으로 물건을 집는 훈련을 하는 등 신체의 좌우를 균형적으로 사용하면 뇌의 각 부위가 고루 발달한다. 무엇보다 두뇌 활동에 좋은 알파파를 증가시키기 위해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감상하는 등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활동을 통해 감성의 뇌를 자극한다.
*타이핑을 통한 손 운동
한 시간에 5분 정도의 타이핑과 같은 손 운동으로 운동중추를 발달시키면 뇌의 면역 기능, 호르몬 조절 기능, 고도의 정신 기능, 감각 기능 등의 발달에도 효과를 볼 수 있다. 더불어 발을 열심히 사용하는 것도 말초신경을 자극해 건망증을 퇴치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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