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버려두기

지역내일 2010-04-24

사람들은 어떤 일에 부닥쳤을 때, 조금 생각할 시간을 갖고 판단을 하고 다음에 행동을 취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쪽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과음을 하는 사람들의 행동 특성 중 무슨 일이 벌어지면 가만있지 못한다는 점이 있다. 그런데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그러하지 않는 수가 많다.
사건이 생기면 본인이 나설 일인지 아닌지, 아니면 남이 알아서 할 일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않고, 먼저 나서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여긴다. 겉모습만 보고 책임감이 강해서, 의협심이 강해서 또는 이타적이라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린다. 그런데 사실은 상대를 의식하여 소위 작위적(作爲的)으로 해오던 것인 때문일 수도 있다.
이런 경향으로 성급하게 행동한 결과로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수가 더 많다. 자신은 물론 상대방에게도 상처를 안기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살이의 사건들은 그대로 놓아두고 있다 보면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 대부분이 아니었던가? 작위적인 조급한 행동은 불필요한 수고로움이기도 할뿐더러, 무언가 섣부르기에 후유증이 남기도 하고 상대방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는 셈이 된다.
자녀의 성장 발달과 자신의 음주 갈망을 관리하는 문제가 그러한 예들 중에서 대표적이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남에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자녀로 키우겠다고 지나치게 관심을 쏟는 부모들이 오늘날 청소년 비행과 정신과적 문제들의 숨은 원인인 수가 흔하다. 부모가 불안하여 지나치게 염려하며 매사를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 할수록 문제가 커진다. 단주도 마찬가지다. 초기에 음주 갈망을 너무 철저히 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갈망이 더 강렬해져서 단주가 더 어려워진다.
자녀 양육의 궁극적 목표는 의존적 존재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개체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불안정한 부모가 지나치게 관여하고 간섭하면, 오히려 인격의 성숙을 방해하여 더 의존적으로 남는 수가 흔하다. 어느 정도 본인을 믿고 맡기며 내버려둔다면, 다소의 시행착오와 실수를 딛고 몸으로 체득하며 단단해진다.
오랜 세월 오로지 술로 버티고 살아왔는데 하루아침에 감쪽같이 자신의 음주 갈망을 없애려 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음주 갈망은 차라리 그대로 놓아두고 대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즉 술잔을 기울이는 것과 같은 행동거지들을 관리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신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무료 상담: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www.alj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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