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환영회, 생일, 송년회, 결혼식, 야유회 등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술이 빠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축하하는 자리에 술이 없으면 어쩐지 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요즘 사람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 민족은 좋은 날이면 술과 함께 그 흥을 돋울 정도로 술을 즐겼다.
적당한 음주는 모임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고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애는 데 급약 처방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음주습관이 엉망인 이들로 인해 술자리가 곤욕스러울 때도 없지 않다. 자신, 혹은 가족의 음주 습관으로 인해 나와 주위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한 번쯤은 진지하게 음주 습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 알코올 중독은 질병입니다!
알코올 중독은 잦은 재발이 특징이며 만성적이고 진행성인 치명적 질환이다.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센터장(연세대 원주의과대학 기독병원 정신과 교수)은 "알코올중독은 뇌(腦)질환으로 파악된다"고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알코올중독을 심리학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다양하게 개발되어 사용되는 알코올중독치료제나 많은 신경?생화학적 연구 및 뇌 영상 연구 결과들은 알코올중독이 뇌의 병임을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 중에는 술이 세다고 자랑처럼 말하는 이가 있다. 자신의 체력이 좋다고 과시하는 방편으로 ''술 세다''라는 말을 빌린다. 하지만 신정호 센터장은 "술이 세다는 것은 오랜 과음으로 몸이 술에 대해 내성이 생겼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한두 잔의 술을 마신 이후의 몸이 붕 뜨는 듯 이완된 느낌을 갖게 된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내성이 생겨 처음에는 적은 양에도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점점 더 많은 알코올을 마셔야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결국 술을 마시면 마실수록 점점 알코올에 의존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그렇다면 알코올은 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소량의 알코올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해 흥분을 유발한다. 그러나 동시에 흥분과 공격성, 충동성을 관할하는 중추신경계의 통제기능을 억제해 그간 사회적으로 통제되어 왔던 행동들이 스스럼없이 나타나기도 한다.
더 심각한 것은 알코올은 뇌세포를 직접 파괴하지 않고 뇌의 신경세포의 막을 서서히 녹이면서 신경세포 간의 신호전달 과정을 교란시킨다. 이는 신경세포 간의 ‘정보교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지경까지 이르게 한다. 특히 대뇌 옆 부분인 측두엽의 기억회로가 알코올로 인해 장애가 발생할 경우 이른바 ‘필름이 끊기는’ 일까지 생긴다.
● 알코올중독, 병으로 받아들여야
알코올 중독 진단을 받고 금주처방이 내려진 사람들. 그들이 금주 혹은 단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알코올 중독을 병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알코올 중독으로 판정이 났을 때 술 마시는 자신의 음주 습관에 대해 술 마시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 사회생활 하기 위해서 술은 필수 등으로 인식하며 그 심각성을 깨닫지 않으면 알코올 중독에서 헤어나기 힘들다. 병으로 인식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을 살펴 볼 수 있게 됐고 조금 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냉정해 질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알코올 중독 환자를 둔 가족들의 인식의 전환과 도움도 꼭 필요하다. 신정호 센터장은 "알코올 중독자는 환자입니다"라며 가족들에게 그들 옆에서 도와 줄 것을 부탁한다. 아픈 사람 병간호 하듯 그렇게 옆에서 격려해주고 보살펴 줘야 한다고 말한다.
작년에 알코올 중독 판정을 받고 단주 중인 주희정(33?강릉)씨는 올해 10살 된 아이를 가진 평범한 가정주부다. 하지만 10년 전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을 앓았던 그녀는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아이를 돌보지 않고 하루에 소주 2병을 거의 매일 마셨다. 남편 이민석(40?강릉)씨는 "처음에는 화도 나고 이해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아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술에 빠져 사니 집안은 엉망이 되고 자괴감이 들었지만 아내가 의존적인 성격이 강해 그렇다"라며 이해하기 시작하며 옆에서 조급해 하지 않게 묵묵히 도와주고 있다. 아내가 단주에 실패하고 자괴감이 들었지만 일산동에 있는 알코올 상담센터에서 단주하는 사람들의 가족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서로의 고충도 듣는 과정을 통해 지금은 아내의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 단주를 돕고 있다.
● 알코올 문제, ''강원알코올센터''의 문을 두드려 보자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술을 잘 마셔야 한다며 술자리가 일의 연장이라며 술자리를 정당화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신정호 센터장은 "술을 마시면 사회생활을 잘한다는 말은 없다"라며 딱 잘라 말한다.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하고 그 다음날에도 비몽사몽 일에 지장을 주게 된다. "한 환자는 술을 끊고부터 회사 일에 실수하는 법이 없어졌다"라며 "맑은 정신에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더 능률이 올라 직장 내에서 더 인정받게 된 경우를 봤다"라며 ''술 권하는 사회''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강원도 알코올상담센터 박경옥 팀장은 "생각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문제로 고통 받고 있다"며 "가족 중 알코올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알코올상담센터''의 도움을 받길 권한다"고 말한다. 일산동 원주 건강문화센터 지하 1층에 위치한 ''강원알코올상담센터''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알코올로부터 고통 받는 당사자 뿐 아니라 그 가족들의 손을 잡아 주고 있다.
작년 한 해 강원도 알코올 상담센터를 다녀간 사람만 561명.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알코올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알코올 문제, 더 이상 개인의 의지에만 맡길 순 없다. 알코올 문제로 힘이 든다면 가까운 알코올상담센터나 가족에게 도움을 청해야 한다.
●단주 하는 사람들-사례
1. 단주 1년째-이수빈(24.가명)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술을 접했다는 이 씨. 자랄 때 늘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에 호기심에 중학교 때 처음 술을 접했다고 한다. 이후 고등학생이 된 그녀는 하루에 2~3번씩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대학생이 된 이후에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한다.
하지만 점점 술 마신 다음날이면 후회할 행동의 연속이었다. 결국에는 알코올상담센터의 도움을 받고 꾸준히 노력한 끝에 1년째 술을 마시지 않고 있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알코올 중독이란 진단을 받았을 때도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든다"며 되레 병원을 의심했었는데 차츰 술에 대한 조절이 점점 더 없어지면서 알코올 중독을 병으로 인식했다고 한다.
2. 단주 5년째-최철수(49.가명)
5개월 동안 하루에 소주 4~5병을 마셨다는 최씨. 그렇게 매일 술에 빠져 살고 결국에는 원주 기독병원 응급실로 실려 오면서 술을 끊게 됐다. 그에게 술은 생활이었다.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 늘 술은 필요했고 술을 마신 이후의 생활은 생각도 안 했다.
단주 후 그가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가족''과의 관계. 평소 가족에게 무심하고 가부장의 권위만 내세웠던 그이지만 5년째 단주하면서 ''자상한 남편''으로 거듭났다. 그는 "처음에는 내가 ''알코올 중독''이라고 생각지도 않았고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라며 "하지만 이젠 알코올 중독을 질병으로 받아들이면서 내 상황을 겸허하게 수용하게 됐다"고 말한다. 결국 그는 지금은 아내에게 사려 깊은 남편으로 거듭나고 있다.
3. 단주 18년 째 -신수하(54.가명)
18년 동안 단주했다는 신 씨. 직장 내에서 사람들을 만나 접대하는 일을 했다는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2~3병의 술을 회사생활 하는 내내 마셔야 했다. 어느 날 수척하게 변한 자신의 얼굴을 거울로 통해 보게 된 그는 평화롭게 잠을 자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단주를 결심하고 지금껏 18년 째 단주 중이다.
도움말: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신정호 센터장, 강원알코올상담센터 박경옥 팀장,
참고: 신정호 알코올 칼럼 ''알코올, 약인가? 독인가?''
문의 : 강원알코올상담센터 748-5119
이지현 리포터 1052je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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