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까지 빠지는 설산. 능선과 능선의 사이인 계곡마다 휘몰아친 눈이 쌓여 허리까지 빠지는 고행의 길이다. 앞에 보이는 1,300고지를 또 하나 넘어야 태초의 자연림을 만날 수 있다. 약용버섯들이 자라는 전나무, 분비나무, 개회나무, 뽕나무, 자작나무 같은 거목의 군락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그 곳엔 깊은 산중만큼 깊은 내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자작나무 아래 앉아 먼 산들과 여윈 겨울나무들을 보며 정막 속에서 인연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어 생각하는 일. 당면한 일들의 순리를 생각하여 정리하는 일, 그리고 훌훌 눈을 털고 일어나 사색 속으로 눈밭을 헤치고 나가는 산행.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 하지 않았던가, 먼 설산을 보면 평온함이지만 설산의 중심지에선 혹한과의 사투이다. 감각이 무뎌진 얼굴과 움직이지 않으면 동상에 걸릴 것 같은 손과 발, 생수가 얼어 물 대신 눈을 씹어 먹으며 먹는 빵 한 개. 이렇게 따뜻함과 편리함을 뒤로 하고 극한의 길을 가는 것은 행복해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던 일상에서 넘치던 행복에 감사하기 위함이다.
인생이 가까이 보면 비극이 아니라 숨어있는, 느끼지 못한 들꽃의 작은 꽃과 꽃망울 같은 아름다움이 얼마나 많이 피어나고 있는 희극인지를 느끼는 산행인 것이다.
힘들게 눈을 헤치고 온 산중엔 하얀 눈을 고깔모자처럼 쓴 상황버섯과 차가버섯, 말굽버섯들이 보이고 마른 목이버섯, 산의 능선엔 푸른 까치집 같은 겨우살이, 늘 푸른 나무 만병초,
물결이 일렁이는 듯한 모습의 일엽초, 깜깜한 밤에도 빛나는 나무 산청목(벌나무) 등을 만나니 고진감래라는 말이 새롭다.
그렇다. 긍정의 힘으로 새들 많은 산 아래 내려가 땀 냄새 미워하지 말고 흙 묻히며 뒹굴며 사는 거다. 휘파람 불며 새들 많은 산 아래, 정다운 얼굴들 기다리는 마을로 내려가 아린 가슴 작은 심지 돋우며 살아가는 이들과 함께 기대며 사는 거다.
분명, 행복과 불행은 생각의 전환으로 선택할 수 있는 것.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때 심신의 평화와 질병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는 것이다.
어서, 마을로 내려가 한기를 녹이는, 뜨겁게 끓여낸 두부전골에 산채나물로 허기를 채우고 행복한 노래를 부를 일이다.
오호영 : 시인 / 약초연구가 / 심마니 /
프렌차이즈“도시 속의 약초건강원"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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