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오랜 역사를 들여다보면 오늘날처럼 물질이 풍족한 시기가 없었지만 인간 세상은 풍요보다는 결핍으로 점철되어 왔다. 이런 경험의 누적은 결핍의 해결 즉, 획득과 성취만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사고방식을 뇌리에 남겼다.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의 취했을 때 모습이 본시부터 여유작작하고 태평스런 것은 아니다. 사실 남들보다 불안이 많거나, 적어도 잦은 과음은 술기운이 떨어지면서 훨씬 더 불안하게 만든다. 조급하고 조바심이 많은 것, 그리고 충동적이고 과격한 행동 경향은 모두 기저에 불안이 심한 탓이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불안이 클수록 더 획득하고 축적하여야 안심이 되는 것은 인류의 과거 경험에서 유래한 것이리라. 그래서 가능한 더 열심히 더 많은 획득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술을 끊고 나면 초기에 얼마 동안에는 거의 대부분이 일중독에 빠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사람들마다 “일해서 돈 벌어야 먹고 산다”라는 말이 입에 배어 있다. 이런 마음은 특히 불안이 심할수록 더 그러하다. 마음에 여유가 있다면 눈앞에 힘든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신념을 가지고 평소대로 우직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러나 불안이 크면 이 말에 숨어 있는 배경과 유래를 잘 새기지 않고, 지나치게 앞날만 걱정하느라 오늘을 잘 살아가지 못한다. 그러면서 미리 대비한다고 이 말 그대로 일만 하려 한다.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일해야 벌어서 먹고 사는데, 내가 입원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 라며 퍽 합리적인 듯이 이런 말로 치료를 거부한다.
다른 질병이나 때로는 자신의 실수로 저지른 사고일지라도 몸을 다치면 어느 날 갑자기 환자가 되고, 그러자마자 바로 환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평소에 맡은 일이 아무리 중요해도 당분간은 내려놓는 것이다. 그런데도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끝까지 내려놓지 못하고 가장 이상적인 목표를 설정해놓고 성취에만 집착하는 것은 고지식하게도 획득해야만 살 수 있다고 하는 고답적인 관념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획득이 생존을 보장하지 않는다. 현대의 삶에서는 결핍 때문이 아니라 생활 방식의 문제가 생명을 단축시킨다. 대표적으로 과음이나 안전이 그러하다. 그래서 획득의 추구보다는 자기 내부를 성찰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사는 길인 수가 많다. 의심과 아집, 그리고 욕심과 독선과 자학 같은 독(毒)들 말이다.
신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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