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깡통 등 3년간 모은 값진 돈 이웃에게 기부해
“부끄럽습니다. 얼마 되지도 않는 돈, 저보다 좀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기부했더니 여기저기서 취재 온다고 야단이네요”
북구 운암2동 장충의씨, 그는 올해 칠순이다. 3년여 동안 폐지와 빈병, 고철 등을 팔아 모은 35만원을 고스란히 통장 째로 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광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해 화재다. 그 통장에는 ‘장충의(고물)’이라고 새겨졌다. 지금까지 남을 위해 봉사만 35년을 훌쩍 넘긴 그는 봉사가 몸에 배어 시골에 살면서부터 남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자칭한다.
죽음의 기로에서 다시 찾은 새 생명
그의 나이 33세. 고향은 고흥 득량동, 가난한 집 7남매의 장손으로 태어나 어선 일을 할 적의 일이다.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라 생각을 거스르며 눈시울을 적셨다. 배 한척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에 기름이 떨어져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를 죽었다 말했다. 그때 다시 얻은 새 생명은 지금 남을 위해 다시 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는 그때부터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지도자로 살기위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도우며 베풀고 살아왔다.
때문에 마을 이장, 통장 등 새마을 지도자 역할 일을 33년 했다. 군 생활도 모범을 보여 공로상, 서울 올림픽 때 체육부장관상, 전라남도지사상, 대통령상, 자원봉사상 등 모든 표창상이 방 가득하다. 또한 틈만 나면 광주시내를 돌아다니며 교통정리에 솔선수범하며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한 일에 더 열정을 쏟으며 살고 있다. 그 덕에 북구청장 표창을 비롯한 각종 모범 주민상을 받아 봉사에서 보람을 찾으며 사는 그런 삶을 사는 사람이다.
내게는 작지만 남들에게는
큰 힘이 되어줬으면
이번에 작다면 작은 액수였지만 그에게는 아주 의미가 컸다. 특히 아흔이 넘은 어머님과 함께 수집한 폐지와 빈병 등을 팔아 모은 돈 500원, 1000원, 2000원을 통장에 한푼 두푼 모아 기부했기 때문에 의미가 더 컸던 것이다.
장 이사는 “어머님이 연세가 많으신 데도 어디 크게 아프신데가 없어 정말 다행입니다. 매일 동네를 돌아다니시면서 빈병이나 빈 박스를 가지고 오셔요, 그래서 저도 모으고, 제 아내도 모으고, 하나씩 그걸 모아서 이렇게 통장에 차곡차곡 모았지요, 작지만 남들에게 이렇게 보탬을 주게 되어 너무 기뻐요”라고 말했다.
“크게는 보탬이 되지 않겠지만 이런 작은 힘이 모아진다면 그들에게는 얼마나 큰 힘이 되겠어요, 그런 마음으로 하나씩 모았네요.”라고 말을 이었다. 어머님도 소일거리로 남의 밭에 조금씩 채소를 기르고 있다. 마늘, 상추, 고추 등을 길러 이웃들과 나눠먹는 것을 무척 좋아하신다.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도 건강에 좋을 터,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어머님이 하시는 소일거리를 말리고 싶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
봉사정신도 투철하고 지도자로써 더할 나위 없이 모범적인 그는 운동뿐만 아니라 산에 오르는 것도 좋아한다. 그러나 2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가파른 산은 오르기가 이제 힘이 든다. 산악회를 5곳 이상이나 다녔으니 가지 못한 그 마음 얼마나 아쉬울까.
장 이사는 “사고 후 운동 삼아 시작한 것이 재활용품 수집인걸요, 하지만 이제 산에는 가지 못하지만 더 많은 박스, 폐지들을 모을 수 있으니 좋아요. 그걸 판돈으로 불우 이웃을 도울 수 있으니 더 좋은 일 한 거나 다름없잖아요(웃음)”
항상 긍정적인 마인드로 세상을 바라보며 5남매도 키워왔다.
“제 아내가 고생 많았습니다. 4남1녀를 바르게 잘 키워줬고 봉사한다고 집안일은 신경도 안 쓰고 밖으로만 돌아다니는데 남편 내조에 어머님 모시고, 사느라 고생한 제 아내 은혜를 제가 두고두고 갚아야지요”라고 말했다. 또 “모두가 욕심 부리지 말고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그런 세상을 살면 좋겠어요, 봉사는 진짜 마음에서 우러난 그런 봉사가 진짜 봉사인 것 같아요”라고 전했다.
이은정 리포터 lip55100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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