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刺戟)이라는 말은 그 말 자체로부터 풍기는 강렬한 찔림의 느낌으로 몸이 저려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자극을 싫어하고 자극받으면 흥분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감당할만한 어느 정도의 자극은 개체 전체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는 한도 안에서 정신을 흥분시켜 무료나 권태 같은 것에 대한 좋은 대책이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가능한 자극을 피하려 한다. 왜냐하면 생체는 언제나 항상성(恒常性)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자극으로 인하여 무언가 균형이 깨지는 것은 불유쾌한 것으로 느끼므로 가능한 빨리 다시 원래의 편형 상태를 회복하려고 한다.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피하려고 하고 휴식을 취하고 휴가를 즐기는 것들이 모두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자극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중독성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다. 술에 곯아 떨어져서도 계속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놓아야 편하게 잠을 이룰 수 있는 수가 많다. 무언가 자극적인 일이 벌어져 그것에 정신을 쏟아 부어야만 불안을 잊을 수 있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므로 그냥 넘어가버리기 쉬우나, 커피나 차에 탐닉하는 것이나 니코틴 중독도 어디까지나 각성 즉 일종의 자극 추구라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과음의 문제가 있는 사람들 중에는 조용하게 가만히 있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하는 수가 많다. 특히 단주 초기에는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도리라며 서둘러 일을 시작하는 수가 더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오래 단주를 잘 유지하자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단순하고 고요하게 잘 지내는 것부터 연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추구하는 자극이 단지 물리화학적 것들만은 아니다. 신체적 자극은 물론, 정신적인 자극이나 사회적 자극들도 있다. 지나친 피로나 통증을 불사하고 심한 노동이나 운동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고, 당연히 화나고 원망스러울 감정적 상황에 스스로를 처박고 더 괴로워하기도 하고, 적당히 피하고 타협해도 될 만한 사회적 관계에서 지나치게 완강한 입장을 끝까지 고집하면서 스스로를 더 힘들게 한다.
아무런 자극이 없이 평탄하기만 하면 어떤 감흥도 없고, 따라서 살아있다는 느낌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반대로 몹시 고통스러울지라도 자극을 느낄 때라야 겨우 자신을 확인하는 것은 아닐까?
강원알콜센터 신정호 소장(연세대 원주기독병원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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