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까지 함께 식사를 하고 지하철을 타며 신문을 나눠보던 남편. 저녁상을 차리는데 남편이 사망했다는 전화를 받았다면? 누구도 늘 함께 있던 아내 혹은 남편의 죽음을 생각지도 않고 사는 게 일반적이다. ‘죽음’이 ‘삶’과 가장 친한 사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힘든 것이 우리 인생. 부모 혹은 자녀의 죽음보다 배우자의 죽음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는다는 보고가 있을 만큼 예견되지 않은 배우자의 사망은 인생의 가장 큰 고통임에 틀림없다. 배우자의 갑작스런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돌아본 삶 그리고 부부라는 것.
남편의 죽음과 동시에 시댁과도 안녕
5년 전 남편을 떠나보낸 유아무개(42·서울 송파구 방이동)씨.
“평소 일요일 같으면 오전에 7시에 인근 산에 위치한 테니스 코트에서 경기를 하거든요. 그날따라 오전 10시까지 늦잠을 자더니 식사도 거른 채 아파트 단지 안에서 테니스를 치겠다고 나서는 거예요.”
시계를 보니 정오가 가까워진 시간. 6월 말 태양이 작열하는 때라며 위험하다고 말렸지만 남편은 막무가내였다. 남편이 나간 지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앰뷸런스 소리에 아파트 안이 소란스러워 밖에 나가보니 테니스 코트 쪽에 사람들이 웅성대며 모여 있더란다.
“여기저기서 젊은 사람이 어떡하냐고 큰일 났다며 혀를 차는데 저는 그때까지 남의 일로만 알고 태연하게 구경꾼의 자세로 서 있었지 뭐예요.”
그런데 들것에 실려 나온 사람은 유씨의 남편이었다.
“동갑내기 남편이 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요.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6개월이 지나도 믿기지 않더군요.”
그런데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유씨 앞에 펼쳐진 것은 냉혹한 현실. 을지로에서 지물포를 운영하던 남편의 가게는 시동생이 챙기고, 시부모와 함께 살던 남편의 집도 시아버지가 명의 이전을 했다. 슬픔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는 사이, 시댁 식구들은 남편의 재산을 모두 빼앗아 갔다. 남은 것은 보험금 4억 원. 2억 원으로 방이동 빌라에 전세를 얻고 6천만 원을 들여 근처 상가에 반찬가게를 열었지만, 권리금만 날리고 1년 전 문을 닫았다.
“아이들 키우고 살림만 하던 제게 남편 죽음 뒤의 삶은 줄타기 같아요. 아무것도 모르고 현실과 마주하니 실패의 연속이죠.”
지금은 어린이집에서 보조교사로 한 달에 70만 원 정도 받지만 초등학교, 중학교 다니는 3남매의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남은 보험금에 의지하고 있다고.
아내 떠나고 아이들과 절친 된 아빠
3년 전 관절염 수술을 하다 주사 쇼크로 아내를 떠나보낸 최아무개(42·서울 도봉구 창3동)씨는 동네에서 ‘친구 같은 아빠’로 통한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만 해도 딸아이가 학교에서 몇 반인지, 아들이 방과 후에 어떤 활동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
“아내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세상과 이별했어요. 퇴원하면 먹겠다고 사골 국을 고아놓고 수학여행 갈 아들을 위해 냉장고에 간식을 가득 채워놨죠.”
옷장을 열면 아내가 즐겨 쓰던 재스민 향수 냄새가 아직도 남아 있어 그립다는 최씨. 1년 동안은 슬픔과 분노, 원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며 그때의 고통을 회고한다. “그런데 제게 아이들이 있더군요. 아무런 유언도 하지 못하고 어린 자식을 두고 떠난 아내의 원통함을 생각하면 정신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 역시 아내의 죽음을 생각해본 적 없었어요. 언제나 전화하면 목소리 들을 수 있고, 맛있는 거 먹고 싶다면 한 상 차려주는… 늘 옆에 있는 사람이었죠. 떠나는 사람도, 남은 사람도 아무 준비 없이 슬픔을 겪었죠. 그래서 저는 친구 부부들에게 얘기해요. 배우자가 갑작스럽게 죽는다면 어떻게 할지 상황 설정을 해보라고요. 유언일 수도, 막연한 미래에 대한 준비일 수도 있잖아요?”
‘아빠 없이 자란 아이’ 오명 때문에 이민 준비
정아무개(39·경기 오산시 오산동)씨는 1년 전 남편을 심장마비로 잃었다. 결혼 7년 차, 초등학교 다니는 딸을 남겨두고 떠난 남편이 지금도 원망스럽다.
“아침에 출근하라고 남편을 깨우니 기척이 없더군요. 장난하냐고 여러 번 흔들었는데… 남편이 죽었다는 슬픔보다, 창백한 남편의 얼굴을 보니 순간 무섭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씨는 너무 놀라 소리치고 싶었지만 학교 갈 준비하는 딸아이를 생각하니 침착해지더란다. 옆에 사는 친정엄마에게 연락을 하고 119에 신고한 뒤 서둘러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아빠는 왜 회사 안 가냐고 딸아이가 묻더라고요. 아빠가 열이 심해 오늘 회사 못 간다고 하니 안방 문 열고 누워 있는 아빠에게 인사를 하더라고요. 10층 베란다에서 딸아이에게 손 흔드는데 앰뷸런스가 왔어요.”
딸아이는 그렇게 아빠와 아무렇지 않게 이별을 했다. 물론 장례식장에서 펑펑 눈물을 쏟았지만, 지금도 왜 아빠가 갑작스럽게 자기 곁을 떠났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1년이 지난 지금도 아파트 놀이터만 나가면 안쓰럽다는 눈빛으로 안부를 묻는 이웃들 때문에 정씨는 괴롭다고 전한다.
“남편이 그립지만 혼자 사는 여자의 현실은 너무 냉혹해요. 슬퍼할 겨를이 없죠. 낮 동안은 일상과 치열하게 부딪히고, 잠자리에 누우면 저절로 눈물이 흘러요.”
정씨는 배우자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영원히 함께 살 수 없기에 배우자의 죽음을 한번쯤은 상상해보라고 권한다.
“아마 정신이 번쩍 들 거예요. 남편 혹은 아내에게 의존하던 삶의 방식도 개선할 수 있을 거고요. 또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애정도 돈독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심정민 리포터 request08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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