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박경리토지문화관 뜰에 모인 재외동포 작가 후남젤만 선생과 세계 각국의 여성 작가들. 왼쪽부터 로쟐린 시빌(프랑스), 수첸 림(싱가폴), 므리두라 코쉬(인도), 후남 젤만(스위스).
40년 전 간호사가 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던 스무 살의 꿈 많은 문학 소녀가 중년의 모습으로 스무살의 꿈을 안고 다시 고국을 찾았다. 스위스 거주 재외동포 작가 박후남(58·독일명 후남 젤만) 선생이 그 주인공이다. 그가 머무르고 있는 박경리토지문화관을 찾았다.
한국 역사 소설 독일어 출간 계획
이번에 그가 박경리토지문화관을 찾게 된 것은 고 박경리 선생의 뜻에 따라 지난 2001년부터 진행된 토지문화관 창작실 개방 프로그램(Residence Program)의 일환으로, 특히 지난 2007년부터 원주시의 지원으로 마련된 재외동포회 소속 작가 초빙 차원에서 성사된 것이다.
박후남 선생은 이번에 토지문화관에 머물면서 내년에 독일어로 스위스에서 출간을 예정으로 조선 후기 역사 소설의 저술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소설에서 그는 한일합방 100주년 해인 2010년을 맞이하여 조선 후기 왕실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이번 소설의 독일어 출간에 대해 박후남 선생은 “한국에 대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한국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유럽권에 주체적으로 소개되지 않아 아쉬움이 많았다”면서, “작품의 모티브인 배꽃을 중심으로 유럽권에 한국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박후남 선생과 같은 재외동포회 소속 작가들 외에도 자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여러 외국의 작가들도 초빙되어, 함께 머물며 교류를 나누고 있다.
유럽 이민 1세대로 여성 언론인으로 자리
박후남 선생은 지난 1970년 간호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기 위해 독일로 이주한 유럽 이민자 1세대이다. 그는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며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독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독일 사브르켄대학에서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대학 강의, 출판, 편집, 칼럼 기고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럽 이민 초기부터 그는 “유럽권에 알려진 한국에 대한 기사에 있어서 한국인의 관점에서 다룬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데에 줄곧 문제의식을 지녀왔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박후남 선생은 현재 스위스에 있는 250년 역사의 독일계 신문사인 ‘너히헤 쥬리쉐 쟈이퉁(Neue Zurcher Zeitung)’에서 약 12년간 유럽 유일의 한국계 중견 여성 언론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한국과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번에 토지문화관에 머물면서 작품 활동과 진행하고 이와 함께 원주 근교에서 지역 문화를 체험할 계획이며, 오는 11월 초순께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 이를 정리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후남젤만의 ‘모국어 사랑’ 이야기
“모국어는 언어의 고향입니다”
유럽권에서 40년간 거주하면서 박후남 선생은 이제는 모국어인 한국어 외에도 독일어와 영어까지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이런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부모 입장에서 자녀들을 위한 효과적인 외국어의 학습법을 물으니, 우선 “유년기에는 모국어의 그릇을 충분히 키워줄 것”을 강조한다.
그는 세계가 점점 국제화됨에 따라 영어가 중요해지고 있지만 “영어는 서구적 사고 중심의 언어”라며, “우리 민족은 모국어를 빼앗겼던 가슴 아픈 식민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외국어를 어린 나이부터 배우게 하기 이전에 어린 아이들에게 언어의 고향인 모국어의 튼튼한 자리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며 깊이 있는 모국어 교육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한글 안에서 외국어와 외래어가 혼동되어 남용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전했다. “언어는 영혼과 사상의 그릇입니다. 어린 시절에 들었던 한국 동요와 동화 등 모국어에 대한 아름다운 기억은 여전히 저의 영혼을 지탱하고 저의 사상을 키우는 힘입니다.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길 바랍니다”라며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한국의 젊은 엄마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한다.
이주혜 리포터 kevinm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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