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 동아리

백석고등학교 연극동아리 BLB

블랙박스 전해오는 ‘전통’ 있는 동아리

지역내일 2009-09-17 (수정 2009-09-18 오전 11:47:38)
연극이 끝난 후, ‘고등학생’ 연극인들의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생애 처음 기쁨의 절정에 올랐지만 이내 기분은 허탈함과 허전함으로 급하강 했다. 이제 그들에게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은 끝났고, 대입 준비는 막이 올랐다. 이번에도 연극처럼 다시 한 번 열정을 쏟을 것을 각오하는 그들은 백석고등학교 연극동아리, BLB(Baekseok lively Broadway ‘백석 살아있는 브로드웨이’. 이하 BLB)다.

지난 달 28일. 고양시의 백석 고등학교에서는 교내 동아리 축제가 열렸다. 30여개 동아리 가 자신들의 기량을 뽐내었지만, 그 중 학생들이 최고로 뽑는 것은 BLB의 ‘라이어’ 공연이었다. 180석 소규모 회의실이던 백석관에는 이 날 300여명이 모여 관람했다. 연극이 끝나고 관객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백석관은 BLB 회원들만 남았다.
정민재(3학년)군은 “후배들이 연극하는 것을 보고 정말 잘 했다는 생각과 함께, 나도 다시 연극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말한다. 대학생 선배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다. 졸업생들끼리 OLD BLB 연극을 여러 번 추진했을 정도로,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어도 이 순수했던 시절, 열정의 무대를 그들은 잊지 못한다.

‘웃기는’ 영어연극과 ‘진지한’ 정극
축제 1주일 후, 백석관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기운 넘치는 목소리가 한 순간에 소란을 잠재웠다. 김보경(2학년) 회장이다.
“1학년들, 오늘은 꼭 대본 완성해야 해. 지금까지 1차 대본도 안 나온 것 보고 선배들이 무척 걱정하셔. 우리 때는 (프린터)잉크가 닳도록 이(팔 길이)만큼 썼어. 영어연극이라고 머리 써서 어렵게 쓸 생각 말고, 무조건 쉽고 재밌게 써야 해. 전교 꼴찌가 보고도 웃어야 하니깐. 알았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가는 고등학교 시절, 이들은 그 빠듯한 공부시간을 쪼개어 동아리 활동을 한다. ‘신속, 단결, 배짱’ 없이는 연극을 올릴 수도 없다.
BLB는 17년 전, 영어연극 동아리로 출발했는데, 5기 때부터 정극도 같이 해 오고 있다. 1학년은 영어연극을 하고, 2학년은 정극을 공연한다.
전래동화를 각색하는 영어연극은 코믹극이기 때문에 무조건 망가져서 웃음을 주는 게 포인트. 정극을 연기하기 전, 무대에 서는 훈련과 관객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력을 갖는 바탕이 이 때 마련된다.
2학년의 정극도 직접 대본을 쓰는 창작극이다. 그런데 올해 16기의 연극만 예외였다. 방학 직전까지 자신들의 창작극을 연습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여름방학 직전, 기존 흥행작 ‘라이어’로 전격 교체하고, 자신들에게 맞게 각색하였다.
이렇게 연극에 열정을 쏟다 보면 상대적으로 학업이 뒤처지지는 않을까?
그들의 대답은 단호하다. 걱정하는 부모님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는 것. 실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는 학생들도 많고, 최근 <공부의 신="">을 썼던 유상근(서울대 영문학과 06학번, 4년 전액 장학생)씨도 백석고 BLB 출신이다.

전통 깊어질수록 블랙박스는 무거워지고
여느 동아리와 마찬가지로 BLB도 2학년이 주축이다. 김보경양은 3월에 회장이 된 후, 16년간 내려온 블랙박스를 인수받았다. 블랙박스는 역대 회장들의 손에서 손으로 내려오는 ‘비밀상자’다. 지금껏 했던 연극대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광고안, 오리엔테이션 결과지, 상장 등이 든 상자는 꽤 무거워 낑낑대며 집으로 옮겼다. 김 회장은 “전설로만 듣던 선배들의 연극 대본을 직접 보았을 때, 그 빛바랜 종이의 대본을 펼치면서 ‘아~ 이렇게들 하셨구나’ 하고 감탄했다”고 말한다.
BLB는 선후배 사이가 돈독해 졸업한 지 10년 이상 된 선배들도 종종 찾아오고, 전화를 걸어 챙겨주는 등 ‘멘토-멘티’ 관계가 정착되어 있다.

주연, 조연 모두 교내 스타
주연이 아니어도 연기만 잘하면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알아봐 주는 교내 스타가 된다. 이승아(2학년)양은 “영어연극 때 섹시한 여성을 연기했더니 한동안 그 이미지로 보는 거예요. 이번에는 그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 조강지처 역을 맡았는데, 이젠 무슨 행동을 해도 그런 식으로 보네요”라며 웃는다. 수줍은 소녀였던 최예린(2학년)양은 연극을 하고 나서는 ‘목이 트여’ 동아리 회원 중에 가장 우렁찬 목소리를 갖게 되었고, 송명근(2학년)군은 본명보다 극 중의 ‘스탠리’로 통한다.
이 아마추어 연극인들은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을까?
“무대 뒤에서는 객석이 안 보이니깐 얼마나 (관객이) 왔는지 몰라요. 그러다가 연극이 시작되고 무대에 나갔을 때. 처음엔 핀조명 때문에 (눈이 부셔서) 객석이 안 보여요. 그러다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객석뿐 아니라 계단과 무대 앞까지 꽉 들어찬 사람들을 보이면 숨이 막혀요. 온 몸을 타고 흐르는 전율, 그건 아마 우리밖에 모를 거예요.”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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