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주의보가 내린 지난 토요일 정오. 고양시 백석동 알미공원에 시각장애인 김기천씨가 중복장애인 정현숙씨의 휠체어를 힘겹게 밀면서 걸어왔다. 아침 일찍 중산동의 한 병원에서 투석치료를 받고 오는 길이다. 병원에서 무료로 식사를 준다고 했지만, 그들은 가볍게 사양하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오늘은 ‘팔복공동체 무료급식’이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매주 토요일 12시, 알미공원에는 빈곤 노인과 장애인,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점심 식사가 차려진다. 그들 대부분이 공원 근처 흰돌아파트 4단지에 거주하는 주민들. 길게 줄 지어 선 사람들에게 “왜 이 곳을 찾는가?” 하고 묻자, “어떤 밥보다 맛있다”, “노인이 먹기에 딱 좋게 만들어준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얘기하고 싶어서 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 식사를 준비하는 팔복공동체에 대해서 물으니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막연히 ‘식당 하는 부부가 봉사하는 것’, ‘화정에서 하다가 여기로 옮겨왔다’ 정도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팔복공동체는 지금껏 한 번도 자신들을 소개하거나 알리는 활동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봉사,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팔복공동체는 현진이(51), 오형섭(50) 부부가 처음 시작한 봉사 단체다. 오형섭씨가 회상하는 봉사를 시작하게 된 날의 기억.
“제가 건설기계를 다루는 일을 했는데, 수금이 잘 되지 않았어요. 점점 힘들어지고, 나중에 오더(주문)가 들어와도 기름값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때 집에서는 기름보일러를 틀었는데, 돈이 없어서 거실에 연탄을 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우리 전세금 2500만원을 가지고 무료급식하면 안 될까?’ 하더라고요. ‘돈 벌어서 봉사한다고 미루다보면 결국 못 하게 될 것 같다’면서요. 처음엔 아이들도 저도 반대했죠.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회봉사가 꿈이었던 것은 알았지만, 그 때 상황이 정말 어려웠거든요. 결국 저는 ‘아이들이 좋다고 하면 따르겠다’고 했고, 아이들은 엄마를 이해하고 허락해줬죠.”
이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종교적 신념은 봉사에 대한 사명을 운명처럼 여기게 해 주었다. 그들은 일단 2500만원 전세금을 빼서 방이 딸린 가게를 찾아 다녔다. 고양시를 이 잡듯 훑어서 겨우 하나 찾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건물 주인들이 ‘무료급식 식당’을 하면 노숙자들이 오게 되서 ‘혐오시설’이 된다고 싫어하는 것이다. 결국 부부는 식당을 먼저 열고, 그 수익금으로 무료급식 봉사를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연 식당이 ‘팔복에서 국수먹는 날’이다.
2007년 1월, 화정에서 시작한 봉사는 백석동으로 가게를 이전하면서도 계속되었다. 장소만 화정 중앙공원에서 백석 알미공원으로 바뀌었을 뿐, 명절을 제외하면 한 주도 거른 적이 없다. 급식 봉사는 현·오 부부가 자녀들과 보증금 194만원에 월세 4만원을 내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국수, 국밥, 비빔밥을 팔아서 하는 일이다.
종교, 지역, 연령을 초월한 민간 봉사 단체
매주 1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나르고, 배식하는 일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재 팔복공동체의 회원이자 자원 봉사자는 40명 정도. 그들은 종교, 지역, 연령을 초월해 다양하게 모였는데, 시작한 계기도 각자 다르다.
가장 오래된 회원인 장병탁(74·화정)씨는 우연히 구두수리점에서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종이를 보고 찾아온 경우. 그는 가톨릭 신자지만, 종교는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교신자인 설명순(74·화정)씨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원인 최준국(44·백석동)씨는 동네 이웃이었고, 권경분(48·행신동)씨는 식당의 단골손님이었으며, 강금남(백석동·76)씨는 자원봉사 센터에서 정보를 얻고 온 경우였다.
특히 정창경(48·대화동)씨는 이웃 주민이었다가 봉사를 돕게 되었는데, 현재 팔복공동체의 총무를 맡고 있다. 그는 “한 달 후원금이 50만원이 채 안 된다. 그 돈으로 쌀 사고 나면 반찬, 국 등을 장만할 돈이 없다”며 “채소가게 같은 데서 식재료를 팔다가 남는 것만 줘도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빚을 져도 멈출 수 없는 일
매년 적자가 1000만원씩 나고 있지만, 현진이·오형섭 부부는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든든한 회원들이 언제나 힘이 되어 주고, 무료식사를 하시는 어르신, 장애인들이 ‘맛있다’고 하면서 밝은 얼굴로 인사해 주기 때문이다.
또 이번 겨울, 우연히 딸과 봉사자가 무료급식 중에 신디사이저와 해금을 연주했는데, 그것이 ‘팔복 음악회’가 되어 버렸다. 앞으로 작지만 정이 넘치는 음악회가 1년에 네 번 열릴 것이다.
“우리는 순수하게 봉사만 하는데, 주위에서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자기 동네 사람은 안 돕고, 옆 동네 가서 돕는다고 하시는 분, 선교 활동을 하면 교회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는 분…. 하지만, 우리 공동체는 그저 배고픈 이웃에게 무료급식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하루하루 벌어, 한 주 한 주 봉사 나갈 수밖에요.”
현진이씨는 소원이 하나 있다. 배고픈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밥차를 가지는 것이다. 당장은 재정적 어려움에 허덕이지만, 그 꿈을 놓아본 적은 없다. 아니, 끝끝내 놓지 않을 그의 가슴 벅찬 희망이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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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토요일 12시, 알미공원에는 빈곤 노인과 장애인, 노숙자들을 위한 무료 점심 식사가 차려진다. 그들 대부분이 공원 근처 흰돌아파트 4단지에 거주하는 주민들. 길게 줄 지어 선 사람들에게 “왜 이 곳을 찾는가?” 하고 묻자, “어떤 밥보다 맛있다”, “노인이 먹기에 딱 좋게 만들어준다”, “봉사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얘기하고 싶어서 온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 식사를 준비하는 팔복공동체에 대해서 물으니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 막연히 ‘식당 하는 부부가 봉사하는 것’, ‘화정에서 하다가 여기로 옮겨왔다’ 정도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팔복공동체는 지금껏 한 번도 자신들을 소개하거나 알리는 활동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봉사,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팔복공동체는 현진이(51), 오형섭(50) 부부가 처음 시작한 봉사 단체다. 오형섭씨가 회상하는 봉사를 시작하게 된 날의 기억.
“제가 건설기계를 다루는 일을 했는데, 수금이 잘 되지 않았어요. 점점 힘들어지고, 나중에 오더(주문)가 들어와도 기름값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때 집에서는 기름보일러를 틀었는데, 돈이 없어서 거실에 연탄을 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우리 전세금 2500만원을 가지고 무료급식하면 안 될까?’ 하더라고요. ‘돈 벌어서 봉사한다고 미루다보면 결국 못 하게 될 것 같다’면서요. 처음엔 아이들도 저도 반대했죠. 아내가 어렸을 때부터 사회봉사가 꿈이었던 것은 알았지만, 그 때 상황이 정말 어려웠거든요. 결국 저는 ‘아이들이 좋다고 하면 따르겠다’고 했고, 아이들은 엄마를 이해하고 허락해줬죠.”
이 부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종교적 신념은 봉사에 대한 사명을 운명처럼 여기게 해 주었다. 그들은 일단 2500만원 전세금을 빼서 방이 딸린 가게를 찾아 다녔다. 고양시를 이 잡듯 훑어서 겨우 하나 찾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건물 주인들이 ‘무료급식 식당’을 하면 노숙자들이 오게 되서 ‘혐오시설’이 된다고 싫어하는 것이다. 결국 부부는 식당을 먼저 열고, 그 수익금으로 무료급식 봉사를 나가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연 식당이 ‘팔복에서 국수먹는 날’이다.
2007년 1월, 화정에서 시작한 봉사는 백석동으로 가게를 이전하면서도 계속되었다. 장소만 화정 중앙공원에서 백석 알미공원으로 바뀌었을 뿐, 명절을 제외하면 한 주도 거른 적이 없다. 급식 봉사는 현·오 부부가 자녀들과 보증금 194만원에 월세 4만원을 내는 임대아파트에 살면서, 국수, 국밥, 비빔밥을 팔아서 하는 일이다.
종교, 지역, 연령을 초월한 민간 봉사 단체
매주 1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고, 음식을 나르고, 배식하는 일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하다. 현재 팔복공동체의 회원이자 자원 봉사자는 40명 정도. 그들은 종교, 지역, 연령을 초월해 다양하게 모였는데, 시작한 계기도 각자 다르다.
가장 오래된 회원인 장병탁(74·화정)씨는 우연히 구두수리점에서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종이를 보고 찾아온 경우. 그는 가톨릭 신자지만, 종교는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불교신자인 설명순(74·화정)씨도 마찬가지였다. 회사원인 최준국(44·백석동)씨는 동네 이웃이었고, 권경분(48·행신동)씨는 식당의 단골손님이었으며, 강금남(백석동·76)씨는 자원봉사 센터에서 정보를 얻고 온 경우였다.
특히 정창경(48·대화동)씨는 이웃 주민이었다가 봉사를 돕게 되었는데, 현재 팔복공동체의 총무를 맡고 있다. 그는 “한 달 후원금이 50만원이 채 안 된다. 그 돈으로 쌀 사고 나면 반찬, 국 등을 장만할 돈이 없다”며 “채소가게 같은 데서 식재료를 팔다가 남는 것만 줘도 우리에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빚을 져도 멈출 수 없는 일
매년 적자가 1000만원씩 나고 있지만, 현진이·오형섭 부부는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는 든든한 회원들이 언제나 힘이 되어 주고, 무료식사를 하시는 어르신, 장애인들이 ‘맛있다’고 하면서 밝은 얼굴로 인사해 주기 때문이다.
또 이번 겨울, 우연히 딸과 봉사자가 무료급식 중에 신디사이저와 해금을 연주했는데, 그것이 ‘팔복 음악회’가 되어 버렸다. 앞으로 작지만 정이 넘치는 음악회가 1년에 네 번 열릴 것이다.
“우리는 순수하게 봉사만 하는데, 주위에서는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자기 동네 사람은 안 돕고, 옆 동네 가서 돕는다고 하시는 분, 선교 활동을 하면 교회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시는 분…. 하지만, 우리 공동체는 그저 배고픈 이웃에게 무료급식 하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이 정도라면, 앞으로도 하루하루 벌어, 한 주 한 주 봉사 나갈 수밖에요.”
현진이씨는 소원이 하나 있다. 배고픈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밥차를 가지는 것이다. 당장은 재정적 어려움에 허덕이지만, 그 꿈을 놓아본 적은 없다. 아니, 끝끝내 놓지 않을 그의 가슴 벅찬 희망이다.
서지혜 리포터 sergilove0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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