맏이와의 갈등으로 힘든 엄마들

끝나지 않는 ‘첫째’와의 전쟁

지역내일 2009-07-20
맏이에게 동생과 다른 기대와 잣대 적용하지 말아야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는 손가락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 말에 이의를 다는 엄마들이 있다. 열 손가락 중 유난히 ‘눈에 차지 않는’ 손가락은 있다는 것. 특히 엄지손가락 격인 맏이와의 전쟁으로 마음 고생하는 엄마들이 많다. ‘믿음직스러운 맏이’기를 원하는 엄마들과 ‘그렇지 못한’ 맏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서글픈 싸움 속으로 들어가 봤다.

형만한 아우 있다?
주위를 둘러보면 맏이의 유형에 크게 두 부류가 존재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 집안의 ‘장남’ ‘장녀’로 스스로 제 할 일을 척척 해내는 맏이와, 항상 둘째 셋째에게 치이며 어설픔의 극치를 보여주는 맏이가 그것. 힘든 관계로 고민하는 대부분의 맏이는 후자인 경우가 많다.
중1과 초등6학년 형제의 엄마 추모(39·명일동)씨는 첫째 아들의 어설픔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추씨는 “어릴 땐 그냥 ‘조금 느린 아이’라고 생각했고, 초등학교 입학해서는 생일이 늦어서(12월) 그렇다고 생각했고, 중학교 입학할 즈음에는 ‘아직 철이 안 나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아이의 어설픔과 답답함에 화가 날 지경”이라며 “잔소리가 큰소리로 이어져 매일 갈등의 소리가 높아져만 간다”고 말했다.
학교과제물을 습관적으로 챙기지 못하고, 학교 시험 일정이나 학원스케줄도 엄마가 일러주지 않으면 잊어버리기 일쑤. 여기에다 요즘은 사춘기랍시고 엄마의 말은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보내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에 반해 6학년 동생은 모든 일을 알아서 척척 해내는 ‘완전 착한’ 아들이라 큰 아들이 더 밉게만 느껴진다고.
추씨는 “지난 6월에 첫애가 학교에서 수련회를 2박3일 갔는데 집이 그렇게 평온하고 조용할 수가 없었다”며 “요즘은 부부싸움의 대부분도 큰 아이 때문에 일어날 만큼 집안에서는 ‘문제아’”라고 말했다.

집에서만 문제(?)가 되는 아이들
한편 아무 문제도 없는 불쌍한 맏이들을 ‘엄마의 욕심’ 때문에 문제 있는 아이로 만드는 경우도 있다.
김유정(37·가락동)씨는 초등학교 4학년 큰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이제까지 집안의 미운 오리로만 생각했는데,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본 아들은 ‘꽤 괜찮은 아이’였던 것.
김씨는 “엄마로서 맏이에게 바라는 바가 컸던 것 같다”며 “동생들도 잘 봐 주지 않고 엄마 말도 잘 듣지 않는 고집쟁이로만 생각했는데 객관적으로 본 우리 아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꽤 괜찮은 아이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집에 돌아온 후 반복되는 아이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고.
맏딸이 중학교 1학년인 윤모(42·문정동)씨도 비슷한 경우다. 학원과 과외로 공부를 시키고, 시험 기간이면 엄마아빠가 암기과목을 모두 훑어줄 정도로 정성을 기울였지만 아이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윤씨는 “학원에 꾸준히 다니는 수학과 영어, 과학 등은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다른 예체능과목이나 사회과목은 실망스러운 성적이어서 주위 엄마들에게 하소연했더니 ‘학원 열심히 다니고 엄마아빠와 함께 공부하려는 그 자체만으로도 착한 아이’라며 ‘엄마 욕심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는 말까지 들었다”고 털어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성적이 기대에 미치는 것 외엔 별다른 문제가 없는 ‘참한 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는 것이다.

엄마의 현명함으로 극복
맏이와 갈등을 겪고 있는 많은 엄마들 중 그 갈등의 원인이 엄마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도 많다.
첫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인 주부 김진선(44·잠실동)씨는 이제 아들이 ‘미운’ 단계는 지났다고 말한다.
김씨는 “아들과의 갈등이 아들이 아닌 엄마로서 자질이 부족한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됐다”며 “아들이 사춘기를 보내며 처음 음란물을 접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PC방에 갔을 때 ‘이제 우리 아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해 매도 들고 엄청나게 혼내며 매일같이 큰소리가 오갔는데, 둘째 아들이 똑같은 일을 격을 땐 ‘모든 아이들이 겪는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큰 아이처럼 혼내지 않고 그냥 지나가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아이의 호기심과 친구들과의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나쁘게만 몰고 간 게 모자 사이를 더 나쁘게 한 원인이 됐다는 것.
매일 짜증만 내고 ‘엄마와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는 중2 맏딸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최모(40·상이동) 씨도 딸과의 나쁜 관계 원인을 최근 자신에게서 찾았다.
최씨는 “큰 아이라 ‘제대로 한번 잘 키워야지’라는 욕심이 문제였던 것 같다”며 “딸과의 한 바탕 전쟁을 치른 후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바라보며 온화하게 확 돌변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누는 내 모습이 딸 눈에 어떻게 보여질 지 반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딸이 초등학교 다닐 때에는 다 큰 아이처럼 대하고 어른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했었다는 것. 그에 비해 둘째는 ‘아직 초등학생이니까, 아직 어리니까’라는 마음이 앞선다는 것이 최씨의 변명 아닌 변명이다.

맏이와 엄마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에 대해 한림대학교 강동성심병원 권희정 교수는 “아이에게는 문제가 없는데 부모들이 첫째와 동생들에게 바라는 기대치와 잣대가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갈등이 대부분”이라며 “어른들의 현명함으로 똑같은 잣대로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지윤 리포터 dddod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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