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사람들

황정순(심곡본1동) 주부

“도시 촌女로 살면 행복해져요”

지역내일 2009-07-12

황정순씨는 17년 전 소사구 심곡본1동에 이사 온 뒤 그 집에서 계속 산다. 성주산과 인접한 도심에서 시골스러움을 느낄 수 있어서다. 그의 집은 튼실한 담쟁이로 둘러싸여 있고 단풍나무와 은행나무도 있다. 옥상 텃밭에는 오이며 가지며 토마토들이 주렁주렁 열려있다. 성주산의 사계는 모두 그의 정원이고 산책길이다. 도심 속 시끄러운 차 소리 따윈 이곳에선 들리지 않는다.

세탁기 NO!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웠죠
그는 생활용품을 아끼고 안 버리며, 세탁기 사용을 자제하고, 겨울 난방은 난로로 해결한다.
“제 환경 철학은 확고해요. 생활용품은 못 쓰게 될 때까지 쓰고 더 사지 않아요. 필요 없는 물건은 다른 사람들이 쓰도록 하죠.”
물건을 아끼는 짠순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황정순씨네 마루 장판은 이사 올 때 그대로다. 새로 산 장판에서 발생하는 환경 호르몬이 줄면 가족이 건강하고 사용하는데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세탁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햇볕 좋은 날 손빨래를 해서 옥상 빨랫줄 바지랑대에 걸어 말린다. 필요 이상의 옷을 세탁하지 않는 것도 그만의 환경 철학이다. 인체가 갖고 있는 방어능력을 존중하는 의미에서다.
웬만한 거리는 걷고 자전거를 탄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표정을 구경하는 게 재미있단다. “동네 사람들이 못 쓴다고 내놓은 책장은 우리 집에 와서 쓸모 있는 물건으로 둔갑해요. 새로 사느니 쓸 만한 물건으로 재활용하는 거죠.”
정순씨 아들은 이 집에서 태어났다. 여느 도시 아이와 달리 약수터 앞 빙판에서 팽이를 치고 엄마가 끌어주는 썰매를 타며 자랐다. 아이에게는 생명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아이는 곤충이나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단 걸 안다. 편식하지 않고 음식물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옥상에서 집안까지 친환경 세상
그가 사는 집은 동향집이라 추위를 견디기 힘들었다. 몇 년 간 생각한 끝에 장작 난로를 들였다. 불을 피운 거실은 훈훈해졌다. 시골집과 달리 창구조가 밀폐되어 에너지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나무는 시골이나 동네 벌목한 곳을 찾아 얻어다 썼다. 나무 가지러 가는 시간은 아빠와 아이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바닥 난방을 하면 아래만 뜨듯하다가 마는데 장작을 땠더니 온 집안이 하루 종일 따뜻해요. 우리 같이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는 친환경적인 절약 방법을 찾아서 실천해야 합니다.”
봄이면 그는 신바람이 난다. 도심 속 첫 농사를 준비하기 때문이다. 서릿발이 풀리면 겨우내 모아뒀던 음식물 퇴비를 뒤집어놓는다. “땅 속을 보면 지렁이와 굼벵이가 뒹굴어요. 땅 힘을 위해서 사는 예쁜 놈들이죠.” 환하게 웃는 그이처럼 옥상에서부터 집안까지 생기가 있다. 땅을 고른 뒤에는 작년에 받아뒀던 아욱과 시금치 등 채소 씨앗을 뿌린다. “호박은 기왓장을 타오르도록 심고요, 오이는 빨랫줄에 연결시켜 키워요. 상추를 뜯으면 즉석 삼겹살 파티도 즐길 수 있어요. 장마통엔 바위도 자란다는 말이 있듯 옥상은 초록 세상이 되죠. 가끔은 옥상에서 차를 한 잔 마시며 산바람과 함께 그 정취를 즐기기도 해요.”

박경리 선생처럼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저는 도시에 살아도 도시사람이 될 수 없고 완전한 시골사람도 되지 못해요. 저의 뿌리는 시골이지만 도시에서 사니까요. 도시에서 살아온 정서를 바탕으로 사는 건 마음을 편하게 해요. 텃밭 농사를 지어 안전한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것도 그런 정서에서 비롯됐죠.”
그는 때로 불편함을 느낀다. 하지만 그것들은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못 느끼는 여유로움 속에 있으므로.
“느리게 살아도 결국은 쫓아가게 돼요. 가전제품을 늦게 사면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죠. 손 전화는 최근에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없으면 없는 대로 살만했는데 주위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하길래 구입했답니다.”
한 철 먹을거리는 시골집에서 가져온다. 자식들 먹을거리를 챙기는 부모님께 고마운 마음이 크다. “주위 사람들은 그래요. 돈으로 치면 얼마냐고, 사먹는 게 낫지 않느냐고. 하지만 땀 흘리며 지은 농산물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어요. 서로의 마음이 들어있으니까요. 시골에서 갖다 먹는 농산물, 우리 농촌을 살리는 길 아니겠어요?”
그는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 스콧 니어링 부부에게 자급자족의 삶을 배웠다. 그래서 해 뜨면 일 나가고 해 지면 집으로 돌아오는 농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싶다.
임옥경 리포터 jayu7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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