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아침밥, 챙겨주십니까?

아침 못 얻어먹는 남편 VS 못(안) 챙겨주는 아내

지역내일 2009-07-07 (수정 2009-07-07 오후 2:28:56)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아침밥 못 얻어먹는 남편들이 늘고 있다. 한 식품회사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남편들 가운데 달랑 20퍼센트만이 매일 아침밥을 먹는다는데… ‘먹는 남편 vs. 차려주는 아내’로 규정되는 아침밥에 대한 공방이 거세다. 우선 아침밥 못 얻어먹는 80퍼센트 남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빈속에 출근하는 남편들, 가슴속이 더 허하다?
얼마 전 대기업의 1박 2일 워크숍 현장. 전날 술이 떡이 되도록 팀워크를 다진 남성 동지들은 다음날 아침 신입사원들이 마트에서 사다 끓여놓은 반조리 꽃게탕을 보고 그만 눈물을 삼켰단다. 아침식사 자리인지 마누라 성토 자리인지, 저마다 “너희가 마누라보다 낫다”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는데…. 이게 어디 남의 집 남편들만의 얘기겠는가. 매일 아침 온 식구가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현실’을 연출하지 못한다면 우리 모두 다 자유롭지 못할 터. 오늘도 아침밥 굶고 출근한 남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 원래 아침 꼬박꼬박 먹던 사람이야~
아침밥 못 먹는 남편들의 기본 정서는 ‘서운함’이다. 이성적으로는 십분 이해해도 가슴으로는 허전하다고 할까? 마치 아침밥이 사랑의 잣대라도 되는 양 매일 아침밥을 얻어먹는 옆자리 동료가 부럽기만 하다. 맞벌이 중인 이상준(가명·40·서울 강서구 화곡동)씨 역시 마찬가지. 서로 아침이 바쁘다 보니 아침은커녕 우유 한 잔 얻어먹기도 어렵단다. 그나마 회사 앞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라면이나 김밥 등을 사 먹고 출근한다고. 팀원 6명 중 이씨처럼 아침을 회사 앞에서 해결하는 이가 절반에 이른다. 그들에게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나머지 절반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뭐랄까, 저 사람은 집에서 대접받고 다닌다고 할까? 겉으로는 말 안 하지만 속으로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이씨의 얘기다.
결혼 3년 차 손석현(가명·37·서울 동작구 사당동)씨는 얼마 전 대학 동창 부부 모임에 나섰다가 기가 막혔다고 한다. 때마침 아침밥 얘기가 나오자 아내가 “이 사람은 아침에 입맛이 없다고 안 먹고 다녀요”라고 말한 것. 아내의 말에 속이 부글부글 끓던 손씨, “나도 결혼 전에는 엄마가 차려준 밥 꼬박고박 먹고 다녔거든?” 한마디를 남겼다고. 이후 집으로 돌아온 두 사람은 부부싸움을 했다. 결국 매일 아침 “아침 줄까?”라고 묻던 아내에게 “생각 없다”며 돌아서던 남편들의 속내는 좀 ‘알아서 차려주지… ’였을까.

아이가 우선? 서운해요!
아이가 생기면서 아침밥을 둘러싼 남편들의 서운함은 더욱 증폭된다. 아이에게는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도 아등바등하는 아내들 눈에 남편의 존재는 사라진 지 오래. 결혼 8년 차 장현준(가명·39·경기 부천시 범박동)씨도 벌써 3년째 자신이 먹을 아침상을 직접 차리는 케이스다. 아내가 여섯 살 딸아이의 유치원 등교 준비를 마치는 동안 자신이 먹을 아침상을 차리는 것. 처음엔 아내가 아침 차려줄 때까지 버티려 했지만, 1~2년이 지나면서 포기했다고. 게다가 정작 아내는 아침을 거르니, 안 그래도 바쁜 아내에게 “내 밥 내놔”라는 말이 안 나오더란다. 그렇다고 매일 굶을 수도 없고, 결국 혼자 차려 먹기로 결심하기에 이른 것이다.


하지만 장씨처럼 직접 아침밥을 챙겨 먹는 남편들은 극히 드물다. ‘애는 그렇게 챙기면서 굶고 나가는 가장은 보이지도 않냐? 더럽고 치사해서 안 먹는다’가 진짜 속마음이다. 머리로야 다 이해하지만 마음속 서운함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아침밥 고수하다 부부 갈등 시작된다?
속상한 마음이야 그렇다 해도 남편들의 대응은 현실적이다.
시골에서 태어나 대학 때 서울로 유학 온 권정재(가명·40·경기 부천시 역곡동)씨. 자취 생활 8년에 남은 건 홀아비 냄새에 주린 배뿐이었다는 권씨는 ‘안정적인 삶’을 꿈꾸며 결혼했단다. 하지만 결혼도 그의 빈속을 바꿔놓지는 못했다. 결혼과 함께 맞벌이 부부의 일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결혼 후 지금까지 8년간 아침밥 얻어먹은 게 열 손가락 안에 들 거예요. 하지만 아내에게 아침을 챙겨달라고 강요할 순 없죠. 같은 처지잖아요.” 게다가 출근이 빨라 오전 6시 30분이면 집을 나서야 하니, 아내를 깨울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종종 몸이 아프거나 술 마신 다음날에는 허한 속이 더 허하게 느껴지지만, 맞벌이를 유지하는 이상 아내에게 아침밥을 요구할 생각이 없단다. 모든 일에는 기회비용이 생기게 마련이라는 게 그의 얘기.

아침 못 챙겨주는 아내들,
그에게 미안하다가도 얄미워!
남편의 아침밥을 못 챙겨주는 아내들의 기본 입장은 ‘미안함’이다. 어쨌거나 가족의 건강을 챙겨야 하는 주부의 입장에서 매일 빈속으로 출근하는 남편 뒷모습을 보는 일이 뭐 그리 좋겠냐는 반응. 
하지만 아내들에게도 할 말은 많다. 그녀들 역시 애들 학교 보내고 출근하거나 집안일을 하다 보면 끼니를 놓치기 때문이다.

아이 챙기기 바빠… 저도 못 먹어요!
“아침 시간에 남편들이 아이 챙겨요?” 주부들에게 아침 시간은 전쟁과 다름없다. 애들 씻기랴, 옷 챙기랴, 아침 먹이랴, 준비물 챙기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여기에 애가 둘 이상이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남편의 아침? 그것까지는 무리!’라는 게 아내들의 기본 생각이다.
아침 시간이 버겁기는 전업주부 역시 마찬가지. 결혼 7년 차 권혜경(가명·38·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남편의 요구다. “내 지갑 못 봤어?” “양말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네 엄마니?’하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다고. “가끔은 아이를 둘 키우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내가 사랑한 남자가 맞나 싶고요.”

돈벌이는 당신의 의무, 아침밥은 내 의무?
결혼 후 줄곧 직장 생활을 하다 최근 전업주부로 자리 잡은 결혼 4년 차 이혜숙(가명·32·서울 동작구 상도본동)씨. 회사를 그만두면서 이씨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남편에게 아침밥을 먹이는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도 보지 못한 게 못내 미안해서다. 그런데 아내가 차려준 아침밥을 처음 먹는 남편은 속이 불편했는지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는지 “오늘은 배 안 고픈데…” “어? 배가 아프네…” 하며 요리조리 핑계를 대더란다. 게다가 이어지는 반찬 투정까지! 그런 남편이 괘씸해 곧장 아침밥을 안 해줬다는 이씨. 한 달 뒤 부부싸움이 한창일 때 느닷없이 남편이 한마디 꺼내더란다. “너 왜 요즘 내 아침밥 안 해주는데?”
“맞벌이일 때는 ‘나도 마누라가 해주는 아침밥 먹어보고 싶다’던 말이 이제는 ‘의무 불이행’으로 바뀐 거잖아요. 정말 기가 막혔죠. 전업주부가 이런 거구나 새삼 깨닫고 있어요. 내가 돈 벌 테니 네가 살림해.”

미안은 한데…
직접 챙겨 먹으면 안 되겠니?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 묻자. 과연 아침밥을 못 챙겨준다고 해서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 걸까? 여기 의미 있는 설문조사(대상FNF) 결과가 있다. 주부 1천452명에게 아침밥을 차리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58퍼센트가 ‘시간이 없고 바빠서’, 14퍼센트가 ‘요리 솜씨가 부족해서’를 꼽았다. ‘단지 귀찮고 번거로워서’라는 의견은 18퍼센트에 머물렀다. 주부 80퍼센트 이상이 남편의 아침밥을 ‘안’ 챙기는 게 아니라 ‘못’ 해주는 거다.
이럴진대 남편들은 언제까지 ‘아침밥 = 가장의 권위’를 외칠 것인가? 우리는 언제까지 <밥 줘!>라는 기막힌 드라마 제목이 나오는 세상에서 살아야 할까? 육아와 청소, 식사로 아우러지는 이 모든 가사 노동이 ‘내 의무’가 아닌 ‘우리의 의무’임을 ‘남편님’들은 언제쯤 제대로 알까?
문영애 리포터 happymoon3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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