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시인’ 김용택(61). 요즘처럼 시에 대한 관심이 시들한 때도 인기몰이 중인 스타 시인. 하지만 그는 거대하고 화려한 것보다 사소하고 미미한 것들에 관심을 보인다.
“시인은 세상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중심에 서서 관찰하고, 새로운 눈으로 해석하죠. 이것에 진정성이 있다면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그 감동은 생명력에 기인하는데, 이는 대개 자연에 있어요. 결국 생명은 자연에서 비롯한다는 뜻이죠. 다행히 자연 속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저는 몸과 마음에 배어, 스스로 넘쳐 흘러야 비로소 시를 쓸 수 있거든요.”
신비함을 잃어버린 되바라진(?) 세상
지난해 교단을 떠난 김용택 시인. 환갑이 지났건만 아직도 천진난만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때론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 가슴이 쩌릿쩌릿할 정도로 설렌다고. 하지만 그 역시 처음부터 다르게 보는 혜안이 있던 건 아니다.
“본디 농민이 꿈이었어요. 농고 졸업 뒤 돼지와 오리 사육을 하다가 망했죠. 딱히 할 게 없어 상경했다가 다시 고향인 진메마을로 돌아왔어요. 그때 친구들이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건 어떻겠냐고 했죠. 얼떨결에 시험을 봤는데 붙었고, 1970년부터 교단에 섰죠. 그런데 혈기왕성한 20대라 좀 무료했어요. 그러던 중 산골로 책을 팔러 온 월부 책장사에게 도스토옙스키 전집을 구입,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죠. 사실 책 표지가 멋져서 산 거라 내용은 아무것도 몰랐어요.(웃음) 한데 그 조그마한 책 속에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다니…. 한마디로 충격을 받았죠. 책을 읽고 나니 느티나무, 앞산, 강가의 돌멩이 등 세상이 달라 보입디다.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어요.”
섬진강을 테마로 자연을 노래한 시인으로 유명세를 타 ‘섬진강 시인’이라는 칭호까지 얻은 김용택 작가. 그의 작품은 대부분 자연주의에 기반, 서정성이 강하다. 하지만 1980년대 초기작들은 날카로운 사회 비판, 저항 정신이 바탕이 된 게 많다.
녹색혁명 시대,
본인 철학부터 바로 서야 한다
김용택 시인은 최근 환경운동에 남다른 관심을 보이고 있다. 퇴직 후 기후변화센터 교육에 참석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엔 영국 외무성 초청으로 유럽에 가 기후변화 문제에 관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요즘처럼 세계 경제가 위축된 시기에 이상만 앞세우는 건 아니냐고 묻자 김용택 시인은 “자기 철학부터 세워야 한다”고 잘라 말한다.
“경제가 어려운 때일수록 철학, 바탕이 서야 합니다.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다 보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없죠. 돈과 지식을 공유하는 세계화 시대에 경제 위기는 절대적으로 계속 옵니다. 다만 주기에 차이가 있을 뿐이죠. 저는 자꾸 의심이 되는 게, 발전을 외치는데 그래서 어쩌자는 겁니까?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거예요? 돈을 바란다고 돈이 벌리고, 삶이 풍요로워지나요? 돈만 찾는 우리 사회는 ‘경제 귀신’에 홀린 거예요.”
좋아하는 걸 찾으면 결국 잘한다
그는 부모 역시 교육에 대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시류에 편승해 ‘팔랑귀’처럼 이른바 ‘뜨는 교육법’을 좇는 것도 제대로 된 자기 철학이 없어 생기는 현상이라고.
“교육에 대한 관점이 없는 게 문제예요. 어떻게 아이 교육을 시켜야 할지 기본적인 자세가 안 된 거죠. 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걸 찾아주는 겁니다. 좋아하는 걸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잘합니다. 또 사회에 나갔을 때 자기 몫이 생기죠. 안 믿긴다고요? 제가 산증인이잖아요. 허허허.”
김용택 시인은 뒤늦게 시의 세계에 눈을 떴다. 자기 생각을 정리한다는 마음으로 일기처럼 쓰기 시작한 시. 습작 시절만 무려 13년, 과연 본인이 쓰는 것이 시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딱히 자문을 구할 곳도 없었다. 완성도가 있는 시를 골라 잡지사에 보냈더니 시집에 싣겠다며 답이 왔고, 그는 서른다섯에 등단했다. 문화 아이콘으로 떠오른 요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시를 쓰고, 책을 읽는 등 공부를 한다.
인세 기부?
세상이 준 생명, 세상에 돌려준다
평생 섬진강 자락에 있는 전북 임실군 진메마을을 떠나지 않은 김용택 시인. 자녀 통학 거리 등 때문에 전주 시내에 나와 살지만 삶의 방식엔 변화가 없다. 덕치초등학교 교사도 그만둔 요즘 문단 활동을 시작해보는 건 어떠냐고 묻자 손사래를 쳤다.
“이제는 더 문단 속에 들어갈 이유가 없죠. 문단에 나가 사람들 얼굴을 봐야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형식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중요한 자리라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고, 꾸며진 거 같으면 그냥 와버립니다.”
때문에 그는 인세 기부 운동 관련 기념식을 하자고 했을 때도 난색을 표했다. 김용택 시인은 시집이 나올 때마다 아름다운재단, 환경재단 등에 인세를 기부해왔다. 이번에 펴낸 시집 <수양버들> 인세 역시 아름다운재단에 기부된다. <수양버들>은 열 번째 시집으로 충만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 57편을 묶었다.
“행사 하면 바쁜 사람 동원해야지, 돈 들어가지… 그걸 왜 해요. 마침 출판사에서 조그마한 행사를 열기에 거기서 간단하게 하기로 했죠. 시는 세상 속에서 나온 아름다운 글이니, 세상에 돌려주는 건 당연하잖아요. 자연 만물이 이렇게 시를 쓰라고 말해줬죠. 저는 다만 그들의 움직임, 말을 찾아냈을 뿐입니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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