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주부들의 비밀 질환

지역내일 2009-04-16 (수정 2009-04-16 오후 11:48:40)
사람들은 병을 숨기고 싶어 한다. 병을 부족함이나 결함, 나아가서는 자신이 패배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낫기 위해서는 병을 자랑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고 드러내어야 도와주려는 사람이 효과적으로 처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동네에나 자기의 음주 문제를 부정하면서 숨어서 과음하는 여성들이 있다. 특히 주부들이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휩싸여 가족이나 친지, 주위와도 관계를 끊고 집안에서만 틀어 박혀 죄수 같은 생활을 한다. 혼자 외롭고 두렵게 살아가는 그들이 앓는 문제는 바로 알코올중독이란 병이다. 그들은 남들에게 취해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겉보기에는 교양이 넘치고 우아하고 지적이고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인 연구 통계에 의하면 여성의 알콜 중독 비율은 남성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여성이 결코 남성들보다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음주에 관한 한 워낙 거짓이 능란하여 가족들까지도 감쪽같이 속고 드러나지 않아서 그럴 뿐이라고 한다. 우리 사회가 과음 여성에 대하여 더욱 가혹한 사회적 낙인을 찍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드러난 여성 알코올중독자는 단지 전체의 10%밖에 되지 않으리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남편은 성공한 경우도 많다. 남편은 바깥일로 늘 바쁜데다 자녀들도 모두 커서 집을 나가 혼자 집에서 외롭게 남겨지는 수가 많다. 그러다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도 없고 할 일도 많지 않아 며칠씩 집밖을 나올 일도 없고 옷을 갈아입을 필요도 없어 혼자서 밤낮 없이 음주를 하기도 한다. 결국 의식을 잃을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경우도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가 여성 음주에 대하여 훨씬 허용적으로 바뀜에 따라 여성들이 대놓고 음주하고 때로는 남성들보다 더 거칠게 과음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어떤 수를 써서라도 숨기려 하였다. 과음으로 인해 문제가 생겨도 얼버무리거나 심지어 술로 인한 사망한 경우조차 과음의 문제를 밝히지 않고 다른 원인으로 둘러대는 수도 많았다.
그러나 요즘에는 부인의 음주 문제로 병원을 찾는 남편들이 많아졌고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음주 문제를 인정하고 자발적으로 치료받으려는 이들도 생겨났다. 알콜 문제를 치료하는 병원들마다 입원 환자의 거의 1/3은 여성이라고 한다. 이제 우리도 쉬쉬 하지 말고 여성의 음주 문제를 대놓고 논의하고 대처하는 풍토가 되어야 하겠다.

신정호 (연세 원주의대 정신과 교수, 강원알코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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